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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의사는 현실속 '판타지'일까

'슬의생'과 달리 뼈 때리는 의사들, 왜 그들은 희망을 말하지 않는가

by 늦깎이

'실제로 이런 선생님들 만나보신 적 있으신가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이 한창 인기몰이 중이던 지난해, 환자와 가족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 누군가 위와 같은 화두를 띄웠다. 순식간에 댓글이 넘쳐났지만 대분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런 의사선생님이 어딨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현실엔 없는 의사와 의료진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메디컬 드라마로 볼 수 있을까?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메디컬 드라마로 분류하는 편이 맞겠지만 시즌2까지 인기리에 마친 '슬의생'에 더 적합한 장르가 있다면 '현실판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현실적이되 좀처럼 현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판타지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산모가 병원에서 태동이 안 느껴진다며 걱정한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검사를 마친 의사의 얼굴이 굳어있다. 난감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아기의 사망을 알리는 산부인과 교수 석형(김대명). 이를 전해 들은 산모는 오열한다.


40여분의 시간이 지나 비로소 정신을 차린 산모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석형은 되려 "우린 신경 쓰지 마시고, 천천히 나가셔도 됩니다. 우린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티슈를 뽑아 건넨다.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던 산모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숙연한 표정으로 '동료'의 슬픔에 공감한다.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에피소드는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현실이다. 의대 교수가 정해진 시간 내에 이미 빽빽이 예약된 외래 환자들을 진료하려면 환자 한 명당 30분은커녕 5분 이상 시간을 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의사가 환자의 슬픔에 공감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권순욱씨. 가수 보아의 오빠인 그는 시한부 판정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의사의 냉담한 반응에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권씨가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한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SNS에 올린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분을 일으켰다.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병은 낫는 병이 아녜요...'

'항암 시작하고 좋아진 적 있어요? 그냥 안 좋아지는 증상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최근 항암약을 바꾸셨는데 이제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주변 정리부터 슬슬 하세요’

‘환자가 의지가 강한 건 알겠는데 이런저런 시도로 몸에 고통 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그저 항암약이 듣길 바라는 게...’


한 사람이 저렇게 얘기했다면 '저런 의사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각기 다른 의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비단 권씨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다. 미국 약학과 교수인 신재규씨가 쓴 <한국인의 종합병원>은 저자가 어머니의 암투병을 계기로 경험하게 된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진료 현실을 미국의 사례와 비교해 소개하고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치료가 될 수 있다'란 챕터에서 저자는 또다른 '싸늘한' 의사 사례를 보여준다.


"... 항암제 맞고 좀 어떠셨어요?" 의사는 여전히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물었다...
"계속 맞으면 제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더 맞지 않으려고요." 어머니가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급격히 나빠질 텐데요" 의사가 말했다.
힘들어서 더 맞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환자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의사가 대답했고, 이때 내가 질문했다.
"'급격히'라 하면 얼마나 빨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한 3개월?" 의사가 말했다.
"한 3개월?"이라고 툭 던지듯이 내뱉은 대답이 너무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나는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환자와의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는데도 진료가 끝났을 때 잘 가라거나 잘되기를 바란다는 형식적인 인사도 하지 않던 의사로부터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희망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는 느낌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한국인의 종합병원> 102~106P 중 발췌


죽음을 앞둔 환자 앞에서 냉정함을 넘어 냉랭함을 느끼게 하는 이 같은 의사들의 태도는 역시 현실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없고, 권력과 출세욕에 물든 '하얀 거탑'만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결국 의사들도 하얀 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처럼 암에 걸려봐야 환자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냉소가 나올 법도 하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쓴 김범석 교수는 서울대 의대 '종양내과' 교수다. 우리나라에서 암 환자를 가장 많이 만나본 사람으로 손에 꼽힐 것이다. 김 교수는 앞서 공분을 일으킨 '의사'의 입장에서 지켜본 암 환자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시점'을 달리 한 김 교수의 글은 사뭇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책은 보아 오빠 권순욱 씨의 투병 사실이 알려지기 훨씬 이전인 올해 초에 출간됐지만 마치 권씨의 사례를 염두에 둔 듯한 내용도 있어 눈길이 갔다.


의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기대여명은 지금까지의 삶이 고작 몇 개월 뒤면 끝난다는 선언이므로 큰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의사가 자신의 절망이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의사에게 상처 받았다거나 충격받았다는 환자, 보호자의 사연이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이유다.


김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환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어하는 의사라는 것이 느껴진다. 한 번은 자신이 환자가 되어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어시스턴트 자격으로 들어온 옛 제자가 환자인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차트와 핸드폰만 들여보는 통에 민망해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환자와 교감하지 않는 일부 의사들의 행태에 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통해 속내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진료실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김 교수 역시 환자에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기 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얘기해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최대한 사려 깊게, 예의를 갖추겠지만.


김 교수는 책에서 환자의 기대 여명을 가급적 일찍 말해주는 것이 소신임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환자에게 남은 생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죽음을 직시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때 남은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이란 관문 앞에서 '어쩌면 삶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듯하다.


"... 무한히 지속될 것 같았던 생이 유한하고 소중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은 분명히 변한다. 암 환자의 경우 하루하루를 일상의 반복으로만 보내지 않고 누구보다 더 의미 있는 매일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암 병원에서 무수히 많은 환자들을 지켜보며 나는 분명히 그 같은 변화를, 실례를 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가 때로는 충격을 받을 것도 마음 아파할 것도 알고 있지만, 내게 돌아올 원망도 예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려고 한다. 그것이 환자에게도 의사인 나에게도 분명히 조금 더 나은 길일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P185



개인적으로 의사들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의사에 대한 환자와 가족의 서운함이 불신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암과 같은 질병과의 사투에서 의사는 함께 '싸워나갈 원팀'이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의 의사들에게 '더' 실망하고 서운해하는 데에는 판타지 드라마 속 의사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줄지어 대기하는 환자들을 아랑곳 않고 오롯이 나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드라마 속 의사에 감정이입하면서 현실에서도 백마 탄 의사 선생님을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의사 선생님들은 '3분 진료'라는 의료 현실 속에서 '뼈 때리는' 말로 환상을 깨부수곤 한다.


'암이 나을 것 같냐' '슬슬 주변 정리부터 하라'고 말한 의사나 살 수 있는 날을 묻는 환자에게 툭 던지듯 '한 3개월?'이라고 말한 의사나 분명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다만 이들의 속내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도 자신이 담당한 환자가 오래 살기를 누구 못지않게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바꿀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것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 의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김범석 교수는 "결국 의사든 환자와 보호자든 현실적인 최선은 각자의 자리에서 '남은 날들에 집중한다'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생명은 신의 영역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남은 날들에 집중하는 것, 날 때는 알아도 갈 때는 모르듯, 좀처럼 예측하기 힘든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온전히 삶을 음미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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