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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Dec 12. 2019

택시를 타보니 '타다'가 보이더라

고작 렌터카 빌려주는 거라면 사람들은 왜 타다에 열광할까

솔직히 왜들 그렇게 호들갑인가 싶었다. 따지고 보면 법망을 피해 택시면허 취득에 드는 비싼 돈 내지 않고 택시 영업을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타다'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혁신'이란 게 대체 뭔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 말마따나 '고작 렌터카 빌려주면서 이게 무슨 혁신이야'하는 생각이 들기다.


이런 생각에 금이 가게 된 건 얼마 전 모처럼 택시를 탈 일이 생기면서다.


신호를 무시하고 내 쪽으로 턴을 해 앞에 섰을 때부터 불안했더랬다. 백발의 기사님은 말이면 말, 운전이면 운전, 거침이 없었다. 조금만 틈이 생기면 앞머리를 들이밀었고 상대가 그걸 용납하지 않으면 입에서 거친 언사가 튀어나왔다. 그 와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옆에 있는 나한테 통화내용이 다 들리도록 열심히 통화를 했다. 통화끝낸 뒤엔 '이 추위에 무슨 등산모임을 하느냐'며 은근히 통화 상대방을 원망하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줄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덜컥거리는 차 안에서 오랜만에 멀미마저 느껴질 때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왜 타 본 사람들이 '타다' '타다' 하는 지를. 더불어 얼마 전 아들과 함께 타다를 타고 강 건너 친구 집에 놀러 갔던 와이프가 '타다 덕분에 택시 잡을 걱정 없이 친구랑 술도 먹고 너무 편하더라'며 타다 예찬론을 늘어놨던 게 생각났다.




타다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광은 그동안 택시에 쌓인 울분을 해소해준 결과다. 누군들 늦은밤 발을 동동거리며 손짓을 하고 콜을 불러도 '예약' 불이 켜진 빈 택시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내 앞을 지나쳐갈 때 느끼는 무력감, 제한시속이 80km인 강변북로를 시속 13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슬며시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느끼던 공포감, 일면식도 없건만 단지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반말과 높임말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례함에 울화가 치밀었던 경험이 없겠는가.


그나마 나는 남성이기에 택시에 대한 불편함이 덜했을지 모른다. 정문정 작가의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을 읽으면서 여성들이 택시를 탈 때 겪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

'이번엔 제발 괜찮은 기사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정 작가는 "편리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인데 불편한 마음으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불친절한 기사님 중에는 자꾸 정치적인 이슈를 꺼내 논쟁하려는 사람, 화난 듯 말하는 사람,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 사적인 이야기를 캐묻는 사람 등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택시 타면 자면 그만이지'라고 말하는 남성들에 대해 "여자들은 혼자 택시를 탔을 때 잠들지 않는데요. 특히 밤에는 더더욱!"이라고 응수대목이다.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기성 택시에 대한 반감은 높아갔지만 그동안 '대체재'가 없다는 이유로 대다수 사람들은 울분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다. 이제야 비로소 늦은 시간, 맘 편히, 차 없이도 귀가 걱정을 안 해도 되나 싶었건만. 국회가 소위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키며 기존 택시업계에 피해 안 가게 서비스를 다시 짜보라고 한 건 본인들이 이런 서비스가 필요 없는 기사 딸린 차 타는 특권층임을 자인한 셈이다.




'타다'를 운영하는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타다'에 대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운전하기를 꺼리게 된 노모를 위해 기사 딸린 차를 보내드렸는데, 어머니가 기사가 계속 대기하고 있는 게 부담스럽다며 결국 이를 없앴다고 한다. 그때부터 기사가 있는 차를 필요할 때만 불러서 타는 방식의 서비스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그 결실이 '타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타다의 핵심은 기사가 있는 차량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것이다. 택시가 '남의 차'를 얻어 타는 것이라면 '타다'는 내가 빌린 차에 잠시 기사를 고용하는 방식이다. 자기 차에 '남'을 태운 택시기사와 손님의 차를 운전하는 타다 기사의 서비스가 다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최근 일부 택시회사들이 타다 서비스를 모방해 '차량 청결 유지' '손님에게 말 걸지 않기'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서비스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접근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택시가 가져올 변화는 제한적,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리란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타다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혁신'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처음엔 남들이 다 혁신이라고 하니까 '혁신인가 보다' 하다가 누구는 또 별거 아니라고 하기에 '그런 게 뭐 혁신인가' 싶었다. 지금은 '이런 게 혁신이구나' 싶다. 혁신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폰처럼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만 혁신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도 혁신이다.

'에어비앤비'는 새로운 숙소를 짓지도 않고 기존에 있던 남는 방에 대한 정보를 한 곳(에어비앤비 플랫폼)에 모아놓음으로써 숙박업, 나아가 여행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배달의민족'은 그동안 각 음식점에 소속돼 있던 배달원들을 아웃소싱하도록 했다. 새로 음식이나 음식점을 더 만들어낸 것은 아닌데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더 다양해졌고, 기존 배달 문화를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다도 마찬가지다. 타다를 택시면허 없이 하는 야매 택시로 치부하면 그저 법의 공백을 틈타 돈벌이를 하려는 기회주의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택시의 개념을 '남의 차를 빌려 타다'에서 '(내 차에) 기사를 빌려오다'로 재정의했다고 본다면 이는 발상의 전환이고 혁신이다. 손님이 택시 탈 때마다 '좋은 기사님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 없이 모든 기사님들이 개인의 인성과 상관없이 좋은 기사님이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구축한 게 혁신이 아니라면 무엇이 달리 혁신이겠는가.  


무엇보다 택시보다 비싼 요금을 내고도 기꺼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이 150만명에 달하고,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들 상당수가 모처럼 찾은 '대안'이 사라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현재 운행 중인 타다 차량은 약 1500대, 전국에 운행 중인 택시 수는 약 20만대라고 한다. 비슷한 서비스인 '우버'가 허용된 국가에서 우버 차량 숫자가 택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점을 감안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택시업계가 들고 일어나고 이에 호응해 국회에서 싹을 잘라버리려는 것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선 이용객 수와 앞으로의 잠재력 때문이다.


택시업계야 그렇다 쳐도 정부와, 특히 국회가 여야 할 것 없이 타다 금지법을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은 내년에 있을 총선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검찰이 타다를 기소했을 때만 해도 관할 국토부장관, 공정위원장까지 유감을 표해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건 어느 모로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정치인들은 안다. 선거에서 중요한 건 조직화된 소수이지, 구심점이 없는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란 것을. 이들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지역구에 차고지를 둔 택시회사들이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불특정 150만 소비자가 이들의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새로운 서비스는 서서히 질식하고 다시금 대안이 사라진 승객들을 볼모로 잡은 기득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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