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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정기주주총회 단상

[2022년 정기주주총회 복기]


지난 달 기업들의 주주총회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우선 주주총회를 여는 시기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주요 주주들을 모시고 인수합병이나 스톡옵션 부여, 신임이사 선임 등의 굵직한 의사결정을 해야되는 경우라면 가급적 3월 마지막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  


3월 마지막주에 주총이 매일 있는 투자사들은 다수고, 하루에 3개 이상씩 몰리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주요 주주의 참석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세무법인과 협의해서 재무제표 등 결산 자료를 조금 앞당겨 준비한 뒤, 3월 둘째주나 늦어도 셋째주에만 주총을 개최해도 무엇인가 더 신속하고 더 잘 준비된 느낌이 든다. 


주주총회 통지 방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서면으로 보내는 기업도 있고, 이메일로 보내는 기업,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기업, 문자를 보내는 기업, 그리고 대표가 직접 통지하는 경우, 경영지원실장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 등 통지 방식도 차이가 있다.   


올해는 쿼타북 등 주주관리 서비스를 활용해 주총을 통지하는 기업들이 눈에 띄었다. 쿼타북에서 발송되는 이메일을 프레임을 활용해 소집통지서, 재무제표, 위임장, 서면의결서까지 제 때 깔끔하게 보내오면 효율적이고 잘 정돈된 느낌이 든다. 업무처리도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어서 좋다. 


주주총회 장소 선택도 중요하다. 보통 회사 사무실의 회의실에서 진행하지만, 조용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경우도 있다. 골프장으로 주총을 초대하기도 하고, 코로나 상황임을 감안해 줌으로 접속 가능하게 하는 기업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았다. 


사실 주주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주주총회 당일, 바쁜 시간을 쪼개서 참석한 주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일 것이다. 그 날의 대화의 질이 주총에 참여하는 주주들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그런데 주총에 참여한 주주들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어떨까?


사실 투자자와 기업의 관계는 투자계약서에 싸인하고 주금을 납입하는 순간 갑을이 뒤바뀐다.

RCPS에, 이해관계인 개인 위약벌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아무리 빡빡한 계약서를 체결해 둬도 사실 그러한 조항들이 발동되는 경우는 업계에서 극히 드물다.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그런 조항을 발동하거나 소송을 하는 것 자체가 투자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주는 투자한 기업과 핵심 이해관계인들이 잘 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을이다.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대표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사실 많지가 않다. 한해를 알차게 보낸 대표라면 듬뿍 칭찬을, 다소 힘든 한해를 견뎌낸 대표라면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전하려고 참석을 하는 것이고, 거기에 자기 의견 한두마디 건내고 오는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주들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괜히 주주들에게 각을 세우며 투덜대거나, 무엇인가를 숨기려하거나, 주주들의 다소 부정적인 피드백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해서 주총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주주가 실적에 대해 살짝 코멘트를 하는데, 그렇게 압박하면 진짜 대표이사직 던지고 주식도 넘겨버리겠다는 식으로 대처하는 경우도 봤는데 그런 경우 주주는 정말 당황스럽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주는 철저히 내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같은 편에게 그럴필요가 없다. 만일 까다로운 메시지를 전해야된다면, 주주들 그룹 중에서 리딩을 하는 주주에게 미리 메시지를 전하고 나머지 주주들을 설득시켜 두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그러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담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주주총회를 앞둔 대표의 최대 무기는 솔직함과 자존감이다. 솔직하게 회사의 상황을 오픈하고 주주들이 함께 고민을 할 수 있게 유도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잘 나갈 때는 자만심이 내비치지 않게, 힘들 때는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게 톤을 잡고 커뮤니케이션 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주주입장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말 만난 대표는 주주들이 신규 사업에 대해 다소 부정적 피드백을 한 부분에 대해 계속 그 말을 곱씹고 있었다. 오늘 만난 대표는 주주들이 지난 4년동안 한번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속도’에 대해서 코멘트를 받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1년에 한번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표와 핵심 이해관계인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자극을 주되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분위기가 차가운 주총도 있다. 


공동창업을 했다가 찢어진 소수주주가 등기임원자리를 요구하거나, 10%가 넘는 주식을 가지고 퇴사해버린 주주의 구주를 회수하라고 투자자가 압박을 하거나, 소수주주가 배당을 요구하거나, 대표의 과도한 보수와 판관비를 비난하기도 한다. 


올해는 정기 주주총회 시기에 맞춰 주식처분금지가처분을 하거나, 주식명의신탁계약해지에 따른 명의개서 청구의 소를 제기 당한 기업도 보았다. 


그 모든 케이스 중에서 가장 최악인 건 4월 첫째주가 된 이 시점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기업일 것이다. 사실 반성해야 한다. 꽤나 많다. 심지어 수억에서 수십억을 투자 받은 기업도 이런다. 바쁜거 알고, IR로 정신없는거 알고, 회사에 크고 작은 이슈가 많다는거 안다. 그래도 1년에 한번 하는 법정 의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거나, 인식하고도 의도적으로 스킵하는 경우 분명한 문제이다. 


주주들이 주총의 특정 아젠다에 대해 반대할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주주총회를 인식하고 있고 이 기업은 주총을 어떻게 통지하고 어떻게 진행하는지, 작년에는 어땠는지, 올해는 어쩔건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 등을 지켜보고 있고 궁금해하고 있다. 


1년에 한번 하는 주총. 


주주를 초대하는 기업은 한발짝 더 주주의 입장에서,

초대받는 주주는 한발짝 더 기업의 입장에서,

한 번 더 마음을 헤아려보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청담 덕후선생

사진은 90년대생 여성 CEO와 COO가 이끄는 스타트업의 1회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장소. 


덕후들이 모인 힙한 장소에서 초대받고 아재티 안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올해 초 투자한 이 기업의 주총통지서 

말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주총회 참석 준비물: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할 편안한 마음과, 

애정 가득한 조언 지참 부탁드립니다 : )


실제로 주주총회 통지서에 귀욤뽕짝 이모티콘이 박혀있는건 나도 처음 봤는데, 너무나 낯설고도 신선했다. 

주주들은 대표가 무얼해도 일단은 응원부터할 수밖에 없는게 확실하다ㅎㅎㅎ 되돌릴 수없이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면.


P.S. 위 글은 주주들의 성향과 백그라운를 알고 있는 비상장회사의 경우에 적용되며, 크라우드 펀딩 등을 받아 주주들이 수백명이거나,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주주들의 행동이 예상되지도 않고 각자의 이익에 따라 입장이 갈리기에 이 글의 분위기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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