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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Jul 12. 2019

<진화 이야기>와 <이기적인 유전자> 함께 읽기


과학의 발전은 인류가 갖고 있던 이전의 신념과 신화를 하나씩 무너뜨렸다. 그 신화 중에는 인류 역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종교가 있다. 그 종교는 이전의 종교와 달리 유일신을 강조했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강요했다. 핍박을 받으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힘을 갖게 되자 신의 뜻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허울뿐인 십자군 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 과학자를 탄압했고, 진화론 또한 창조론에 반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의 유전자 연구로 인해 진화는 사실임이 분명해졌고 종교는 또다시 말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훗날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프레데릭 템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은 세상을 그냥 만들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멋진 일을 하신다. 신은 세상이 스스로를 만들어가도록 하신다




<진화 이야기>는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이래 화석 중심으로 진행되던 진화 연구가 DNA로부터 얻은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로 전환된 이후 밝혀진 최근의 사실을 전해준다. 대부분의 DNA 정보는 21세기에 들어와 얻은 것이다. 화석에서 얻은 정보가 깨어진 유리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어렵고 연계성을 확신하기 힘들었지만, DNA에서 얻은 정보는 생명이 진화해 온 역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 서열이 밝혀지면서 우리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단서들이 드러났다. 


먼저, 인간의 유전자의 개수가 다른 동물과 큰 차이가 없으며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유전자도 꽤 많다는 사실은 생명의 출발점이 같았다는 걸 말해준다. 유전자 수가 가장 적은 박테리아는 약 3,000개이고 단세포 생물인 효모가 6,400개, 초파리가 13,000개, 쥐와 인간은 20,000-25,000개다. 인간과 어류의 유전자가 매우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복어와 인간의 유전자 중 최소 7,350개는 동일하다. 더구나, 박테리아, 균류, 식물, 동물 모두에 걸쳐 존재하는 유전자가 무려 500개에 이른다.


둘째, 유전자의 화석화와 소실은 어떤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떠한 ‘설계’나 의도가 개입된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사람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는 약 절반이 화석화되어 있어 쥐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수준이다. 그런데, 화석화된 후각 유전자의 비율은 완전한 색각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원색 시각이 발달됨에 따라 시각적인 단서로 먹이, 배우자, 위험을 찾게 되면서 후각 의존도가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셋째,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은 유전자의 도구 상자를 사용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었다. 모든 눈은 광수 용기와 색소 세포라는 두 벽돌이 마주한 모양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많은 동물들의 눈이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기본 구조는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진화한 것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몸과 기관을 만드는 비슷한 유전자 도구 상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척추동물은 이러한 도구 상자 유전자가 많은데, 이는 대규모의 게놈 중복 때문이다. 도구 상자의 개념은 기존의 진화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하고 복잡한 기관에 대한 진화 메커니즘을 명확히 설명한다.


정리해 보면, 유전자는 복제를 거듭하는 가운데 다양한 변이가 발생하고 자연선택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더 발달되고 어떤 유전자는 화석화되어 쓰이지 않게 되기도 한다. 유전자가 중복되면서 새로운 기능이 발달하기도 하고 유전자 도구 상자로 인해 다양한 복잡한 기관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근거들로 인해 이제 진화는 그냥 사실일 뿐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1990년대 초에 쓰였다. 유전자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많지 않던 시기였지만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 이미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있었다. 동물학 교수인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루고 있다. 그는 개체 수준의 이기적 행동과 이타적 행동을 ‘유전자의 이기주의’로 설명한다. 물론 유전자가 의식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복제자 일 뿐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없지만 진화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들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이유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다. 생존 기계는 처음에는 유전자를 보호하는 수동적인 껍데기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진화를 통해, 식물이라는 생존 기계는 태양빛을 직접 이용하여 복합한 분자를 스스로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동물은 다른 식물이나 동물을 잡아먹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알아냈다.


생존 기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자와 싸우고 나아가 그것을 먹거나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야생 환경에서도 같은 동물 종간의 싸움은 그렇지 않다. 격렬히 싸우다가도 어느 한쪽이 졌다는 것을 표현하면 승자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 같은 종의 생존 기계는 번식과 양육을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포함한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비용을 감안한 생존 전략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자연 상태에서 흔한 전략 중 하나는 ‘영역 지키기’이다. 영역을 지키던 개체가 거의 모든 경우에 이기고 싸움이 진정되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입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드물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형제자매는 서로를 지켜준다. 그리고 부모 중에서는 자기 자식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엄마의 이타주의가 더 크다. 아빠는 자신이 진짜 아빠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자식을 돌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를 최대한 보호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리를 구성하고 암수의 비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저자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진 특성을 ‘문화적 진화’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옷과 음식의 변화, 의식과 관습, 예술과 건축, 공학과 기술 등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이 유전적 진화를 능가하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혁명적 발견과 노하우들은 오랜 시간 축적되고 세대를 건너 복제, 즉 모방된다. 복제의 단위는 밈(Meme)이다. 밈은 노래, 사상, 디자인 등 모든 것이 가능하며 모방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건너뛰어 밈의 풀(Meme pool)을 형성한다.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자연의 선택에 의해 진화된 인간은 이제 다른 동물과 다른 게 없다. 조금 더 머리가 커지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는 등등 동물보다 나은 점을 말할 수 있지만 그 정도 차이뿐이다. 


진화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인간은 스스로 몸은 동물이지만 정신은 신과 닮도록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을 경배하고 신을 닮아가려 했다. 이젠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믿더라도 인간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멋진 선물이긴 하지만 정해진 목적이 없기에 스스로 그 목적을 세우고 살아가야 한다. 다만, 신이 인정해주지 못하는 의미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최재천 교수는 <통섭>이라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자유 의지의 몸부림과 다시 신에게 돌아가려는 운명적인 믿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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