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중앙일보에 '작은 거인' 가수 김수철에 대한 얘기가 실렸다. 1987년 무용제에 출품한 '0의 세계'란 음악이 심사위원 전원 찬성으로 음악상에 선정되고도 대중가수라는 이유로 수상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김수철은 2년 뒤 같은 무용제에서 결국 음악상(작곡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대중음악에 대한 제도권의 무시와 갑질이 다반사였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가리키는 K팝이 대세고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조차 K팝을 부러워할 정도로 위상이 대단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소위 '대중가요'는 한 수 아래로 취급됐다. 흔히 딴따라로 불리던 그 당시 가수들은 지금처럼 팬들의 사랑은 받았지만 권력과 제도권으로부터 무시당하고 배척당했다.
1990년대 초 KBS에서 '열린음악회'가 처음 방영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콜라보'라는 당시로서는 신선한 기획이 돋보였다. 다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열려 있다는 의미에서 '열린' 음악회란 이름을 붙였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클래식이란 기성 음악이 대중음악에 문호를 개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대중음악 가수들이 테너, 소프라노와 같이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를 기회를 가졌고, 조영남이나 해바라기 같은 중견가수들이 단골로출연했다.
90년대 시대상황이 김수철이 무용제에서 배척당했던 80년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기에 열린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는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초기 열린음악회가 포용할 수 있는 대중음악엔 한계가 있었다. '열린' 음악회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처음엔 고급진 클래식과 비교해 격이 떨어지지 않는, '급'이 되는 가수들 위주로 문호를 개방했다. 당시 10대를 비롯한 젊은층이 좋아하는 댄스음악은 '지양'했던 것이다.
당시 열린음악회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우울한' 장면이 있다. 1993년쯤이었다. 당시 가장 '핫'한 아이돌이었던 잼(ZAM)이란 댄스그룹이 출연했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불을 댕긴 댄스음악의 전성기를 타고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내 또래 10대들이 열광했던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란 노래는 사실 춤을 추기 위한 노래였다. 노래 자체의 완성도는 높지 않았단 얘기다. 대신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한 이 아이돌 댄스그룹이 후렴구에 열을 맞춰 '시그니처' 안무를 선보일 때면 도처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좀 논다는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편에서 그 춤을 따라 하곤 했다.
립싱크하는 발라드 가수보다 더 꼴불견인 게 (번듯한 안무가 있음에도) 댄스곡을 부르며 춤 추지 않는 댄스 가수라는 걸 그때 알았다. 마이클 잭슨이 빌리진(Billie Jean)을 부르며 문워크(Moon Walk)를 추지 않는다면 저런 느낌일까.
당시 열린음악회에 출연한 '잼'이 딱 그랬다. 평소와 다르게 정장을 갖춰 입은 이들은 어색하게 박자에 맞춰 흔들거리기만 할 뿐, 끝내 춤을 추지 않았다('못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대신 노래는 라이브로 불렀던 것 같다.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뻣뻣하게 서서 자신들의 대표 댄스곡을 부르는 당대 최고 인기의 댄스그룹. 초대받지 못한 생일파티에 등 떠밀려 온 듯한 어색함이 그들의 표정에 그대로 묻어났다.
정확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방송국은 지상파 3사만 있던 시절, 가수는 PD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와야 했다. 그즈음엔 역시 인기 아이돌이었던 '노이즈'란 댄스그룹의 리더가 방송국 카메라맨에게 폭행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카메라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신인가수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었다고 하는데, 당시 방송국과 가수 간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잼이나 노이즈나 모두 10대들에겐 '아이돌'이었지만 거대 방송국 앞에선 나약한 '아이들'일 뿐이었다. 제작진이 직접 "이 프로는 너희가 평소 출연하던 딴따라 음악 프로하고는 격이 다른 격조 있는 프로그램이니 경박한 춤 같은 건 추지 말라"고 경고했을 수도 있고, 스스로 평소 놀던 물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주눅이 든 나머지 '눈치껏' 행동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주눅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과정이 어찌 됐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댄스가수들의 엉거주춤한 모습은 생방송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마저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 K팝의 성공은 김수철이 받은 냉대와 잼처럼단명해 사라져 간 댄스그룹들이 받은 멸시가 쌓이고 쌓인 토대 위에 피어난 꽃이다. 이들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이유로 자신의 음악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때론 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조차 소속사에 떼이기도 했다.
K팝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아이돌이라 불릴 만한 H.O.T.가 소속사와의 불공정 계약이 공론화된 사실상 첫 번째 사례라는 점을 감안하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K팝은 '압축' 성장을 해온 셈이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실(果實)은 불행히도 당사자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최근에 우연히 본 열린음악회에선 걸그룹이 자신들의 노래에 맞춰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들에게서 예전에 잼이 출연했을 때 같은 어색함이나 긴장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서있는 무대가 열린음악회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이들에겐 열린음악회든 뮤직뱅크든 자신들의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똑같은 무대일 뿐이다.
'딴따라'는 '연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더 이상 딴따라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건 사람들이 더 이상 연예인을 낮잡아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딴따라가 K팝 스타라는 선망의 대상으로 탈바꿈하기까지 수많은 딴따라들의 애환이 있었다. K팝 이전에 딴따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