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시작
뭔가 퓨즈가 나간 것 같은 하루다.
해야 할 일들을 자꾸만 까먹는다.
글을 쓰고 싶지만,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자꾸 놓아지는 정신줄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요즈음 일상이 자꾸만 미끄러지는데..
소금이라도 좀 뿌려야 할 것 같다.
이 땅을 단디 딛고 걸음 걸음 하라고.
내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이 고민은 25살까지도 계속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툭하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자주 몽상적인 우울에 빠지고,
어디에든 쉽게 감정 이입하고, 감정 과잉으로 치닫는 나의 정신상태로
어느 한자리에 붙어서 제대로 된 어른으로서 기능한다는 게.
당시로서는 내게 가능한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빵터지지 않을까, 어디론가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이런 저런 미래에 대해 상상과 고민을 뒤섞은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나이 30을 넘겼고, 5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일이라는 걸 하고 있다.
어느 덧 나는 상상하지 않고, 스스로의 사회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그저 하루하루 어찌어찌 살다보니 그렇게 삶이 쌓인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매일 일하다 보면 직장생활이, 일이 이어지고 생활이 굴러간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가끔.
삐끗 일상이 날아갈 때가 있다.
해야 될 일도 까먹고, 멍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제는 정말 상상일 수밖에 없는 상상의 나래를 실컷 펼치고
머리 속을 뒤죽박죽 섞어버리는 나른한 우울들 즐기고픈
사획 속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외면하고픈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