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과 달리 뼈 때리는 의사들, 왜 그들은 희망을 말하지 않는가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병은 낫는 병이 아녜요...'
'항암 시작하고 좋아진 적 있어요? 그냥 안 좋아지는 증상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최근 항암약을 바꾸셨는데 이제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주변 정리부터 슬슬 하세요’
‘환자가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약이 듣길 바라는 게...’
"... 항암제 맞고 좀 어떠셨어요?" 의사는 여전히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물었다...
"계속 맞으면 제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더 맞지 않으려고요." 어머니가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급격히 나빠질 텐데요" 의사가 말했다.
힘들어서 더 맞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환자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의사가 대답했고, 이때 내가 질문했다.
"'급격히'라 하면 얼마나 빨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한 3개월?" 의사가 말했다.
"한 3개월?"이라고 툭 던지듯이 내뱉은 대답이 너무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나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환자와의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는데도 진료가 끝났을 때 잘 가라거나 잘되기를 바란다는 형식적인 인사도 하지 않던 의사로부터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희망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는 느낌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한국인의 종합병원> 102~106P 중 발췌
의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기대여명은 지금까지의 삶이 고작 몇 개월 뒤면 끝난다는 선언이므로 큰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의사가 자신의 절망이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의사에게 상처 받았다거나 충격받았다는 환자, 보호자의 사연이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이유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