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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Nov 09. 2015

직접 내린 커피 한 잔

일요일 아침의 호사


한국에 있을 땐, 지천에 카페였다. 

어디든 분위기 좋은 곳에 들어가 각종 커피를 골라 주문해 마시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메리카노, 라테, 카라멜 마끼아또, 오렌지 비앙코. 노멀한 커피, 커피점마다의 특색 상품 등. 


그런데 니카라과에는. 물론 커피점은 있지만, 숙소에서 너무 멀다.

안타깝게도 평일에는 커피점 근처에도 갈 수 없기 때문에 커피를 내려마시게 되었다. 

예전엔 어린이 입맛이라 라테+시럽만 마셨으나, 이제는 선택의 여지 없이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다.  


좋은 점은, 이곳이 중미라는 것. 

한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커피가 과테말라나 코스타리카인 만큼, 이 일대는 커피의 산 고장이다. 

과테에서 출장 오시는 분들, 인근 지역으로 여행 후에는 각 지역의 커피 선물이  여기저기 쌓인다. 


점차로 내려 마시는 커피의 맛을. 

그 커피의 향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엔 커피콩을 가는 기계를 구매해서, 콩을 갈아서 내려마시고 있다. 


모처럼의 일요일 아침에는, 커피 콩을 꺼내 적당량을 갈아서 바로 내려 마신다. 

아침 볕이 드는 방에는 커피 향이 조금 퍼지고, 방금 내린 커피는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전문가가 만들어준 커피만큼, 내가 만든 커피가 맛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직접 내려마시는 커피에는, 그 커피만의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했다는 것. 자신이 직접 내린 커피. 

아직도 나는 커피 맛은 잘 모르겠다. 그저 약간의 미미한 차이를 느낄 뿐이지만. 

나의 행위가, 나의 손끝이 들어간 커피 자체를 좋아한다. 


무엇이든 돈 주고 살 수 있는 편리의 나라에서, 돈 주고도 살래도 살 것이 많지 않은 나라로 왔지만, 

이 곳에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의 가치에 대해 배우고 있다. 편리를 포기하면, 또 다른 재미가 보인다는 것을.  


전용 유리주전자가 깨져버렸다. 근데  여기선 다른 걸 구할 수가 없어서 컵을 놓고 커피를 내린다.
동료가 뉴욕 휴가 때 사온 나무 수저


직접 무언가를 해볼 때 느낀다.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 직접 만든 것이 자신에게 가치가 훨씬 커진다는 것을.

이렇게 애정 섞인 커피 한 잔은, 사 먹는 커피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고, 삶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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