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썸네일 제목이다. 어지간해선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요즘 말로 소위 '어그로'를 끄는 제목이다. 사실 이런 제목을 단 콘텐츠는 막상 클릭해 들어가보면 별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속는 셈치고 들어가봤다.
문제의 동영상은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tvN 강의였다. 교수님 강의답지 않게(?) 완급을 조절해가며 시청자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러다 결국 일반론으로 용두사미 결말을 맺는 게 아닌가 의심하던 찰나, 명징하게 가슴에 꽂히는 설명을 내놨다.
몇해 전 EBS와 함께 상위 0.1%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특징을 분석해보니 IQ, 부모 직업, 주변 환경 등 우리가 뇌피셜로 짐작했던 요인들에선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다 얘기가 안돼서 방송 못 내보내는 게 아닐까 제작진이 노심초사하던 중에 밝혀낸 비밀 중 하나는 이거였다.
상위 0.1%를 구성하는 아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요즘 말로 '설명충'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배운 내용을 교실에서 2등한테도 설명하고 꼴등한테도 설명한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에겐 잘하는 수준에 맞춰, 못하는 친구에겐 아주 기본적인 개념부터 쉽게 플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에 와서는 엄마를 옆에 앉혀놓고 설명하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김경일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오래 전 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기억이 소환됐다.
코로나라는 건 맥주밖에 없었기에, 쉬는 시간이면 문제집을 들고 자기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침 튀겨가며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고3 시절, 유독 자주 물으러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처음엔 우리반 1등이었던 반장한테 물어보곤 했는데, 막상 설명을 듣고 나서도 갸우뚱 하는 적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문제를 내가 설명해줬다. 이 친구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짓더니 그 다음부턴 줄기차게 나를 찾아왔다.
당시 전교 1~2등을 다투던 반장의 설명보다 고만고만하게 공부를 했던 내가 해주는 설명이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친구 사이에 그러려니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오래 남았던 모양이다. 강산이 두어번 이상 바뀌었건만, 몇해 전 내 생일엔 케이크를 선물로 보내주며 그때 고마웠단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친구의 고백(?)에 설레기도 했지만, 정작 고마워해야 하는 건 나일지 모른다. 당시 이 친구가 가져온 문제를 함께 풀면서 해답을 풀어 설명하는 과정이 내게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막연히 설명을 하면서 이 문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유튜브 강의를 보면서 당시의 '짐작'이 '과학적 사실'이었음 알게 된 셈이다.
기자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제네럴리스트다. 그럼에도 기자가 반쯤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출입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매일같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쓴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해 취재한 뒤 이를 글로 설명하는 행위다. 특히 기사를 쓸 때는 중학교 2학년 수준 독자의 이해력을 상정해 가급적 쉽게 쓰도록 훈련한다. 자연스럽게 문해력 상위 독자가 아닌, 중하위 독자를 겨냥해 풀어쓰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처럼 남에게 설명하듯 글로 써본 경험은 단기간에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때론 그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내부자'들이 찾아내기 힘든 인사이트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기자들끼리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싶으면 "기사를 써라"고 말하곤 한다. 이 또한 설명충이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유튜브 강의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내 자식이 특출나길 바라는 건 부모로서 인지상정이다. 우리 때 부모가 자식한테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너는 머리는 좋은 데 말이야...'였던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들이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일종의 '치트키'였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절박하지 않아서인지 비교적 객관적으로 아들의 재능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 우선 그 맘때 딱히 뭘 먼저 해보고 싶은 게 없었던 나와 달리, 뭔가를 해보겠다는 열의는 인정할 만하다. 특히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기에 얼마나 갈까 싶었는데, 2년이 넘도록 꾸준히 다니는 걸 보면서대견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허나 재능은 '글쎄올시다'다. 평소 손주를 'You are my sunshine'으로 부르는 할아버지조차 '재능은 없는 것 같다'라고 단칼에 정리하셨다. 한마디로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다.
타의로 가끔 수학 문제풀이를 봐주는데, 아직 방정식을 배우기 전 단계인 현재로선 수학 머리 또한 '미지수'다. 이참에 내가 수학 문제 푸는 재미에 빠져 혹시 나도 허준이 교수 같은 '슬로우 스타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망상에 빠지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0.1% 방송을 보면서 위안이 됐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들은 말이 참 많다. 제대로 이해했는지와 별개로 자기가 알게 된 걸 설명하는 것도 좋아한다. 툭하면 와서는 이런 걸 아느냐고 묻기도 하고, 모른다 하면 자기 식대로 장광설을 풀어놓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설명충'이다.
마침 김경일 교수의 강의 덕분에 이런 기질을 살려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평일 저녁에 아이 눈높이에 맞는 신문 기사를 함께 읽고 그 내용을 서로 설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설명충답게 본인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지난 주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주변국 간의 갈등에 대한 기사를 읽고 얘기를 나눴다.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을까 싶은 내용도 생각보다 잘 따라오는 듯했다. 부족한 어휘나 궁금해하는 부분은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주려다 보니 더 쉽게, 기본적인 사실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야 했다.
나 스스로도 혼동이 됐던 내용이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나 또한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에게 맞춤형 1타 강사 노릇을 했던 내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때는 남을 가르치며'도와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한테 도움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걸 꼭 공부에만 적용하란 법도 없을 것 같다. 지금 알게 된 사실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