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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Sep 25. 2015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고달픈 워킹 맘의 단상

아이가 셋


우리 엄마는 아이가 셋이다. 

나, 남동생, 터울이 지는 막내 여동생. 


맞벌이였던 우리 집의 아침은 항상 전쟁터 - 늘 정신없고 바빴다. 

나와 남동생의 등교 준비, 아직 어린 여동생의 아침밥 투정 등 엄마의 아침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을 것이다. 그 시절의 사회 분위기에 비하면 아빠는 집안일을 꽤 도와주시는 편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돕는' 개념으로 주로 아빠가 시간이 나는 주말에 식사를 준비하시거나 청소를 도와주시는 정도였다. 그래서 바쁜 아침은 온전히 엄마만의 몫이었다. 아빠가 단정히 앉아 식사를 하신 후 출근하시면, 엄마는 그 다음에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마지막으로 본인 준비를 끝내신 후 우루루 몰려 나갈 수 있었다.


엄마 나이 서른 둘이던 시절


이제 내 나이가 서른 둘, 그 나이의 엄마에겐 4살짜리 딸과 2살 짜리 아들이 있었을 것이고, 한창 때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꾸임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한 채, 두 아이의 육아와 직장생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때이다. 그 후로도 막내 여동생까지 생기면서 엄마는 오래도록 육아와 직장생활에 치여 지내셨다. 아주 가끔 엄마가 옛 직장 생활 추억하시는 걸 들어보면, 우리를 챙기느라 늦어 매번 종종 걸음으로 학교로 뛰어가시는 모습, 교장 선생님께 잦은 지각으로 꾸지람 듣는 모습 등이 연상된다. 엄마의 서른에서 마흔은 온통 우리들, 직장생활만 있었을 뿐 엄마 개인의 삶은 없었다.


엄마 아빠 시절은, 이제 막 핵가족화가 되던 시절이다.

이전, 대가족 시절에는 아이들은 으레 많이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을 길렀고, 집안의 일손이 되어 주었고, 그저 자기들끼리 뛰어놀게 내버려두어도 곧잘 쑥쑥 자라던 때이다. 시절이 바뀌면서 가족 수는 줄어들었고, 대도시에 핵가족끼리 살게 되면서 육아의 양상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고 - 우리 엄마들은 5명도 8명도 길렀는데 왜 당신은 2명, 3명을 기르는데도 이렇게  힘들어하느냐 - 는 타박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많은 사회적 타박 속에서 세 아이를 길렀다. 직장 맘임에도 불구하고 그 바쁜 아침에 식사를 어찌나 꼬박 꼬박 챙겨주셨는지, 지금도 아침을 안 먹으면 일을 못한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서운했던 점도 있고, 엄마와 다투기도 많이 다퉜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엄마의 지난 세월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낀다. 단지 직장생활 만으로도 벅찬데 세 명의 아이까지 키워야 했던 엄마의 고충은 어떠했을까. 



우리 엄마의 모습이 보여.. LUCIA.


우리 직원 중에도 아이 셋인 맘이 있다. LUCIA는 이제 막 11살, 4살, 2살의 아이를 키우는 32살 젊은 맘이다. 이곳에는 20살 정도면 첫아이를 가지기 때문에 나와 같은 나이에도 벌써 아이가 셋. 늘 눈 밑에 다크서클을 달고 살고, 아침에는 늘상 지각까지는 아니어도 아슬아슬하게 출근 시간을 맞춘다. 피곤한 날에는 종종 업무 실수를 하곤 한다. 세 아이 때문에 늘 급여가 언제 오르나  궁금해하고, 졸릴 땐 나에게 초콜릿 없냐고 물어보는 LUCIA. 


LUCIA의 칼출근을 나는 나무랄 수가 없다. 내가 겪어왔던 엄마의 출근 풍경이 선하여, LUCIA가 아침에 어떤 전쟁을 치르고 출근하는지가 너무 빤하다. 피곤한 날 종종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 늘 피곤해 보였던 엄마의 얼굴과 겹쳐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했을 실수들, 직장에서의 타박들을 생각하면. 새벽까지 아이가 잠들지 않아 어르고 달래느라 거의 잠을 못 잔 날의 LUCIA에게 초콜릿을 건넨다. 


엄마에게는 어려서 미처 해줄 수 없었던 말들을 LUCIA에게 해준다. 10년만 힘내라. 애들이 좀 자라고 나면, 훨씬 편해질 거야. 아이들이 집안일을 도와주고 자기 몫을 해내면, 여유도 생길 거야. 힘내자. 

LUCIA가 부디 이 시간들을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항상 해맑게 웃고, 마음이 따뜻한 그를 응원하고 싶다. 작은 실수들은 내가 커버해주고, 아이들이 잘 자라는지 물어보고 챙겨주고 싶다.    


가족이 당연한 삶


이 곳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좀 더 가족적이다. 대가족까지는 아니어도 근처에 같이 모여사는 친지 가족들도 많다. 아이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 참석을 위해서, 특별한 날 가족들과 식사를 한다고 반차를 내기도 한다. 늘 용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청하는 입장에서 거리낌이 없고 눈치도 보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면 7일까지 유급휴가를 낼 수 있는 법적 보장도 되어 있다. 나도 업무에 지장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요청들은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국에 비하면 좀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나는 과연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일과 양육을 병행하면서 나의 삶 없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워킹 맘의 고충이 어떤 것인지 옆에서 보아왔고, 많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을 둔 아이가 가지는 외로움을 알고 있기에 언제나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엄마와는 달리 살고 싶다. 엄마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 또한 발견하면서. 작은 여유를 가지면서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늘 아이들에 일에 밀려서 허덕였던 엄마의 지친 30대 40대.. 돌아보면 마음이 찡하다. 그리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이 앞선다.


언젠가는 일하는 엄마들이 배려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형성되면 좋겠다. 아이와의 삶과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 중에 택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아이와의 일상에 대해 좀 더 융통성 있게  배려받을 수 있는 직장생활 그런 것들이 가능한 사회라면 훨씬 따뜻하고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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