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여행기 - 공원, 그리고 박물관들
개인적으로 공원을 좋아한다.
푸릇푸릇 나무랑 색색깔의 꽃이 그득하고, 풀향기가 나고, 나무 그늘이 있는 널찍한 공원은 언제나 말없이 걷기 참 좋은 공간이다. 보통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꼭 다시 가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거의가 공원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차뿔떼빽 공원은 정말 최고의 공원 중에 하나인데, 까닭은 공원 안에 박물관도 미술관도, 그리고 동물원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들어있는 공원이라니 생각만해도 참 황홀하다. 선물상자 마냥.
PARQUE DE CHAPULTEPEC : 차뿔떼빽 공원
진실을 고백하자면, 사실은 공원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멕시코의 명소로 꼽히는 인류학 박물관을 가기 위해 그곳을 '거쳐'가고자 했던 것이었다. 지도 한 장 없이, 로밍 없이 간 여행이라 장소를 물어 물어 다녔는데, 같은 호스텔의 여행자가 차뿔때빽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인류학 박물관이 나올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다만, 이 공원을 거쳐가라고만 하였고, 이 공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기대 없이 공원에 들어섰고, 그저 걷게된 것이다. 생각보다 큰 공원은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중미의 독립기념일이라 육해공으로 보이는 여러 군복의 군인들이 정렬해 있었다.
이 넓은 공원을 걷고 걷다가, 발견한 표지판. 어디가 인류학 박물관이지 하고 유심히 보다가
MUSEO NACIONAL DE HISTORIA 를 발견
그래 여기가 인류학 박물관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직진.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인류학과 역사라는 단어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철떡같이 이게 - 그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길을 자꾸만 위로 위로 올라가고, 이 길이 맞나 긴가민가하는 사이에 건물이,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9시 입장이라 그런지. 건물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말 아.무.도.
청소하는 사람들만 몇몇 돌아다니고 있었고, 안내양도 할 일이 없는지 나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아야할지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이 때까지도 나는 이 장소를 인류학 박물관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들어가자 마자 떡하니 마차가 전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실상 내가 인류학 박물관에 대해 들은거라곤. '매머드가 있어요'가 전부였고. 그래서 내가 들어온 이곳이 인류학 박물관이 아니란 것을 안 것도, 전시관을 다 돌고도 매머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첫 관람객이라는 메리트로 혼자 넓은 공간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다. 각 방의 잘 보존된 생활 공간들을 보면서, 루브르의 전시관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을 하며, 동시에 묘한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추호의 의심없이 나는 인류학 박물과을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전시관을 끝으로 '어 매머드가 없네' 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여기는 차뿔떼빽 성.
전혀 엉뚱한 곳으로 와서 관람을 하고 있었던 거다. 철저한 무계획과 무지도, 무생각이 일궈낸 찬란한 결과였다. 성을 나오면서 혼자 박장대소를 했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어떻게 이 곳을 인류학 박물관으로 여겼는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 혼자서 이 넓은 성을 차지했던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았다. 고요함 속에, 나홀로 켜켜이 세월 쌓인 이 고성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이 공간과 나 단 둘이서 대화를 한 듯 내밀하고도 다정한 시간이었다.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반들거리는 오래된 복도 위에 가만히 서서 숨죽이고 바라보던 그 시간을.
그렇게 성을 다시 내려오는 길,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고민이 되었다.
나는 과연 인류학 박물관을 찾을 수 있을까. 잠깐의 생각 후, 그냥 이 넓디 넓은 공원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탐구의 과정에 인류학 박물관을 찾았고, 작은 호수와 아름다운 북카페를 찾았다.
길을 잃었고, 바보같이 착각도 했지만, 길을 잃어주어서 참 좋은 날이었다. 그런 엉뚱한 착각이 참 유쾌한 날이었다. 다시 멕시코를 간다면, 이 곳 차뿔때뻭 공원에서는 꼭 하루를 온종일 머물 것이다.
원래 목적지였던 인류학 박물관,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본 북카페.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하는 여행이 얼마나 즐거운지. 지도 없이 헤매고 다니는 길이 얼마나 반짝거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있는지. 이전에는 몰랐다. 그래서 요즘는.? 일단 가고 본다. 가고 나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