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며 사랑을 느낄 때

새해 인사

by 최은

<테오에게>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나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산 자의 땅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너와 함께 산책을 하니 예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삶은 좋은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값진 것이라는 느낌말이다.


근래 내 생활이 보잘 것 없어 지면서 삶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너와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유쾌한 기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일하는 것이 금지된 채 독방에서 지내는 죄수는 시간이 흐르면, 특히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리면,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겪게 된다. 내가 펌프나 가로등의 기둥처럼 돌이나 철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다정하고 애정 어린 관계나 친밀한 우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련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애정이나 우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무언가 공허하고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네가 이번에 나를 참아준 것이 참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다시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네가 떠난 후 밤거리를 걸어 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초상화를 그렸다. 잘 있어라.


1879년 10월 15일.


— 빈센트 반 고흐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고흐의 이 편지는 제가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들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랑을 느낄 때라는 것, 우리는 애정과 우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백 년도 더 전에 쓰인 편지가 지금 이 순간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수백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봅니다.


군 복무라는 긴 시간 동안, 테오가 고흐를 찾아갔듯 먼저 안부를 묻고 연락해 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무사히 군 생활을 마무리해갈 수 있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공감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고요.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제가 여전히 ‘산 자의 땅’ 위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편지의 말처럼 우리는 다정하고 애정 어린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2025년은 저에게 그런 순간들이 모여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서랍 속에 머물던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보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시시한 농담을 나누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는 것. 우정과 사랑은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고, 그 확인 속에서 우리는 삶이 좋은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고흐가 동생과의 시간을 통해 그랬던 것처럼요.


2026년은 2025년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혼자 외롭지 않은 한 해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정히 이름을 부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세계를 견디는 방법이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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