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 오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름진 전. 무엇보다도 가장 좋아하는 전을 꼽으라면 바로 '오징어부침개'라 말할 수 있다. 송송 썰어 넣은 부추와 쫄깃한 오징어를 듬뿍 넣어 반죽을 입히고 넉넉하게 기름 두른 팬에 반죽을 얇게 올려 바싹하게 구워내면 비 오는 울적한 날을 이보다 완벽하게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밝지많은 못했다. 이 시발점을 생각해 보자면 아마 초등학교 3년 동안 이유 없는 친구들의 따돌림을 겪은 이후가 아닐까. 이후에 대부분의 학창 시절은 대부분 짙게 먹구름이 낀 하늘이기도, 아주 가끔은 해가 쨍쨍했던 날이 있기도했다. 말하자면 너무나도 길지만 유독 나의 사춘기 시절은 참 다산 다난했다.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다 틀어졌을 때 다치는 마음의 깊이를 너무 일찍이 깨달아서인지 이미 학창 시절부터 나에게는 '가족이 전부'라는 걸 일찍이 깨달을수 있었다.
친구들과 놀기에 바쁜 고등학생하굣길에도엄마가 가게가 아닌 집에서 쉬고 있다고 하면 친구보다는 엄마와의 시간을 위해집으로 신나게 뛰어왔던 내 기억 속에 나의 모습.
지금은 남편이 기다리는 나의 집으로 돌아가기에 이때의 시절을 기억해 보니 괜히 애틋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고등학교 2학년,더운 여름의 무더위를 조금은 가라앉쳐주는 고마운 비가 아침부터 하루종일 내렸었다.종일 마음 한편으로 이런 날에는 엄마가 해주는 오징어부침개나 실컷 먹고 싶었지만 차마 바쁜 엄마에게 이야기를 못하던 하굣길. 비가 오면 유독 처지는 내 기분을 한 번에 이겨낼 수 있게 만든 그 순간은 집으로 돌아가는 7211번 버스에서 받은 반가운 엄마의 문자였다.
"딸~ 오징어부침개 만들어뒀어. 얼른 와~~"
"정말?! 나 하루종일 오징어부침개 생각했었는데, 엄마랑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 안에 풍기는 기름냄새와 지글지글 부쳐지고 있는 오징어부침개. 앞치마를 두르고 하얗게 밀가루 반죽이 묻은 국자를 들고 맞이해 주던 엄마의 모습. 갓 부쳐져 나온 오징어부침개를 두고 식탁에 둘러앉아 젓가락으로 찢어가며 쉴 새 없이 먹었던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비 오는 날이면 오징어부침개부터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결혼 후에 비 오는 날이면 종종 남편과 함께 만들어먹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 날 엄마가 해주었던 오징어부침개의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이상하다 분명 재료는 똑같은데...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해줬을 때 그 음식이 어떻게 그 사람에 기억에 새겨질지는 모른다. 아마 엄마에게 나의 오징어부침개의 추억은 그저 평범했던 일상 중 하나라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른다.
매일 먹는 음식이라도 그날의 분위기, 환경에 따라 그 음식이 특별해지는 날이 생긴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음식은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오징어부침개 하나로 오랫동안 이런 따스한 기억을 갖고 사는 덕분에 비 오는 날, 조금은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