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촐한 계절들..
한국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 사계
니카라과의 계절은 건기, 그리고 우기가 반반.
중미는 여름이 베이스다. 그나마 날씨가 선선한 건기는 초가을 날씨 정도.
그래서 여기 날씨는 찌르는 듯한 더위, 아니면 조금 선선한 비 둘 중 하나이다.
우기
처음 니카라과에 왔을 때는 막 우기가 시작되던 때였는데,
첫 비를 만나던 날, 양동이로 쏟아붓는 듯한 비에 지붕이 무너질까 심각하게 걱정을 했더랬다.
그리고 늘 같은 고민이 들만큼, 이곳의 비는 언제나 한결같이 강렬하고 열정적이다.
그러나 우기라고 해서 매일 비가 오는 건 아니고, 몇 분, 길게는 한시간 가까이 퍼붓는다.
비가 잦아들고 나면 햇볕, 3시간 후면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말끔한 바싹 마른 거리.
또 놀라운 건,
여기는 말짱한데, 건너편 동네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하늘 풍경.
먹구름과 번뜩이는 천둥 번개가 바로 옆하늘에 걸려있는 걸 보면 경이롭다.
마른 하늘에 번개라는 말을 이곳에서 엄청 많이 목격했고, 또 실감했다.
이렇게 무더운 가운데 폭우가 오고, 그러면서 2월, 3월까지 점차 날씨가 선선, 쌀쌀해진다.
요만큼의 추위도 추위라고, 초가을 날씨면, 현지인들은 패딩에 부츠, 목도리를 하고 다니는데,
그걸 보면서 참 신기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온도는 매우 상대적인가 보다.
건기
그럼, 더운 날은?
보통은 일하느라 사무실에만 있어 나다닐 일은 별로 없지만,
한낮 옆 동네인 그라나다를 산책하다, 운동화가 뜨거워서 걷기 힘들었던 적이 있다.
한국의 더위와 다른 점은, 습기가 없고 정말 쨍하게 덥다는 것.
바삭 말리는 느낌이 드는, 그리고 햇살에 피부가 찔리는 것 같은 더위.
처음에는 한국에서 가장 더울 때 정도를 생각하고 만만히 봤는데, 문제는 더위 그 자체보다 햇볕, 자외선이었다.
이 가벼운 얕봄의 대가로 다량의 주근깨를 받게 되었으니, 그 이후로는 썬크림을 엄청나게 바르고 있다.
더위와 엄청난 태양광 때문인지, 현지인들은 자신의 나이보다도 훨씬 더 빨리 세월을 품어 버린다.
그리고 분명히 현지인들의 여유있고 나른한 품성에는 이 더운 날씨가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함께 일을 할 때조차도 가장 다급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여유, 나른함에, 놀랍기도, 답답하기도.
길을 다닐 때, 정말 자주 마주치는 풍경은, 흔들의자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고 있는 이들.
최소한의 힘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작은 바람 한 점을 기다리는 이들의 낮과 밤,
어디에 사느냐는 결국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겨울이 싫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봄만 있는 나라에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자꾸만 겨울이 그리워진다. 현지인들은 내게 겨울이 있으면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코 끝이 시큰거리고 피부가 쌔한 겨울 바람이 그립다. 차가움이 주는 그 긴장감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진다.
* 니카라과 어디에나 있는 것이, 그물 침대, 흔들의자.
이곳에 오기 전에는 흔들의자는 영화에나 나오는 건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