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
사람은 진정 자유를 원하고 있을까?
자유란 사전적 의미로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인간은 사회를 조성하고 그 안에서 타인에게서 각자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하여 자유를 구속한다. 심지어는 가정 안에서도 가족 구성원간에 규칙이 만들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구속한다. 여러 종교들 안에서도 다양한 규칙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소속되기를 원하며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제한한다.
얼마 전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며 이 이야기를 한 번쯤 글로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내가 제법 긴 시간동안 교회에서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실제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회개'를 하고는 하지만 항상 의문이었던 것은 왜 '회개'를 하고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회개'하여 용서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고 자신의 '죄'의 사함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잘못을 늬우치고 용서를 바란다면 자신의 저지른 잘못에 대해 돌이키기 위한 노력이 함께 해야함이 마땅하다. 용서를 받았다면 더더욱 그러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늬우침이란 곧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진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결코 잘못한 사람이 져야하는 책임에 대한 부분을 감면해주거나 사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란 잘못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한 자에게 책망이나 벌을 주지 않고 그 허물을 그저 덮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용서받았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면, 10대 초반쯤 나는 아버지의 지시로 일기를 매일 써야만 했었는데, 이 일기 때문에 자주 혼이 나고는 했다. 일기를 매일 쓰는 일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고, 혼날 것을 알면서도 미련할만큼 나는 자주 일기를 쓰는 것을 미루고는 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무언가 내가 잘못을 할 때면 일기장을 함께 검사하며 밀린 일기의 몫만큼 더해 화를 내시며 혼을 내시고는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유를 하자면 밀려서 공백으로 남겨진 일기가 나의 죄라면 만약 아버지께서 그 죄를 용서하셨더라도 그 공백은 여전히 남아있다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미련할만큼 일기를 밀린 나는 1달, 혹은 2달치의 일기를 밀렸던 적도 있었는데 그 공백을 소설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다시 채워나가는 일은 굉장한 고역이었다. 당연히 다 채우는 것을 포기하고 드러눕기를 선택하고서 이후에 다시 아버지께 심하게 혼이 났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책임이란 늘 그 무게가 무겁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을 짊어지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짐을 누군가 대신 짊어져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것을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타인에게 의탁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이것을 과연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만 할까? 그것이 어리석도 잘못된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책임의 무게는 때때로 가혹하리만치 무거울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