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오랜 시간’이라는 개념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의 유전자 중 일부에 돌연변이가 생기고 그 변이를 가진 개체가 다른 개체보다 더 잘 살아남고 또 그 형질이 세대를 거쳐 살아남아야 진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백 년, 이백 년이 아니라 수십 억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화에 있어 ‘충분한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다. 한 형질이 한 개체군 내에서 우세한 형질이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한 세대보다는 길지만 몇 백 세대면 충분하다. 진화의 수학은 ‘복리이자’의 수학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윈이 설명하는 진화 과정은 세 가지 핵심 요소를 포함한다. 바로 변이, 선택, 시간이다. 모두가 몇 가지 개념상의 문제 또는 증거 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 모두는 불신의 불씨였다.”
한 개체에게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얻는 이익이 1%라고 가정해 보자. 변이가 없는 개체가 100마리의 생식력을 가진다면, 변이가 있는 개체는 101마리의 생식력을 가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새롭게 얻은 형질의 선택적 이익이 1%로 아주 작고 이 형질을 가진 개체수가 0.8%라 해도 3,000세대가 지나면 전체 개체수의 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증가하게 된다. 선택적 이익이 10%가 되면 90% 이상으로 증가하는 시간이 300세대로 단축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얼룩 나방이 줄고 흑색 나방의 개체수가 급증하였다. 얼룩 나방들이 붙어사는 나무줄기에 환경오염으로 인한 검댕이 내려앉으면서 검은색이 많이 섞인 나방이 새들의 먹이가 되는 확률이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1848년 이후 50년 만에 몇몇 지역에서는 흑색 나방의 빈도가 무려 98%까지 증가하였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흑색 나방의 선택적 이익은 대략 20%로 추정된다. 그런데, 환경오염이 개선되면서 흑색 나방이 다시 줄어들어 1995년에는 10% 아래로 떨어졌다. 몸 색깔 변이로 인한 동물의 자연선택의 이익은 최소 1%에서 최대 50% 수준이다.
그럼,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생물이 번식을 하려면 DNA를 복제해야 한다. 복제는 복잡한 생화학적 과정이어서 실수가 일어나게 된다. 사람의 경우, 모든 사람이 약 70억 개의 DNA 염기 가운데 약 175개의 새로운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돌연변이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에 생기거나 유전자가 두 개씩 갖추어져 있어 보충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돌연변이를 가지고도 잘 살아간다.
“불멸의 유전자들은 진화 과정이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곧, DNA 기록을 보존하는 자연선택의 힘과 모든 생물이 공통조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DNA 언어는 고객 4개의 철자로 되어 있고 어휘도 아주 적으며 문법도 간단하다. 먼저 DNA는 두 가닥으로 되어 있고 각각은 A, C, G, T 네 개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가닥의 DNA는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으며 A는 항상 T와 짝을 이루고 C는 G 하고만 결합한다. 따라서, 한 가닥의 염기서열을 알면 나머지 가닥도 자동으로 알 수 있다. DNA 염기 서열에 나열된 염기들의 고유한 순서가 바로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고유한 설명서다.
단백질은 모든 생물에서 온갖 기능을 도맡아 하는 분자들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기본 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DNA 분자 안에 있는 세 염기의 조합, 즉 ACT, GAA 같은 암호가 아미노산 종류를 결정한다. 보통 400개 정도의 아미노산이 긴 사슬로 연결되며 이것이 가지는 화학적 성질이 단백질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한다. DNA 염기 서열에서 하나의 단백질을 지정하는 분량을 유전자라고 부른다.
아미노산은 세 개의 염기로 구성되는데, A, C, G, T를 세 개씩 조합하는 방법은 64가지이지만 아미노산의 종류는 20개뿐이다. 한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3 염기 암호가 여러 개 있다는 말이며, 64가지 중 3가지는 암호의 마침표와 같은 기능을 한다. 따라서 DNA 서열만 있으면 아미노산의 서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암호체계는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모든 생물 종에서 똑같으며 이것이 진화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과학자들이 어떤 종의 게놈을 손에 넣으면 전체 DNA 서열 안에 있는 모든 유전자를 찾는다. 이렇게 하면 전체 유전자 수와 목록 등 한 종의 유전자 정보를 샅샅이 알 수 있다. 또한 종들의 게놈을 비교할 수 있다. 유전자의 개수가 가장 적은 박테리아는 약 3,000개이고 단세포 생물인 효모가 6,400개, 초파리가 13,000개, 쥐와 인간은 20,000-25,000개로 거의 같다. 인간과 어류의 유전자가 매우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복어와 인간의 유전자 중 최소 7,350개는 동일하다. 더 놀라운 것은 박테리아, 균류, 식물, 동물 모두에 걸쳐 존재하는 유전자가 무려 500개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시각을 결정하는) 옵신 유전자 진화는 ‘유전자 중복’의 사례인데, 이것은 DNA에 정보를 늘리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유전자가 중복되고, 그런 다음 새 유전자와 옛 유전자는 다른 길로 갈라져 다른 기능을 지닌 독자적인 유전자로 진화한다.”
인간의 눈에는 세 가지 시각 색소가 있다. 시각 색소들은 옵신이라는 단백질과 발색단이라 부르는 작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빛에 대한 감수성은 옵신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결정되며 인간이 지난 세 옵신은 각각 417 나노미터(파랑), 530 나노미터(초록), 560 나노미터(빨강)의 파장에 맞춰져 있다. 또 다른 색소인 로돕신은 497 나노미터 파장에 맞춰져 있으며 어두울 때 주로 사용된다. 400 이하의 짧은 파장의 빛(자외선)이나 700 이상의 긴 파장의 빛(적외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도 세 가지 옵신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포유류는 두 종류뿐이며 조류와 어류는 네 종류 이상이다. 왜 이렇게 다르게 진화한 것일까?
척추동물 문에 속하는 동물들의 옵신 유전자를 비교해 보면 여러 동물들로 갈라져 진화되기 전에 옵신 유전자를 이미 갖고 있었다. 그것이 포유류의 조상에서 한 번 소실되어 유전자가 2개로 줄어들고, 그런 다음 영장류의 조상에서 다시 증가하는 패턴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색을 구분하는 색각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인데 왜 한때 줄어들었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포유류에서 야행성이 진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초기 포유류는 공룡처럼 몸집이 거대한 동물들이 지배하는 생태계에서 몰래 숨어 사는 야행성 생활을 하면서 밝은 빛보다는 희미하고 어두운 빛에 감응하는 시각이 발달했고 완전한 색각을 잃게 된 것이다.
줄어든 옵신 유전자 수가 다시 늘어난 것은 유전자 중복 때문이다. 인간의 옵신 중 2개는 위치가 비슷하고 DNA 유전암호가 98% 동일하다. 이 것은 두 옵신이 영장류의 조상에서 하나의 옵신이 중복됨으로써 발생했다는 유력한 증거이다. 중복은 DNA 변화의 흔한 형태로 우리가 가진 유전자들 대다수가 진화의 과정에서 여러 벌로 늘어난 유전자 들이다. 유전자 수가 불어나면 선택이 작용할 여지가 늘고 중복된 유전자들은 결국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환경변화로 인해 한 형질이 더 이상 자연선택의 작용을 받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생활양식에 꼭 필요했던 유전자는 쓸모가 없어지고 돌연변이가 유전자에 누적된다. 쓰지 않으면 잃는다는 말이다”
사람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는 약 절반이 화석화되어 있어 쥐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수준이다. 그런데, 화석화된 후각 유전자의 비율은 완전한 색각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대륙 원숭이가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약 18%가 화석화된 반면 완전한 색각을 가진 구대륙 원숭이는 약 29%나 화석화되어 있다. 삼원색 시각이 진화함에 따라 시각적인 단서로 먹이, 배우자, 위험을 찾게 되면서 후각 의존도가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유전자의 화석화와 소실은 어떤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떠한 ‘설계’나 의도가 개입된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최적자’ 만들기는 반드시 ‘진보적인’ 더하기의 과정도 아니다. 오늘날의 종들은 조상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저 다를 뿐이다. 진화과정에서 DNA에 유전 정보를 더하고 있지만 유전자와 능력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이런 일이 완전히 다른 동물군에서 반복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미래에도 그런 일이 반복될 것임을 보여준다.
진화는 왜 반복되며 반복될 수 있을까? 답은 진화의 세 가지 핵심 요소인 변이, 선택, 시간에 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똑같거나 이에 상응하는 돌연변이가 우연한 기회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돌연변이의 보존 또는 제거는 영향을 받은 형질이 처한 선택의 조건들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동물들은 기관과 몸을 만드는 유전자들이 들어 있는 도구 상자를 공유한다.”
눈은 시각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가진 종에게 매우 유용하다. 척추동물의 눈은 수정체가 하나인 카메라 형태이지만, 게와 같은 절지동물은 수많은 독립적인 낱눈들이 시각 정보를 모으는 겹눈이다. 문어와 오징어도 카메라 형태의 눈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이렇게 다양한 눈 구조들이 서로 다른 동물 집단이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든 눈은 광수 용기와 색소 세포라는 두 벽돌이 마주한 모양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광수 용기는 빛을 감지하는 세포이고 색소세포는 광수 용기에 도달하는 빛의 각도를 결정한다. 하나의 광수 용기와 색소세포로 구성된 원시 형태의 눈이 3차원으로 배열되는 모양에 따라 눈의 모양이 결정된다. 즉, 같은 건축재료로 다른 구조의 집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오늘날 서로 다른 동물들의 눈은 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며 광수 용기와 색소세포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결과이다.
눈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온갖 동물들이 서로 다른 심장, 소화관, 근육, 신경계, 팔다리를 진화시켜 왔는지 알려준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몸과 기관을 만드는 비슷한 유전자 도구 상자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 문은 이러한 도구 상자 유전자가 많은데, 이는 대규모의 게놈 중복 때문이다. 도구 상자의 개념은 기존의 진화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동물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기관에 대한 진화 메커니즘을 아주 명확히 설명하게 해 주었다.
21세기에 본격화된 유전자 분석에 의해 진화의 원칙과 과정이 명쾌해지면서 자연의 법칙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모든 물질에 중력의 법칙이 있듯, 모든 생명에 자연선택의 법칙이 있는 건 정말 단순하면서도 강력해 보인다. 인간이 아직 우주와 생명의 비밀의 끝까지 다다른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비밀의 문을 열었다. 그것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질문들에 대해 우리 인간이 어떤 합리적인 답을 내어놓을 것인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신은 세상을 그냥 만들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멋진 일을 하신다. 신은 세상이 스스로를 만들어가도록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