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리 넉넉한 형편이 못 되었던 우리 집은 하지만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동물들로 언제나 어수선하고 부산했다. 괴팍한 제 성질을 추스르지 못해 툭하면 다른 동물들과의 사이에 마찰을 일으키곤 하던 싸움꾼 수탉. 뒤뚱거리며 걷는 자태가 우스꽝스럽던 진흙투성이 오리들. 아카시아 잎이나 질경이, 당근 따위를 유별나게 좋아했던 회색 토끼 한 쌍. 납작한 코를 벌름거리며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새까만 토종 돼지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어대다가도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면 금세 꼬리를 말고 “깨갱-” 비명을 지르며 잽싸게 제집으로 뛰어들어가 벌벌 떨던 똥개 한 마리.
누렁이. 그것은 왕방울만 한 눈을 끔뻑거리며 늘 무언가를 되새김질하던 우리 집 누렁 암소에게 내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누렁이는 꽤나 나이가 든 암소였다. 내 기억이 미치는 어린 시절 추억의 자리에는 언제나 녀석이 있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누렁인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우리 집에 살아온 듯했다. 나이 탓인지, 녀석은 매어둔 나무 아래 그늘에 누워 긴 꼬리로 이따금 귀찮은 듯 날파리를 쫓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조는 듯 조는 듯 되새김질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누렁이는 아직도 힘이 넘쳐났다.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고 논둑마다 파릇파릇 풀들이 덮이어 갈 때면 아버지는 누렁이 목에 멍에를 얹고 입에 풀 망을 씌워 산 너머 꼬불꼬불한 논 자락을 온종일 쟁기질하셨다. 이른 봄부터 모내기가 끝나는 유월 초까지 누렁이는 그 무수한 쟁기질에 써레질을 철벅 철벅 무논을 걸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감당해냈다. 누렁인 이따금 짙푸른 풀들이 제법 자리 잡은 비탈진 논둑을 바라다보았다. 낳은 지 얼마 안 된 제 새끼가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인 듯했다. 천방지축 송아지는 온종일 기다란 논둑 이 끝에서 저 끝을 꽃사슴처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풀을 뜯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제 어미 생각이 나는지 열심히 써레질을 하는 누렁일 보며 “매에-” 하고 울었다.
그러나 그 빡빡한 농번기의 고된 일들이 늙은 누렁이에게는 그다지 수월해 뵈지만은 않았다. 아슬아슬 좁은 논둑길을 걸어 어머니가 머리에 새참을 이고 아버지가 일하시는 무논에 나타나실 때면 한나절에 한 번쯤 누렁이는 쉴 짬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녀석의 코뚜레를 잡아 멍에를 내려놓고 풀망을 벗겨 자유롭게 해주었다. 하면, 녀석은 한참을 씨근덕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급하게 젖을 빠는 제 새끼의 등을 혀로 곱게 핥아주었다.
그랬다. 짧지 않은 농번기 내내 이어지는 그 버거운 쟁기질과 써레질을 늙은 누렁이가 별 탈 없이 감당해낼 수 있었던 것은 힘이 넘쳐서라기보다는 일생을 통해 단련되어지고 익숙해져 온 때문이었다. 평생을 농군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한 바리나무를 실은 무거운 지게가 가뿐하게 느껴질 만큼 어깨에 익숙해졌듯 구속의 굴레인 그 멍에와 풀망이 누렁이에겐 몸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누렁이는 아버지와 호흡이 잘 맞았다. 그랬기에 종종 이웃의 김 씨, 혹은 박 씨 아저씨가 길이 잘 든 누렁이를 빌려 진종일 써레질에 쟁기질을 한 날이면 녀석은 유난히 더 씨근덕거리며 힘들어했다. 연한 풀을 섞어 쇠죽을 끓여 뒹겨(쌀겨)를 얹어 퍼주어도 좀체 입에 대려 고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누렁이를 끔찍이도 아끼셨다. 힘겨운 농사일이 계속되는 때면 아버진 가마솥 아궁이에 잔솔가지를 잔뜩 집어넣어 불을 지피고 연한 수숫대를 섞어 쇠죽을 끓이셨다. 쇠죽을 먹는 동안 아버지는 철 솔을 가져다가 누렁이 등을 긁어주셨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외양간을 떠나지 않고 녀석이 마지막 남은 양을 다 먹기까지 우두커니 서 계시곤 했다.
농번기가 끝나고 매미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리는 초여름으로 접어들면 손꼽아 기다리던 누렁이와의 신바람 나는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나는 뒷산 자락 고추밭 가 커다란 단감나무 아래에 묶어둔 누렁이를 데리고 들로 산으로 나갔다. 꼴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여름과 가을 동안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일종의 중차대한 임무였지만 내겐 일이라기보다는 신나는 놀이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일종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내가 자라난 마을 가까이엔 높은 산을 끼고 크게 굽이돌아 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을 따라 마을 쪽 지경(地境)에는 어른 몸통의 두세 배는 족히 될 듯한 아름드리 미루나무와 은사시 나무들이 시원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 발 밑으로는 축구 경기장을 방불케 할 만큼 짙푸른 천연잔디가 펼쳐져 있고, 그 주위로 민들레・제비꽃・산나리 따위 들꽃들이 올망졸망 피어났다. 강 우편 산기슭에서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좁다란 골짝 물이 실개천을 이루어 강으로 합류해 들었는데, 손을 움켜 목을 축여도 탈이 안 날 만큼 차고 맑았다.
온 여름날을 나는 누렁이를 미루나무 숲 풀밭에 풀어놓은 채 때 구정물 흐르는 불알친구들과 어울려 지치도록 자맥질을 하고, 작살과 투망으로 쏘가리・메기・모래무지 따위를 잡고, 강 건너 뜨끈뜨끈한 백사장에서 타잔놀이를 하며 보냈다.
신바람 나는 여름이 가고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이 되면 나는 누렁이와 송아지를 데리고 칡넝쿨이 우거진 산기슭이나 가을걷이가 끝난 논두렁을 헤매 다녔다. 잡초가 듬성듬성 돋아나고 기껏해야 리어카 한 대 정도의 통행을 간신히 허용할 만한 길가에 쭈그리고 앉은 채로 나는 마음껏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누렁이를 놓아준 뒤 질서 정연한 개미들의 행진과, 흙을 파내 집을 짓는 모습, 빵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고 아직 죽지 않은 지렁이・송충이・잠자리 따위 공충들을 사냥하는 광경을 관찰하느라 온통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따금 사마귀나 메뚜기 따위를 잡아다 개미굴 근처에 놓아두고 개미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개미와의 놀이에 시들해질 즈음이면 나는 누렁이를 끌고 야트막한 산으로 내달았다. 참나무를 기어 다니는 집게벌레(사슴벌레)나 풍뎅이 따위를 잡아 땅바닥에 놓고 놀기도 하고, 가끔은 겁도 없이 땅벌 집을 공격하다 한바탕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놀이들에도 싫증이 나면 나는 『검은 별』・『괴도 루팡』・『홍길동전』 따위 소설을 들고 담뱃잎 수확이 끝나 잡풀과 칡넝쿨이 얼키설키 우거진 산자락에 올랐다. 그러고는,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독서삼매에 빠져들다 정해진 귀가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황급히 누렁일 몰아 고삐로 재촉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가을걷이가 얼추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누렁이와 천방지축 송아지를 이끌고 먹여도 먹여도 끝이 없을 듯 잡풀이 우거진 담배 밭으로 갔다. 그날따라, 누렁이와 송아지가 안전하게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 기본 의무마저 망각한 채 나는 온통 책에 빠져 있었다.
내가 주위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차린 건 해가 서산 마루턱을 턱걸이하듯 넘어가고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였다.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려 누렁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누렁인 보이지 않았다. 누렁이가 뜯다 만 짤막한 잡풀들이 쓸쓸한 가을바람에 미세하게 떨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다리에 생채기가 나는 것도 괘념치 않고 마구 수풀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누렁이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 데서도 누렁인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스산한 저녁 바람과 함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실망한 눈빛과 무겁게 침묵하신 모습도 떠올랐다.
어느 사이 주위는 산과 나무의 어렴풋한 실루엣만으로 사물을 가까스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어둑해졌다.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하지만 마냥 퍼질러 앉아 울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누렁일 어떻게든 내 힘으로 찾아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누렁일 얼마나 아끼시는데…….’ 녀석을 찾지 못하면 절대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리라.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설사 용서해주신다 해도 누렁이와 송아지를 찾지 못한 채로는 돌아갈 면목이 없을 터였다. ‘누렁이가 우리 집에서 어떤 존재인데…….’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퍼질러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힘닿는 데까지 찾아보아야 했다. 누렁이가 지나갔을 법한 방향을 잡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주위는 이제 완벽한 어둠에 휩싸였다. 무서웠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채 나는 미친 듯이 수풀 속을 헤매 다녔다. 억새와 가시덤불에 긁혀 팔다리엔 온통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였다. 몇 번인가 발을 헛디뎌 무릎에 멍이 들었는지 욱신욱신 쑤셔왔다. 게다가 급히 달리다 크게 잘못 디디는 바람에 발을 접질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누렁인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이젠 누렁일 찾아야 한다는 의지도 한 풀 꺾였다. 불현듯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외로움이 엄습했다. 세상에 나 홀로 버려진 듯 슬프고 암담했다. 아픈 다리를 주무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서럽게 울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시나브로 주위가 환해지고 별안간, 사람들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틀림없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손에 손전등에 횃불까지 든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내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눈을 막 비비고는 양 미간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무리 중 하나가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요 녀석, 누렁인 어디다 팔아먹고 여기서 팔자 좋게 자빠져 자고 있었네 그려!”
그제야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술 탁보 김 씨 아저씨였다. 그 밖에도 동네 이장 아저씨와 청년들 몇이 더 있었다. 나는 그만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김 씨 아저씨가 짓궂게 놀려댔다.
“울지 마, 인석아! 뭘 잘했다고 찔찔 짜능겨 시방. 불알을 한쪽 까버릴까 부다 기냥!”
이장 아저씨가 말했다.
“그만 좀 하셔요. 그렇지 않아도 많이 놀랐을 텐데……. 근데, 너 어디 다친 덴 없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렁이는요?”
“걱정 마라. 아부지가 몰고 곧 이쪽으로 오실 게다. 어디 좀 보자, 어이구, 이 녀석 많이 다쳤구나! 온통 상처투성이인 걸 보니…….”
이장 아저씨는 손전등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때였다. 산 아래쪽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아버지였다. 누렁이와 송아지도 함께 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덜컥 겁이 났다. 호되게 꾸중을 들을 것만 같았다. 아버진 나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오셨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근데,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호된 꾸지람을 하시리라고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리 아버진 약간은 상기되었지만 아주 부드러운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어디 다친 덴 없니? 맘고생이 심했겠구나! 왜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서……. 엄마랑 아버지랑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버지는 눈물로 범벅이 된 내 눈가를 닦아주면서 말씀하셨다. 갑자기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다시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누렁이 때문에……. 끄윽 끄윽…….”
“욘석, 많이 겁먹었었나 봐요.”
동네 청년 하나가 끼어들었다.
손전등에 횃불을 환하게 밝혀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큰 강을 옆구리에 끼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뒤주골산을 사박사박 내려오고 있었다. 눈이 왕방울만 한 늙은 암소 한 마리와 어미 소 곁을 한 발자국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듯 바지런히 따라 걷는 황송아지 한 마리를 앞세운 채. 소년은 제 아비의 등에 업혀 있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누렁이 잃어버렸을 때 왜 바로 집으로 오지 않았니? 그랬으면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구, 엄마랑 아버지도 덜 걱정했을 텐데…….”
“하지만 누렁이 때문에…….”
“누렁인 아버지가 찾으면 되지. 설사 못 찾는다 해도 그게 무슨 대수겠니! 아버진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얼마나 가슴 졸인 줄 아니?”
아버지 등에 업힌 소년은 다시 한 번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저만치 앞서 걷고 있는 누렁이랑 송아지가 지금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된 적은 다시없었던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