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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Jul 02. 2019

자아를 찾는 연금술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를 읽고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은 ‘우리’에 대한 것이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아이 때는 부모에게서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안전한 것과 안전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배운다. 학교에 가면 해야만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운다. 물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해 배우는 것은 거의 없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무언가에 막힌다. 호기심은 체념으로 바뀌고, 하고 싶은 것들은 해야 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세상으로 향한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세상을 잘 알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모른다. 세상은 날 것 그대로를 우리에게 드러내지만, 우리 내면의 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여 바라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야 나를 찾는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연금술사>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물 찾기에 비유한다. 모험심 가득한 양치기 소년이 꿈을 만나고 조력자를 만나면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모아둔 돈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만나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말을 믿고 끝내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낸다. 자아의 신화는 항상 이루고 싶은 자신만의 소망이자 소망을 이루어내는 과정을 포함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 나름의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신학교에서 인간의 죄악에 대해 공부하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하며 알고 싶다. 학교에서 신을 찾는다는 말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그는 양치기가 되어 새로운 길을 찾아다닌다.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만난 아이에게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가면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꿈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스스로를 살렘의 왕이라 칭하는 한 노인을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중략)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노인은 광장 한 구석에 있는 팝콘 장수를 가리키며 그도 여행을 떠나길 원했지만 자아의 신화보다 남들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떠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이 떠돌이 양치기와 팝콘 장수 중 누구에게 딸을 결혼시킬 것인지 생각했다.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가르쳐 준 보물을 찾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신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이집트 피라미드 가까운 곳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신의 표적을 식별하기 어려울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우림과 툼밈이라는 보석을 건네주었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그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충고한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우리는 어릴 때 누구나 소망을 갖게 된다.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떤 힘이 소망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 힘은 세상의 냉혹함에 눈뜨게 하고 자신의 소망이 생각보다 더 먼 곳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결과만을 향한 소망의 힘은 약하기 때문이다. 그 소망을 이루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이야기가 되면 다르다. 세상을 마주하고 배우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과정은 쉽지 않다. 당연히 어려운 과정을 겪는다. 때로는 위험에 빠지고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선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포함되어 ‘신화’가 된다. 신화가 구체적이고 강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주위에서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온 마음으로 원한다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준다.


아프리카로 건너간 산티아고는 먼 곳을 여행하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속임수에 당하고 만다. 이집트 피라미드까지 데려다 줄 사람을 찾다가 가진 돈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굳게 결심한다.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가 되는 건 쉽다. 내 잘못이 아니라며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보물을 찾아 나선 모험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시장을 헤매던 그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을 만나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가 온 후로 가게에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초심자의 행운이라 여긴다.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는 건 산티아고의 삶이 자아의 신화를 이루며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는 열심히 일하고 가게는 나날이 번창하지만, 어느 날 그는 여행에 필요한 돈을 모았음을 알고 다시 보물을 찾아 떠난다.


이집트를 향해 떠나는 대상의 무리에 들어간 산티아고는 한 영국인을 만난다. 그는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파이윰의 오아시스에 연금술사가 산다는 얘기를 듣고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연금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천지만물은 그것이 창조되던 태초에는 온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잊혀 버린 어떤 언어에 의해 만들어졌지. 난 사물들 속에서 바로 이 우주의 언어를 찾는 중이야” 연금술사들은 어떤 금속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가열하면 그 금속 특유의 물질적 특성은 없어지고 오직 만물의 정기만이 남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것이 모든 사물들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을 통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그들은 사막을 지나간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황량한 모래와 바위뿐이지만 그 속에도 생명이 있고, 밤이 되면 무수한 별들을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사막이기에 생명이 귀하고 별 빛이 밝게 빛난다. 사막은 인간을 시험하기도 한다. 내딛는 걸음마다 시험에 빠뜨리고 방심하는 자에게 죽음을 안겨준다. 


산티아고는 오아시스에서 사막 전사들의 싸움에 휘말린다. 보물을 찾겠다는 한 가지 소원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죽음이 언제 그를 덮칠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리카로 건너온 이후 그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내일 당장 죽게 되더라도 다른 양치기들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기에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그는 이제 보물 가까이에 왔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 마지막 걸음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정작 큰 꿈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한다. 그걸 이룰 자격이 없다거나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가 뜨기 직전이듯 산티아고의 마음속에는 어두운 생각으로 가득하다. 


드디어 이집트의 피라미드 근처에서 그의 마음이 가리키는 모래 언덕에 도착했다. 그는 그 자리가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자리임을 확신하고 밤새 모래땅을 판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그는 무장한 병사에게 발각되어 연금술사가 건네준 금과 가졌던 모든 것을 빼앗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제 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극적인 이야기는 늘 반전이 있다. 그 병사가 산티아고를 내려다보며 그의 꿈 얘기를 내뱉듯 말한다. 그는 그 꿈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기지만, 산티아고는 그 꿈 이야기에서 그가 애타게 찾고 있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게 된다. 그는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아의 신화는 있다. 신화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연금술사들에게는 황금을 만드는 철학자의 돌이고, 산티아고에게는 보물을 찾는 것이다. 그에게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과정은 즐거운 모험에 가깝다. 신의 표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살렘의 왕, 크리스털 가게 주인, 그리고 연금술사까지 그의 모험을 응원한다. 그의 결심과 확신이 의심으로 무너질 때마다 힘을 얻도록 북돋워주고 그가 보물을 찾기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는 인간을 우주의 모든 기운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다. 무엇보다 보물을 찾는 과정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정적 기운을 이겨내야 한다. 그의 모험이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의 가혹한 시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물이 있다는 사막에 가까이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는다. 사막을 여행하는 과정에서는 부족 간의 전쟁에 휘말린다.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여인과의 사랑은 순수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의 신화를 이루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유혹을 뿌리치고 결국 보물을 찾아낸다. 


황금을 찾고 말겠다는, 또는 스스로의 삶을 황금으로 만들겠다는 소망은 의지가 되고 그 의지는 에너지가 되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또한, 그 간절함은 주변으로 전해져 온 우주가 그 소망을 돕도록 만든다. 그것이 우리 삶의 연금술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를 위해 예정해 둔 보물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결국 연금술의 존재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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