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 앞 풀무질이야기_서울에서두개 남은인문사회과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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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대학로에서 생활을 했다. 상업화가 이미 많이 진행된 대학로에서 그래도 자본주의의 흐름속에 섬처럼 자신만의 아우라를 지켜내고 있는 공간이 내 기억속에 3곳이 있었다.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과 논장, 그리고 학림다방. 가난했던 학창시절, 내가 이들의 매출에 기여한 바는 극히 미미했지만, 그래도 대학로에서 이런 곳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륜동 주민으로서 뭔지 모를 자부심이 있었다.


그 중 학림다방은 마로니에 공원 맞은편 (2층이지만) 비교적 위치가 좋고 정말 낡았지만 클래식한 분위기가 멋들어진 곳이었다. 당시 푹 빠져서 읽고 있었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의 전혜린이 자주 찾아서 글을 쓰던 곳이라 해서 더 좋아하게 된 곳. 논장도 비교적 번듯한 공간에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인문사회서점)풀무질은 정말 작고 낡은 건물에 수십년 동안 한번도 바꾸지 않았던 것 같은 간판을 달고 문을 열면 훅 하고 들어오는 책냄새로 가득한 그런 곳이었다.


4~5평 남짓해보이는 1층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2층을 합해서 10평도 안되는 그 공간에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져 있었고, 책을 고르고 있으면 책방을 운영하시던 은종복 선생님 또는 그의 형님분께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인문사회과학책들 중 읽어봐야할 책들이라며 추천해주셨었다.


낡은 계산대 옆에는 A4용지에 폰트 8정도로 글이 빽빽하게 채워진 본인들이 직접 쓰신 날카로운 사회논평글이 비치되어있었고, 계산을 하고 책을 봉지에 넣어주실 때 항상 그 논평글 한장을 책에 끼워주시면서 “한번 읽어봐요~”라고 말씀하셨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평글들, 비정규직근로자들에 대한 이야기, 정권에 대한 비판 등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배들은 옛날에 핸드폰도 삐삐도 없었던 시절에는 풀무질의 게시판에 쪽지를 붙여서 서로 연락을 취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금서들도 풀무질에서만큼은 구할 수 있었는데 이때문에 주인 아저씨가 불온서적 취급행위로 남영동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날, 풀무질 문이 닫혀 있었다. 혹시 문을 닫았나 하고 봤더니 맞은편 지하로 자리를 옮겼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없어지지는 않아 안도를 했지만 길가를 지나칠 때 항상 보였던 풀무질이 지하로 옮겨지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직접 가보니 지하이긴 했지만 오히려 공간은 더 크고 좋았다. 그리고 넓어진 공간에서 시낭독, 인문철학고전읽기, 그림그리기 등의 모임도 진행하실거라 하셨다.


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무렵, 풀무질에서 양창수 대법관이 쓴 민법입문과 현암사 소법전을 샀다. 내 인생의 첫 법학서적을 들고 있는 나를보고 은종복선생님께서 '법공부를 시작하나봐요' 라고 말씀하였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더니, "열심히 공부해서 꼭 사회약자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법조인이 되어주세요"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항상 남아있다.)


아마 당시 구입했던 민법입문 책 첫 페이지에 저 말을 직접 적어주셨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민법입문 책이 어디로 갔는지 사무실에 찾아봐도 없다. 아마도 변호사시험을 치고나서 책정리를 하다가 없어졌나보다.


그후로도 종종 학창시절이 그리워 아내와 함께 모교를 방문할 때 가끔 한번씩 풀무질에 들렀지만, 실제로 내가 책을 살 때는 대부분 인터넷서점을 이용했다.


학창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공간인 풀무질이 무탈하게 대학로 한 모퉁이를 언제까지 지켜주고 있을 것을 기대는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채 편리함을 좇아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었다. 아마 많은 성대 학생들 또는 졸업생들이 풀무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하고 나처럼 먼 발치에서 지극히 소극적으로 응원하는 마음만 가득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랬던 풀무질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 어떤 뉴스보다 안타까운 소식. 25년간 인생을 걸고 풀무질을 지켜온 풀무질 일꾼 은종복선생님이 애타게 인수자를 찾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인수자고 나타나지 않으면 문을 닫게 된다고…


안타까운 마음과 깊은 상실감, 미안함, 극적으로 인수자를 찾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이다.


내가 그 구체적인 속사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인터넷 서점의 시장장악, 불합리한 출판유통구조, 젊은 세대들의 독서기피,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파괴하는 임대료 부담 등이 한 원인일 것이라 생각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눈먼 돈’들이 왜 인생을 다바쳐 의미있는 일을 해나가고 존재만으로도 사회적 기여를 하는 이런 곳에는 지원이 되지 않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부디 훌륭한 분이 나타나 1985년부터 이어온 서울에 단 두개 남은 인문사회서점 풀무질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아래는 1993년부터 25년간 인생을 바쳐 책방을 지켜낸 은종복 선생님의 글. 긴 글이지만 1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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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겠어요, 책방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다음에 쓴 글은 동네책방을 살리겠다는 뜻으로 만든모임에서 올 초에낼 책에 들어갈 글이에요. 그글을 쓸 때만 해도 열심히 책방을 꾸려보려 했지요. 긴글을 읽게 해 드려 더욱 죄스럽네요.
책방은 올해 5월까진 제가 일을 해요. 마무리를 잘하고 싶네요. - 2019년 1월 6일 일요일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이 땅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왜 있어야 하나

나는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5년째 꾸리고 있다. 1980년대 초에는 서울에서만도 이런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스무 개 가까이 있었다. 지금은 ‘풀무질’과 서울대 앞에 ‘그날이오면’을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사라진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서울대 앞 ‘백두’ ‘전야’, 고려대 앞 ‘장백서원’ ‘황토’, 연세대 앞 ‘오늘의책’ ‘알서림’, 서강대 앞 ‘서강인’, 한국외국어대 앞 ‘죽림글방’, 성균관대 앞 ‘논장’ ‘변증법’, 서울시립대 앞 ‘창의’, 한양대 앞 ‘한마당’, 이화여대 앞 ‘다락방’, 홍익대 앞 ‘이어도’, 숙명여대 앞 ‘숙명인’, 경희대 앞 ‘지평’, 중앙대 앞 ‘청맥’, 동국대 앞 ‘녹두’, 건국대 앞 ‘인서점’이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가 쏜 총으로 죽었다. 18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던 군사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철창으로 끌려가고 고문으로 죽었다. 그가 죽자 제대로 된 민주주의 나라를 세울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1980년 5월 전두환 군사정권은 총칼로 광주 사람들은 죽이며 이 땅에 또 다시 학살정권을 세웠다.

그 때 뜻이 있는 사람들은 세 가지 일을 했다. 세상을 바꾸는 글을 쓰거나, 출판사를 만들었다. 또 하나는 대학 앞에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냈다. 그 일을 한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서와 구치소에 자주 끌려갔다. 그때 인문사회과학 책을 낸 출판사들 가운데 많은 곳이 지금은 문을 닫았다. 그 출판사들도 떠올려 본다.

대동, 한, 지양사, 녹두, 민맥, 백의, 현장에서미래를, 일터에서, 새날, 장백, 아침, 청사, 오월, 해돋이, 노둣돌. 이 보다 훨씬 더 많았다. 창작과비평사, 동녘, 역사비평사, 한길사, 돌베개, 풀빛, 백산서당, 문학과지성사, 문화과학사, 이론과실천, 두레, 중원문화, 미래사 같은 출판사들은 아직도 책을 내고 있지만 인문사회과학 책뿐 아니라 대중 교양서적들을 더 많이 만든다.

이제는 책을 낸다고 국가기관에 잡혀 가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때 인문사회과학 책방에는 출판사를 알 수 없는 책들도 많았다. 그 책에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글들이 실렸다. 책뿐 아이라 자료집, 신문들도 많았다. 세상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볼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 다루었다. 그것들은 대개 국가보안법 상 이적표현물에 해당되었다. 책방 일꾼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팔았다. 그러다 글을 쓴 사람도 책을 만든 사람도 책을 판 사람도 모두 철창으로 끌려갔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지만 국가보안법 앞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군사독재정권이 탄압을 할수록 책들은 더 많이 팔렸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은 과 학회와 학생 동아리에서 책읽기를 했다. 대학에 들어오면 1년 동안 읽어야 책들을 선배들이 지도해 주었다. 사회변혁에 온몸을 바치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공개되지 않은 지하에서 모임을 꾸려서 학습을 했다. 모임을 이끄는 선배들에 따라 책읽기도 달랐다.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민중들이 어렵게 사는 것이 한반도 분단과 미국 패권주의자들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 또 하나는 한국과 미국의 자본가들에게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앞에 사람들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 약칭 NL)’을 무기로 ‘반미자주화와 반독재민주화’를 외쳤다. 뒤에 사람들은 ‘민중민주주의혁명론(약칭 PD)’이 옳다고 보면서 ‘반자본주의반파쇼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때는 위에 적은 두 그룹 말고 수많은 혁명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를 보는 눈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심하게 다투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세상을 제대로 세우겠다는 신념으로 불탔다. 아무튼 그들은 책을 쓰고 책을 만들고 책을 팔고 책을 읽고 혁명 조직을 만들고 돌멩이와 화염병,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었다. 그들에 맞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뿐 아이라 김영삼 정권에서도 최루탄과 지랄탄을 쏘았고 각목으로 때렸고 불심검문을 했으며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으로 잡어 갔다. 때로는 고문으로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어 오랫동안 옥살이를 시켰다.

1980년대 말과 1990년 초 소련과 동구사회주의나라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버렸다. 한반도 남녘에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꿨던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념의 종주국이던 소련이 공산주의를 버렸으니 갈 길을 잃었다. 여전히 한반도 북녘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밀고 나가고 있었지만 남녘 진보 활동가들이 힘차게 혁명운동을 할 명분을 잃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소련을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국가이기에 공산주의 깃발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봤다. 아무튼 한반도에 있는 혁명조직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새롭게 힘을 모았던 시민운동조직과 노동운동조직도 마찬가지로 힘을 잃어갔다.

책방 풀무질은 1985년 여름에 문을 처음 열었다. 내가 네 번째 일꾼으로 1993년 4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소련 동구권 사회주의나라들이 몰락을 해서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덜 볼 때다. 그래도 뒷심이 있어서 지금보다는 훨씬 책들이 많이 팔렸다. 창비에서 내는 계간지 ‘창작과비평’은 30부를 받았는데 열흘이 지나면 또 주문을 했다. 지금은 딱 2부 들어오는데 겨우 팔린다. ‘이론’이라는 부정기간행물도 있다. 그 책은 대학원생은 되어야 읽을 수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읽기 힘든 글들이 들어있다. 그 책도 풀무질에서만 한 달에 200부 넘게 팔렸다. 전태일 평전, 철학의 기초이론, 경제학의 기초이론, 전환시대의 논리, 아리랑(님 웨일즈), 껍데기를 벗고서, 글 읽기와 삶 읽기, 벗, 완전한 만남, 해방 전후사의 인식 같은 책들은 한 달에 100부 넘게 팔렸다. 위에 적은 책 말고도 훨씬 많은 책들이 팔려 나갔다. 성균관대에서만도 책을 읽는 모임이 백 개가 훨씬 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미나 도서로 정해지면 몇 백부씩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진보 책읽기 모임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농촌으로 내려가거나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출판사들도 마르크스, 레닌이나 북쪽 김일성을 따르는 책들을 내기 보다는 새로운 서구 진보이론과 김일성주의를 새롭게 보는 책들을 냈다. 1995년 들어 한국에는 인터넷서점이 생기면서 완전도서정가제가 무너졌다. 또한 영화산업이 더욱 발전했다. 사람들은 동네에서 책을 보고 책은 싼 값으로 인터넷서점을 이용했다. 대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책을 읽기 보다는 영화 한 편 보기를 더 좋아했다. 선배들은 그런 후배들에게 억지로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읽도록 할 수 없었다. 그 많던 진보 책읽기 모임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이 스무 개도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겠다고 나서는 동아리는 한 손가락에 꼽는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이 핀 정책이 세 가지가 있다. 일명 3S정책이다. 스크린, 섹스, 스포츠. 영어 알파벳 첫 자를 따서 나온 말이다. 1980년대에 이런 정책은 먹히지 않았다. 1990년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퇴폐음란스포츠문화가 퍼져 나갔다. 물론 그런 문화들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을 진지하게 보려는 생각들은 점점 흐려졌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이 되어있고 노동자 농사꾼 도시빈민이 누리는 삶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진보 혁명 모임은 잘 꾸려지지 않았다.

더불어 인문사회과학 책방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대학 앞에 있던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인문사회과학 책방뿐 아니라 동네책방이 없어졌다.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내던 출판사들도 문을 닫거나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 책이나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옹호하는 책들은 내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주의 공산주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연구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혁명가라고 했던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유기농 농산물을 만드는 농사꾼이 되고 유기농 매장을 만들고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다. 교육을 바로 세우려고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만들고 대안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민중들 삶을 옥죄는 사회시스템을 바꾸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아무리 환경운동을 해도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더럽히는 일은 더욱 빨라졌고 자본가들 배만 불리는 신자유주의 물결을 바꿀 수 없었다.

누군가 내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이다.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맞으려면 돈에 눈 먼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바꿔야 한다.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려면 한반도 남녘 정권은 더 이상 미국 첨단무기를 사오지 않아야 하고 미국 패권주의자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한반도 북녘은 김정은 일당 체제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하고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 모두 꿈같은 이야기다. 이 꿈을 이루려면 한반도 남녘 대학 앞에 사라졌던 인문사회과학 책방들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

이런 꿈이 단지 어렵게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하는 사람이 하는 푸념으로 들리는가. 아니다. 지금 대학을 보라. 언제부턴가 대학은 기업이 바라는 사람을 키우는 공장이 되었다. 대학은 두 가지 일을 할 때 뜻이 있다. 하나는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연구하고 이론을 만드는 곳이다. 또 하나는 그 나라에서 잘하는 정책은 손뼉을 쳐주고 잘못된 길을 가면 비판하고 거리에 나서 막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곳이다.

보라. 지금 대학이 그런 기능을 하고 있는가. 어느 대학에나 ‘산학협력단’이라는 것이 있다. 대기업과 대학이 서로 힘을 합쳐서 경제성장을 이루려 한다. 굳이 그런 뜻이 있다면 ‘학산협력단’이라고 해야 한다. 기업체가 대학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대학사회가 기업문화를 이끌고 나가야 한다. 지금 대학은 ‘기업노예노동양성소’가 되었다. 지난날에는 ‘기업노동양성소’였는데 이젠 대학행정책임자와 대학교수, 학생들이 이름 나고 크고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려고 스스로 몸을 바짝 엎드려 산다.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지금 대학은 1학년 때부터 일터 찾기 공부에 매달린다. 대학 1, 2학년까지는 인문 교양 공부를 충분히 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틀에 박힌 공부에서 벗어나 끝없는 상상을 펼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사실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1987년 6월 항쟁의 한 복판에 있던 사람으로 그때 세상을 확 바꾸지 못한 한이 남아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을 해도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사람들이 굳이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테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오로지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려고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암기식 공부에 매달리지 않으리라.

지금 내가 대학 앞에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다시 만들어져야 하고 책방 풀무질이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이 시대를 잘못 보고 뒤떨어지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고 노인들과 아이들이 제일 불행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언제 갚을지 모르는 많은 돈을 빌려서 꾸역꾸역 산다. 자연은 아주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 숨을 쉴 수 없고 깨끗한 물은 줄어들고 땅은 농약으로 더러워지고 메말랐다. 핵발전소와 핵무기가 한반도 남과 북에 종말을 알리는 시한폭탄으로 우뚝 서있다.

물론 대학 앞에 인문사회과학 책방들이 다시 일어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 앞에 있는 책방들은 사회를 제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동네에 독립책방들이 많이 들어섰다. 지난 5년 사이에 서울에서만도 30개 가까이 문을 열었다. 그 가운데 몇 개는 1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지만. 이런 작은 책방도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데 힘을 보텔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책방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그곳에는 세상을 바꾸는 생각을 담은 고전들은 찾기 힘들다는 것을. 모든 책들이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는데 한 길로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우리 사회를 놔둬야 하나. 길을 찾지 않으면 인류 전체가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덴마크에서는 1940년대부터 사람들끼리 책읽기모임을 하고 있다. 그 나라 사람들 90% 넘게 작은 모임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과 사람이 사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임시민회를 만든다. 1년 임기로 제비뽑기로 사람들을 뽑아서 국회와는 다른 ‘국민의회’를 만들어 나라 정책을 정한다. 그 나라는 아직도 핵발전소 하나 없이 잘산다. 그 힘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힘에서 나온다. 당연히 대학 앞에 책방도 많다. 이것이 숙의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난날처럼 마르크스, 레닌, 김일성, 김정일을 따라 하지 않더라도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분명 있다.

2018년 12월 5일 아침 해로 동녘이 붉게 물들 무렵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771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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