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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Jul 06. 2019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 데미안 >과 < 연금술사 > 함께 읽기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나는 교실에서 친구와 공놀이를 하다 유리창을 깨뜨려 버렸다. 학교 근처 유리 가게로 가서 주인아저씨에게 빠른 수리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그 아저씨는 학교로 오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유리창을 깨뜨린 일을 혼낸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수리가 될 때까지 매일 나 때문에 교실에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며 몰아세웠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이 어둡고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정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마음이 흔들렸다. 학교 일이 생각났고  서러운 마음에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놀란 어머니께 사실대로 얘기했고 어머니는 바로 유리 가게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는 그날 바로 교실 유리창을 고쳐주었다. 며칠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허탈하게 일이 풀렸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내 마음의 고통은 매우 컸다. 그 일을 겪은 후의 나는 그 이전 나와 같지 않았다. 더 정직하게 살게 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잘못이 아닌 일들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의 힘으로 가능한 일과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선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알던 세상이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했다.



<데미안>과 <연금술사>는 유년 시절의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 만이 꿈꿀 수 있는 자아의 신화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다. <데미안>은 어두운 마음의 심연에 있는 인간의 본능을 찾아내고 그것을 인정해가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괴롭힘을 당하며 선하고 경건한 세계에서 죄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 자신의 내면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끔찍한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반면, <연금술사>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물 찾기에 비유한다. 모험심 가득한 양치기 소년이 꿈을 만나고 조력자를 만나면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모아둔 돈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만나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말을 믿는다. 여러 가지 고통과 번민의 시간을 견딘 끝에 그는 결국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낸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하나의 길이다.”


누구에게나 자아의 신화는 있다. 신화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연금술사들에게는 황금을 만드는 철학자의 돌이고, 산티아고에게는 보물을 찾는 것이다. 그에게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과정은 즐거운 모험이다. 신의 표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살렘의 왕, 크리스털 가게 주인, 그리고 연금술사까지 그의 모험을 응원한다. 그의 결심과 확신이 의심으로 무너질 때마다 힘을 얻도록 북돋워주고 그가 보물을 찾기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는 인간을 우주의 모든 기운이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시련은 있다. 시련이 없는 이야기는 신화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물을 찾는 과정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정적 기운을 이겨내야 한다. 그의 모험이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의 가혹한 시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물이 있다는 사막에 가까이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는다. 사막에 살고 있는 부족 간의 전쟁에 휘말린다.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여인과의 사랑은 순수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의 신화를 이루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유혹을 뿌리치고 산티아고는 결국 보물을 찾아낸다.


싱클레어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과정은 더욱 고통스럽다. 그가 알고 그를 보호해주던 기존의 세계와 질서를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어둡고 사악한 기운을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과 자신의 마음속에서 사악하고 추악한 것들을 발견한 싱클레어는 더 이상 유년의 세계에 머무를 수 없다. 그래서 새가 되어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기존의 세계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세계이지만, 새로 발견한 세계는 어두움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이전의 세상에 대한 버림의 과정을 동반한다. 자신을 지켜주던 세상을 버리는 것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큰 고통이다. 인간이 무리를 이루어 살아온 이래로 무리를 떠나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야생의 세계에 던져져 스스로의 힘 만으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존보다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가까이 있다는 불안감이 더 두렵게 한다. 그는 신의 표적도 버렸다. 스스로 강한 자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새로운 세상에서 스스로 강한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싱클레어의 자아의 신화이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 싶은 이에게 온 우주가 도와주듯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나타난다. 동네 형의 속박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가 방황할 때마다 나타나 삶의 방향을 일깨워주는 가이드가 된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가 찾아가야 할 신이 아브락사스임을 알려 준다. 


싱클레어가 발견한 새로운 신은 그가 믿던 신에 대한 부정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동생을 살인한 카인에게 표적을 준 신, 형을 배신한 야곱에게 축복을 내린 신,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낸 신이다. 평범한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신이다. 하지만, 우주를 창조한 진짜 신의 모습은 선과 악, 흑과 백의 세계를 모두 다스린다. 그래서 그는 끔찍한 공포와 함께 뭔지 모를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아마도 그건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에는 누구나 꿈을 가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꿈과 현실의 차이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어떤 이는 꿈에 매달리고 어떤 이는 냉혹한 현실에 절망하여 꿈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꿈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의 눈빛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들은 나의 진심을 알고 자아를 찾고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렇게 자아의 신화를 발견하고 이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며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라는 건 없다”는 문장을 보았을 때의 허탈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 주어진 의미가 없기에 자유롭고, 해야 할 의미가 없기에 우리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충만감을 느낄 수 없었다. 유년의 세계가 깨어진 이후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세상의 시선을 따라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다른 모든 생명과 다른 존재임을.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나와 같지 않음을. 나의 DNA 속에 선조들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그건 흔적일 뿐 나를 정의해주지 않는다. 나의 존재는 유일무이하다. 나는 다른 존재와 다르기에 다르게 살아야 한다. 그것만이 내 삶의 신화다. 


다르다는 건 사실 위험한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뤄온 이후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지 못하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무리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이며 야생에서 그건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는 것이 가치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경영에서는 차별화만이 유일한 전략이라 한다. 나만이, 또는 나이기에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며 나만의 신화를 쓰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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