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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Nov 11. 2015

바닥의 시간은 가고

나를 괜찮아지게 만드는 것

지금은 평범한 어느 밤이다.


복작이던 사무실은 이제 텅 비어, 나와  몇몇 직원만이 남아 일을 정리하고 있다. 


매 달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가장 큰 업무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유달리 이번 달은 여러 가지 문제로 업무를 쳐내기가 쉽지 않았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고, 어떤 일이든 장점을 보자는 모토로 살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 지치는 나날이었다. 


해외살이를 시작한지도 어느 덧 1년이 지났는데, 문득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진지 일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와 자기 자리를 내놓으라고 난리법석이라. 가뜩이나 일도 힘든 마당에 기분조차 처져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이렇게 버티는 날도 있는 거라고, 이렇게 가라앉다 보면 바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정말 울적함의 최고조를 찍고. 일찍 숙소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음악을 듣다가 잠이 들었다가. 문득 깨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또 잠이 들고-를 반복하였다. 덕분인지 오늘은 기분이 약간 상쾌했고, 사람들을 보고 미소를 지을만한 작은 힘이 생겼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공장이라도 다닐 겸, 사무실을 나서 길을 걷는데, 쪼롬히 새워진 긴 풀대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참 아름다웠다. 그 바람, 그 움직임은.. 어쩐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괜찮다. 나는 괜찮아.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 밤. 비가 내린다. 지금은 우기고. 밤마다 세찬 장대비가 지붕을 쉴 새 없이 두드린다. 

다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 하는 이 강렬한 빗소리 속에 앉아 생각해본다. 


나를 괜찮게 한건 무엇이었을까. 


울적함 속에 온전히 나를 내버려둔 시간이었을까. 이불 속에서 보낸 비몽사몽 간의 휴식이었을까.

바람 따라 일렁이던 풀대의 움직임일까. 귀를 먹먹하게 하는 빗소리일까. 

아니면 단순하게 흘러간 시간이었을까.


중요한 건, 어쨌든 이제 괜찮다. 또 다가오는 날들을 잘 살아갈 수 있게. 

한없이 가라앉기만 했던 그 시간들이 나를 도닥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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