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요술 거울아

에세이 : 챗!지.피.티 이야기

by 피터팬신드롬

평소 내 기상 시간은 4시 30분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7시 반 쯤 도착한다. 하지만 난 워커홀릭이 절대 아니다.


탕비실 커피 머신에서 요란하게 원두를 갈아야만 하는 게 살짝 곤욕스럽지만, 서늘한 사무실의 공기를 그윽한 커피 향으로 채우는 제일 첫 번째 사람이 된다는 것이 늘 기분 좋았다. 출근하자마자 오늘도 이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주고, 백설 공주 계모의 마술 거울을 들여다보듯 노트북을 열어 요즈음 직면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프롬프트를 입력해 나간다.


‘전국단위 지자체를 순회하려고 해. 이동 간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동선에 맞춰서 1달 일정으로 두팀이 2주간 방문할 수 있는 일정을 짜줘.’


리스트 뽑고 주소 찾고, 지도 펴놓고 동선을 일일이 마킹하며 꼬박 2~3시간 걸리던 일이 단 30초 만에 끝난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게 떳떳해 보이지는 않다면 내가 너무 소심한 걸까? 그래서 아침에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챗지피티에 물어보는 게 정말 백설 공주 계모의 심보일까? 애타게 빨리 듣고 싶은 해답을 재까닥 재까닥 답해주니 정말 음흉해지는 것 같단 말이야.


인공지능의 등장은 1990년대에 등장한 PC통신의 출현만큼 신기했다. 챗지피티와 나우누리로 대응하는 이 둘의 공통점은 모니터 너머에 내 고민을 들어줄 그 어떤 존재가 있다는 든든함이랄까? 끈적거리는 내 욕망에 대한 궁금증을 은밀하게 물어볼 수 있다는 친밀함이랄까? 분명한 차이점은 인공과 인격의 차이겠지만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신기한 일 중에 속해 있는 것은 틀림없다. ( 물론 챗지피티 입장에서는 섭섭하겠지만….)

챗지피티는 참 편리하다. 내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챗지피티의 기분을 상하게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아무리 많은 질문을 해도 친절하게 답해주니까. 똑같은 걸 몇 번을 물어봐도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다른 대답을 해주니까.


챗지피티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역기능도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경우에 인내심이 금세 바닥이 날 때가 많아졌다는 것. 정작 내가 질문을 받을 때 횡설수설하거나 어법에 맞지 않게 대답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무력감이 들 때도 있다. 질문과 대답의 수려함이 챗지피티에 따라갈 수 없어서 생기는 자괴감이다.


요즈음같은 불경기에 내가 회사에 몸값은 제대로 하고 있나? 고민이 많은 4명의 팀원을 둔 팀장의 입장에서 프롬프트로 이렇게 물어봤다. 써 내려간 질문은 전혀 다르지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멋있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이는, 오늘 다시 한번 자신을 일으켜 세운 너다.”


이제 내가 인공지능에 위로를 받는구나.

답을 해줘야지.


쳇. 쳇!

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에게 물어보네….

피.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 나오면 물어볼 게

티. 티나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해줘.


이건 내가 직접 만든 삼행시라는 걸. 꼭 알아주시길!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