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강남의 XX 문고에서 방황하는 영업사원
푸른 풀숲을 뒹굴러 코밑으로 훅 들어오는 풀내음이 절실할 때가 있다.
강남 지하철 상가에 들어서면 사는 냄새가 뜨겁게 밀려올 때면 드는 생각이다.
그게 다 살면서 나게 되는 냄새인데, 숨이 막힌다.
해마다 다양한 위기들이 찾아온다.
COVID-19 이 있었고, 각종 자연재해며, 정치적 사회적 인재와 외세의 관세 문제 등이 발생하면
애먹은 나의 고객은 여간해서는 나를 찾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먼저 문전박대를 감수하고 사정사정하여 건물 시건장치를 풀게 만들고 겨우 그와 대면한다.
내 눈빛이 어긋나고, 내 말이 비껴가며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이어리 바닥에서 낯선 명함을 안주머니로 가져다 놓는 걸 보았을 때,
나보다 먼저 온 이가 있다는 사실을 더더욱 씁쓸하게 감당해야 할 때가 온다.
생경한 약탈의 현장에서 빈털터리로 뛰쳐나와
반사적으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다 발길이 멈추는 곳이 강남의 XX문고.
노가리집 다음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서점에서는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생존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시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수많은 성공 신화들 속을 해짚어 본다.
하지만 이내 그 성공들이 나의 문제를 100% 해결하기에는 뭔가 결이 다르다는 위화감이 든다.
수박 겉핥기라도 테마(?) 별 찬연한 처세의 실마리에서 위로받기를 기대하지만...
나에게 소용 있는 철학이 과연 있을까?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쁘고,
가족에게는 영웅이지만, 경쟁관계에서는 빌런일 수도 있는...
내게 ‘벌’이 필요한 것일까? ‘충고’가 필요한 걸까, ‘인도’가 필요한 걸까?
잘해주면 뭐 하나, 쟬 죽여서 뭐 하나,
아껴서 뭐 하나, 또 버리면 어떤가,
이렇게 무기력해도 될까 말이다.
그래, 그 정도로 끝내려 했다. 아니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Solution. 그건 힘내자는 용트림. 흐트러진 자세를 추스르는 것부터 시작인 거다.
내 초라함이 다리를 힘겹게 뻗어 고쳐 앉는 순간, 불편한 감정이 회복의 의지로, 스위치 되면서
뜻밖의 돌파구가 생긴다.
하지만 가장 답이 없는 것은 일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곱게 쓸어내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잡아 뽑아내지도 못하고,
다독이지 못하고, 쫓아내지도 못하는
그 마음은 황금을 품은 고슴도치.
가시가 나인가, 황금이 나인가?
둘 중 무엇이 해를 입히는 걸까?
둘 중 무엇이 나를 보호하는 걸까?
괴로운 데, 필요한 시간이며
심지어 즐겨야 한다니...
이런 게 메조히즘이고 새디즘이다.
그게 영업의 본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업의 본질.
대뜸 이런 생각으로 또 버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