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도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철학과 인문학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심리학, 역사 등 인간과 관련된 모든 학문이 수백만 년간 숲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던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수렵채집인의 몸을 가진 우리가 숲에서 더 편안해지고 걷기 운동이 가장 몸에 좋은 운동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깊이를 더해가면서 인간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유전자가 인간이라는 생존 기계를 만들었다는 관점도 생겼다. 생존 기계의 목적은 인간 각자라는 개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체에 퍼져있는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고 아끼는 건 생명의 모성본능이라 할 수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자신의 유전자의 절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원시시대의 아빠는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없다.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보다 여기저기 자신의 씨앗을 뿌리는 게 유전자에게 더 유리했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그런 관점에서 쓰였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들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다.”
생명이 나타나기 이전 물질세계에 다양한 분자들이 있었다. 어떤 분자들은 다른 분자들보다 안정된 성질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과 동일한 분자를 복제할 수 있는 가진 분자도 생겨난다. 수명이 길거나 복제 속도가 빠르거나 복제의 정확도가 높을수록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복제 과정이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가 나타나고 그 실수가 복제되면서 안정성을 개선하기도 했다.
복제자들은 복제를 위해 다른 물질들을 사용하게 되었고, 경쟁 복제자를 화학적으로 분해시켜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원시 포식자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획득한다. 경쟁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세포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복제자들은 이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기구 또는 용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살아남은 복제자들은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을 만들고 보다 강력한 장점들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복제자는 오늘날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각 세포들 속에는 완전한 DNA 한 벌이 들어 있다. 마치 거대한 건물의 방 하나하나마다 건물 전체에 대한 설계도가 들어 있는 책장이 있는 것과 같다. 책장을 핵이라 부르며, 설계도는 사람의 경우 46권으로 되어 있고 책 한 권 한 권을 염색체라 부른다. 각 세포는 DNA의 지시에 따라 2개의 세포로 나누어지는 유사분열을 한다. 그런데, 생식 세포인 정자와 난자는 감수분열을 하여 염색체를 23개만 갖는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면서 부모의 유전자가 조합되어 자식에게 전달된다.
“유전자가 생존 기계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은 꼭두각시를 직접 조정할 때처럼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를 조정하듯 간접적으로 한다.”
생존 기계는 처음에는 유전자를 보호하는 수동적인 껍데기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진화를 통해, 식물이라는 생존 기계는 태양빛을 직접 이용하여 복합한 분자를 스스로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동물은 다른 식물이나 동물을 잡아먹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 동물의 신체는 유전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된다. 개체에 포함되어 있는 세포들을 중앙집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전자들에게 더 큰 이익이 생긴다.
세포들을 중앙집권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유전자는 개체의 몸속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기관을 발전(진화)시켰다. 그중 개체를 빠르게 움직이게 하기 위한 기관이 근육이다. 근육은 복잡한 기계장치처럼 화학적 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를 바꾸는 엔진과 유사하다. 먹이에게 빠르게 다가가고 팔로 무기를 휘두르고 음식을 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모든 과정에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근육이 원하는 타이밍에 맞춰 정확히 행동하기 위해서는 이를 조절하는 신경체계가 있어야 한다. 신경세포는 온몸의 근육들과 뇌를 연결한다.
뇌의 진화는 기억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감각과 근육을 이용해서 먹이를 찾아내는 과정을 기억할 수 있게 되면서 먹이를 찾아낸 성공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활용한다. 기억한 정보가 많아지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낸다. 먹이를 발견하면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먹이에게 발견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지 예측한다. 뇌는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유전자는 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함으로써 반응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의식의 성장은 생존 기계가 그들의 주인인 유전자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존재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뇌는 생존 기계가 매 순간 새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때로는 유전자의 지시에 반대하는 힘도 갖게 되었는데, 그 일례가 가능한 많은 자손을 갖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다. 유전자는 최초의 정책 입안자이고 뇌는 그 수행자이지만 이제 수행자는 최초의 정책을 벗어나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생존 기계는 이제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갖게 되었다.
“개체들의 무리 속에서 진화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전략은 그 전략을 채택하지 않는 개체에게 상대적인 이익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이라는 개념이다.”
단순하게 보면, 생존 기계가 할 일은 경쟁자를 죽이고 나아가 그것을 먹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야생 환경에서도 같은 동물 종간의 싸움은 그렇지 않다. 격렬히 싸우다가도 어느 한쪽이 졌다는 것을 표현하면 승자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같은 종의 생존 기계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방식으로 그들의 유전자를 보존해야 하며 번식과 양육을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포함한 비용이 따른다.
개체 간 싸움은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승자가 되어 영역을 차지하거나 짝짓기가 유리해지면 50점만큼의 이득을 얻는다고 해보자. 패자는 0점, 심하게 다치면 -100점, 다치진 않아도 싸움이 길어져 시간을 소비한 경우는 -10점으로 정해 보자 이 점수는 개체가 가진 유전자의 생존율과 동등한 의미를 갖는다. 비둘기 두 마리는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노려보기만 하고는 어느 하나가 항복한다. 승자는 50점을 얻지만 시간 낭비로 10점을 잃는다. 50-10 = 40점이다. 패자는 시간 낭비 -10점이며, 둘의 평균은 (40-10)/2 = 15점이 된다.
돌연변이로 인해 매처럼 호전적인 개체가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매는 항상 비둘기를 이기므로 50점을 얻을 수 있어 평균 15점인 다른 비둘기를 누르고 막대한 이익을 누린다. 그 결과로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매들이 점차 증가하면 매끼리 싸우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 승자는 50점을 얻지만 패자는 심하게 다쳐 -100점이 되고 둘의 평균은 -25이다. 따라서 매의 개체수가 점차 감소한다. 다른 변수 없이 위의 설명대로만 이득을 얻고 잃는다면 매와 비둘기의 안정된 개체수 비율은 7:5이다. 이 비율에 도달하면 매와 비둘기의 평점이 6.25로 같아진다. 생태계는 이렇게 안정화된다.
자연 상태에서 흔히 발견되는 ESS 중 하나는 ‘영역 지키기’이다. “네가 주민이면 공격하고, 침 입자면 도망쳐라”라는 조건부 전략이다. 영역을 지키던 개체가 항상 이기고 싸움이 진정되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입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돌연변이가 생겨 이에 반기를 들어 침입자인데도 도망치지 않고 공격한다면 이길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초주검이 될 정도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실제 세계에서는 주민이 싸우는 곳의 지형을 더 잘 알고 있고 침입자는 다른 곳에서 그곳까지 오는 동안 지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전자는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 기계가 아닌 다른 몸에 들어있는 자신의 복제품을 도울 수도 있다.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체가 무리를 이루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큰 무리 속에서도 가족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가까운 가족 또는 친척일수록 유전자를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
자식은 부모와 50%씩 유전자를 공유한다. 형제도 부모에게서 50%씩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형제자매간에도 평균 50%를 공유한다. 이런 식으로 촌수에 따른 유전자 공유 비율을 확인해 보면 촌수가 N이면 (1/2)^N이 된다. 다만, 공통 조상이 둘이면 여기에 2를 곱해주어야 한다. 사촌의 경우 공통 조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므로 (1/2)^4 * 2 = 1/8가 된다. 삼촌을 닮을 확률은 (1/2)^3 * 2 = 1/4로 할아버지를 닮을 확률 (1/2)^2와 같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형제자매는 서로를 지켜준다. 그리고 부모 중에서는 자기 자식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엄마의 이타주의가 더 크다. 아빠는 자신이 진짜 아빠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자식을 돌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전형적인 사자의 무리는 뜨내기인 두 마리의 어른 수컷과 오랫동안 무리의 구성원으로 지내는 일곱 마리의 어른 암컷으로 구성된다. 암컷들 중 절반은 동시에 새끼를 낳아 함께 기르는데 아버지가 누군지 구분하지 않는다. 사자 무리 속의 혈연관계를 계산해 보면 수컷 두 마리의 평균 혈연도는 0.22이고 암컷 두 마리는 0.15이라고 한다. 수컷들은 평균적으로 이복형제에 가깝고 암컷들은 사촌보다 약간 더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다. 이게 맞는다면 사자 수컷들은 다른 수컷을 이복형제 대하듯 행동하게 만든 유전자들이 살아남고 친형제 대하듯 너무 친절하거나 6촌을 대하듯 불친절한 유전자는 도태될 것이다.
“암컷과 수컷은 생식세포의 크기에 따라 구분되며, 각각의 전략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맹목적이며 무의식적인 행동 프로그램이다.”
곰팡이나 균류와 같은 원시 생물체는 거의 대부분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되는 성의 분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두 가지 성을 구별할 수 없는 생물은 부모로부터 감수분열에 의해 생겨난 동형 배우자들끼리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개체가 생겨난다. 동형 배우자는 새로 태어날 개체에게 똑같은 수의 유전자와 똑같은 양의 영양 물질을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돌연변이로 인해 좀 더 큰 생식세포를 가진 배우자가 나타난다. 이 큰 배우자는 작은 배우자보다 더 많은 양의 초기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게 되어 진화에 유리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런 큰 생식세포를 가진 배우자를 이용하려는 다른 배우자도 나타난다. 영양분을 작게 갖고 있지만 빠른 운동성을 갖고 있어서 큰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갈래의 성의 전략이 진화된 것 같다. 하나는 영양분을 많이 투입하는 ‘정직한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적게 투자하려는 ‘비열한 전략’이다. 일단 두 가지 전략이 퍼져나가자 중간 크기의 생식세포를 가진 배우자는 점차 도태되어 갔다. 정직한 배우자는 오늘날 난자가 되고 비열한 배우자는 정자가 된다.
우리가 수컷 또는 암컷이라 부르는 성의 차이는 이러한 생식세포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크기가 크고 영양분이 많은 생식세포를 가지면 암컷, 작고 빠른 생식세포를 가지면 수컷이다. 특히, 파충류나 조류는 암컷의 알 속에 새끼가 태어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갖고 있다.
암컷과 수컷을 비교해 보면, 수컷은 하루에도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암컷보다 개체수가 적어도 괜찮을 것 같다. 바다표범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관찰된 교미 행위 중에 88%가 단 4%의 수컷에 의해 이루어질 정도이고 나머지 수컷들은 암컷을 구하지 못한다. 종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자원을 매우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은 실제 자손을 남긴 수컷의 수가 매우 적더라도 암컷과 수컷의 비율은 1:1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종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암컷의 개체수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암컷을 가지게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계속 퍼져나가고 수컷은 점차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수컷을 자식으로 가진 부모의 이득이 매우 커진다. 바다표범의 수컷은 경쟁에서 이겨서 교미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수컷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수컷을 가지게 되는 유전자가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따라서, 남녀의 비율은 점차 1:1로 수렴이 된다.
다만, 바다표범은 특수한 경우이다. 아들과 딸의 비율이 1:3 정도로 딸이 많다. 이들은 아들에게 영양분이나 기타 필요한 자원들을 3배나 더 많이 제공함으로써 ‘거대한 수컷’이 되게 하여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없다. 그것들은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복제자일 뿐이다. 인간의 독특한 특징은, 이것은 밈(Meme)과 관련해서 진화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유전자가 그렇게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가 어떤 조건하에서 복제를 한다는 사실은, 좋든 싫든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성질과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유전자가 인간과 같은 의식과 상상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 기계가 그런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작은 돌연변이에서 시작되는 그 힘은 처음엔 미약하지만 나중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작은 변화와 축적된 시간, 그리고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이 인간을 창조했고 이제 인간은 새로운 종류의 진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게 되었다.
유전적 진화와 비교되는 새로운 진화의 형태는 ‘문화적 진화’이다. 옷과 음식의 변화, 의식과 관습, 예술과 건축, 공학과 기술 등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이 유전적 진화를 능가하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혁명적 발견과 노하우들은 오랜 시간 축적되고 세대를 건너 복제, 즉 모방된다. 복제의 단위는 밈(Meme)이다. 밈은 노래, 사상, 디자인 등 모든 것이 가능하며 모방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건너뛰어 밈의 풀(Meme pool)을 형성한다.
예를 들면, 신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이어져왔다. 신에 대한 밈이 이렇게 안정감 있고 생명력이 강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심리적인 호소력이 크기 때문이다. 심오하고 어려운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해 신에 대한 밈은 항상 그럴듯한 대답을 제공해 왔다. 그래서, 신에 대한 믿음은 그 증거가 분명하지 않아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전파된다. 특히나 사후 세계와 지옥에 대한 생각은 커다란 심리적 효과 때문에 그 자체로 영구적으로 존재할 것 같다. 신을 믿지 않고 악하게 살면 죽어서 무시무시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생각은 매우 불쾌하지만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는 밈이다.
진화론에 의해 인간이 동물들과 큰 차이가 없는 존재로 떨어지긴 했지만, 우리 인간은 동물들과 다른 의식과 상상을 통해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능력으로 유전자의 진화와는 다른 문화적 진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비록 몸은 아직 수렵채집인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서 창조자로 도약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도약이 인간 개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남길 지는 미지수다. 인간이 농경을 통해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수렵 생활 때보다 더 힘들게 살게 된 것처럼, 문명의 발달이 개개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우리 스스로 첨단 문명을 발달시켰고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냥 빠르고 바쁜, 고단한 삶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