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만나는 뜻밖의 행운 in MEXICO CITY
새벽- 휴일인데도 눈은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떠진다. 이게 직장인 6년차 병인지.
아무튼 여행지이기 때문에, 그대로 일어나 씻고 새벽길로 나선다. 어디서든 대개 이른 아침은 낮밤보다 덜 위험하다는게 내 지론이다. 예상대로 청소부들이 거리를 쓸고 있고, 새벽 조깅에 나선 사람들이 거리를 달리고 있다.
오늘은 목적은 걷기.
마나과는 걷기에 적합한 수도가 아니다. 도로만 잘 되어 있을 뿐, 보행자 도로는 상당히 열악하고, 걷기 좋은 거리도 아니다. 늘 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상당히 굶주려 있었다. 걷기에.... ^^ 그래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걷기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리가 아프고 저리도록 거리를 걷고 싶었다. ZOCALO 광장 방향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아침의 풍경들.
조깅하는 사람들이 유달리 많다 싶었는데 마라톤 대회가 있는 듯하다. 조깅 복장의 사람들이 계속 스쳐지나가고, 부스 같은 것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에게 마라톤 대회가 있는지 물어보는 이스라엘 관광객을 만났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잠깐 하고는 서로의 갈 길을 간다. 마라톤 대회 참가자 중에는 삐에로도 있었다. 몸에 붙은 장신구들이 짤랑 짤랑 아침 거리 위로 울려퍼진다. 그는 유쾌하게 달려나간다.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며 천천히 공원 길을 걸었다.
걷다보면 원하는 것을 만나기도 하는 법
** 예술 궁전 **
목적 없이 걷던 그 공원 길의 끝에 문득 예쁜 건물이 보여서 유심히 보다보니, 사진에서 많이 본 건물 같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기나긴 줄이- 뭐지 하고 바라보다 깨달았다. 저것이 예술 궁전이구나!. 멕시코 시티에 올 때 미리 찾아본 몇몇 박물관 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아두었던 그 곳이다. 나중에 찾아보아야지 했던 것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개장 직전의 상태로. 사진을 몇 장 찍다보니 박물관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지금 갈까 나중에 갈까 살짝 고민한 후에 줄의 끝에 선다. 긴 줄이었지만 큰 박물관 안으로 사람들은 금방 사라진다. 나도 그 안으로 -. 표값을 물으니 LIBRE(공짜) 란다. 오늘은 아침부터 대단한 횡재를 한 것 같다!.
후에 알았지만, 예술 궁전은 일요일은 무료 관람이고, 그래서 정말 줄이 길다고 한다. 마침 개장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건 정말 운이 따라주었던 것이다. 1층은 매표소와 서점 겸 기념품점이 있고, 2층은 특별 전시회가, 3층은 상설 전시로 디에고 리베라와 시케이로스의 작품이 있었다. 2층의 전시회는 기존에 많이 봐온 느낌이라 특별하지 않았지만, 3층의 전시 -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케이로스.
인간의 자유에 대한 투쟁의 이미지, 그리고 인디언 학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작품들.
특히 인디언 학살의 현장으로 보이는 그림들을 보니, 그 고통히 생생히 느껴질 것 같은 표현과 강렬한 붉은 색에 아픔이 전이되는 것 같았다. 대형 작품들만 있어서, 작품 전체 사진을 찍기 어려웠기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일부씩 찍어두었다. 고문당하는 인디언, 피흘리며 기도하는 여인, 처절한 눈물의 기도와 체념한 표정, 불에 태워지는 몸의 일부.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먹먹해 진다.
어느 시대, 어떤 장소에서, 누군가는 당했고 현재도 이어지고 있을 이런 고통들.
고통받는 인디언들 가운데 철갑으로 둘러싼 스페인 군인들 사이에 있는 한 인디언 여인.
그녀는 밀고자였을까. 이것 또한 삶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잔혹한 일이다.
뒤엉킨 채 엎드려 있는 남과여.
여자의 한쪽 발목은 잘린 단면이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은 가려 보이지 않고, 엉킨 몸과 피, 훼손된 신체 등만 부각될 뿐이다. 나란한 두 발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기에 그저 상상할 뿐이다. 이들은 인디언 들이겠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전쟁에 희생된 것일까. 잔혹하고, 강렬하고, 그리고 애잔하다. 보면 볼수록 끔직하다고 느끼면서도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어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2층에서 있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3층에서 머문다.
충분하다 싶을 만큼 보고 난 후, 예술 궁전을 나와서도 한동안 마음이 먹먹하다.
그들이 겪어온 역사, 짓밟히고 훼손된 역사와 역사 속의 사람들, 삶, 사랑 - 자꾸 그런 것들이 밝혀 뒤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