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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Dec 12. 2018

우드카빙 그 고요함

단순함에 몰입하는 시간

카빙을 계속했던 이유는 2가지다.

- 집에서도 가능한 간편함(?)

- 단순작업에서 오는 고요함




모라 나이프를 사고, 나무 조각을 구한 후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퇴근 후에 나이프를 쥐었다. 이른 퇴근이든, 늦은 퇴근이든 귀가해서 한번 나이프를 쥐면, 새벽 1시, 2시까지도 무념무상으로 나무를 깎는다. 카빙을 배우러 다닐 때도 사람들과 늘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멈출 수가 없다고-. 머리를 비우고 손끝에 집중하는 작업. 손에 나이프와 나무를 쥐고 있으면 시간이 순삭이다.

나무를 깎다가 빨래를 해야지 생각하고, 깎다 보면 12시,

나무를 깎다가 운동을 가야지 생각하고, 깎다 보면 새벽 1시,

오늘은 금요일이니 마음 놓고 깎아야지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새벽 2시,


우드카빙을 하는 동안은 온전히 나무만을 바라본다. 손에 쥔 나무 부제(또는 블랭크라고 부른다)가 깎이는 면, 깎여나간 면을 확인하고, 만져보고 더 깎아야 할 부분을 찾고, 완성된 모양을 상상하며 조금씩 더 면밀히 다듬는다. 이때만큼은 어떤 생각도 걱정도 끼어들 틈이 없다. 나무를 만지작거리며 2시간이든, 3시간이든 그 촉감에 의지하여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는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깎기도 한다.


처음 2,3달은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쥐어지지 않았다. 뻣뻣한 나무 둥치 같은 느낌에 내 손이 내 손 같지 않았다. 전날 몇 시간씩 나이프를 쥐고 끙끙거린 결과다. 나무를 잡아보면 늘 편하진 않다. 어떤 부위는 깎아내기가 굉장히 힘들다. 초집중력으로 좁은 부위를 쥐고 깎아내기 때문에 손에 힘이 어마하게 든다. 그 덕에 얇은 손가락이 굵어졌고, 오른 판이 왼팔보다 눈에 띄게 두꺼워졌다.  네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샤프닝(칼 연마)이라도 할라치면 온통 쇳물이 스며들어 손이 꼬질꼬질해진다. 그러나 미용이나 신체적인 약간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카빙이 주는 평온함은 포기할 수 없다.


작업실을 오픈한 후에, 여러 지인들이 놀러 와서 함께 나무를 깎곤 한다. 한동안은 이런저런 수다가 이어지다가 고요한 순간이 온다. 그럴 때는 모두가 손에 쥔 나무와 칼 끝에 몰입한다. 잔잔한 음악과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이 여전히 나무를 잡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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