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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학 관점에서 바라본 최저임금협상_류재언변호사

"실패한 협상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_류재언

 협상학 관점에서 바라본 최저임금협상_(류재언 변호사의 협상칼럼)

"실패한 협상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문지면을 도배하는 최저임금과 관련된 식상한 문구들


매년 최저임금 법정고시기한인 8월 5일이 다가오면 대한민국은 분열된다. 

최저임금의 두자릿 수 인상을 주장하는 노동계측과 최저임금의 동결 또는 삭감을 요구하는 경영계측.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저임금이 고시되면 그 누구도 웃지 못하고 노사 모두가 한숨섞인 불만을 토로한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최저임금협상의 현주소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협상에 있어 성공한 협상과 실패한 협상을 나누는 기준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협상의 결과물이고, 또 하나는 인간관계이다.


즉 협상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우며 협상 이후 인간관계까지 돈독해졌다면 이는 더할나위없이 성공적인 협상이다. 만약 둘 중하나는 만족스럽지만, 다른 하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이는 성공한 협상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최저임금 협상은 전적으로 실패한 협상이다.


우선 협상 결과 차원에서 양측은 최저임금협상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최악의 협상 결과"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 어떤 당사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경영계의 반발 (http://news1.kr/articles/?2722009)

노동계의 반발(http://www.sedaily.com/NewsView/1KYVY8RZEP)



관계 차원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최저임금협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서로 으르렁거리며 기싸움을 시작하며,

최저임금 협상 중에는 상대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며,

협상 종료 후에는 상대가 얼마나 무례하며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지에 대해 언론에 폭로한다.

양측 간에 "관계"라는 것을 언급할 수도 없을 만큼 상호간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과연 이렇게 반복적인 협상의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협상학 분야에 있어 세계적인 석학인 와튼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에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즉 협상에 있어서 협상내용이나 협상조건보다는

협상 과정의 절차적 합리성협상을 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가

성공적인 협상 결과를 이끄는데 훨씬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많은 경우에 있어 실패한 협상은 이미 협상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나 호감이 전혀없고 협상 절차의 합리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라면, 상대방에게 아무리 좋은 협상 조건을 내밀어도 만족스러운 합의점을 찾기 힘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러한 분석은,

우리나라 최저임금 협상의 실패원인을 분석하는데에 있어서도 유의미하다.



절차적 차원에서 드러난 한계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 최저임금법에 의해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장관이 매년 8월 5일까지 결정하여 내년 최저임금을 국민들에게 고시하도록 되어있다.


특히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최저임금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게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을 살펴보면, 전체 27명 중 근로자위원이 9명, 사용자위원이 9명, 그리고 공익위원이 9명이다.


이중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매년 간극을 좁힐 수 없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예컨대 사용자위원측은 수년째 임금동결 또는 삭감을 주장하고 있고, 근로자위원측은 매년 두자릿수 임금인상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간의 거리는 지구와 달의 거리와 같이 결코 좁혖지 않는다.), 결국 최저임금의 결정은 공익위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협상 중 공익위원들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경우가 무려 8번에 달하며, 노사 및 공익위원이 합의를 이룬 것은 2007년 한번 뿐이다.


달리말하자면 최저임금결정 이후,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적용받게될 노사 양측을 대표하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아무런 결정권이도 없이 서로의 주장만 허공에 외치는 짓을 반복할 뿐이며, 사안의 핵심 결정은 언제나 정부의 의중이 반영되어 대통령에 의해 위촉된 공익위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절차로 이루어지는 협상은 결단코 만족스러운 협상결과를 생산할 수 없다. 협상 당사자들은 협상을 진행할수록 더욱더 깊은 무력감만 느끼게 되고, 자신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게되어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해당 결과를 수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 즉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호감의 차원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호감에 따라서, 어떤 경우는 협상을 하기도 전에 무조건적으로 '동의'를 하는 경우도, 반대로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거절'을 하게 되는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는 협상에 있어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협상에 있어 최고의 전략은 상대방으로부터 신뢰와 호감을 얻어 협상 자체가 필요없게 만드는 것이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가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의 절반 이상을(무려 55%) '사람의 문제'라고 분석한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는 서로간에 정상적인 대화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와 호감이 결여되어 보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사 한측이(올해의 경우 근로자위원 9명이 전원퇴장하였으며, 작년에는 사용자위원 9명이 전원퇴장하였다) 표결직전 전원퇴장한 상태로 최저임금이 결정되었으며,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은 매해 반복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두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협상은 협상을 하기 전부터 이미 실패가 예견된 협상이다.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두 요인인 협상 절차의 합리성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모두 결여된 상태에서의 협상 결과가 결코 만족스러울리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노사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협상 절차의 제도적 보완과 함께 서로간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년간 지속되어온 최저임금협상의 실패는 내년에도, 그리고 그 후년에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법률사무소 율본 협상전문가 류재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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