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팔이 월급쟁이

에세이 - 이 지경이 경지에 오르게

by 피터팬신드롬

내 꿈은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왜 포기했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돈에 얽매여 구차해지는 게 싫어서죠.”


개소리였다. 핑계였고, 비겁했다.


케이팝 스타나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마음 졸이며 즐겨 보는 건, 마음속으로 나처럼 포기하지 말라고 참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랄까. 나처럼 하기 싫은 일로 돈을 벌고 있는 애석한 짓을 여러분들은 하지 마시라고?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지는 건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

대개 하고 싶은 일은 돈이 안 되고 하기 싫은 일은 돈이 되기 때문에, 하루빨리 하고 싶은 일이 돈이 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으려면 빨리 꿈을 찾는 게 좋다. 월요일 아침은 너무 일어나기 힘든데 토요일은 새벽에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경지에 오르기는 멀었고, 만년 부장의 지경에 이르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글쓰기, 책 읽기, 그림그리기, 문구 모으기, 책 모으기, 펜글씨 쓰기. 그중에서도 내 생애 통틀어 가장 후회되는 것은 책이 이렇게 좋은 걸 늦게 깨달은 것. 2-3년 동안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 겉표지가 도저히 안 사고는 못 배기게 이쁜 책까지 한두권씩 모아보니 이제 1500권이 넘어간다. 읽은 책은 200권 정도. 남은 1300권을 언제 읽지, 하니 더더욱 마음이 조급해지는 지천명의 나.


대한민국 가장의 반열에서 참 애닲도록 슬픈 남자들의 운명을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양쪽 시력 1.5, 1.5였을 때는 그렇게 세상이 맑고, 선명하게 보이더니 그 좋은 시력은 군대에서 총 쏠 때나 제대로 써봤지 정작 자기 계발하고 독서라는 게 너무 좋아져 책 실컷 읽어보려 마음먹었더니 노안이 온다. 하지만 책을 갈라서 펼치면 이젠 무조건 안경이란 도구가 필요하게 됐으나 그것조차도 좋다. 안경이 장식품이 아닌 필수아이템이 된 것은 서러운 게 아니라고, 나를 변화시켜줄 어떤 운명적인 사건과 우연히 만나게 될 때, 나름 나만의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것이라고 자체 위로를 건넨다.


일요일 밤잠을 설치게 하는 월요일의 공포를 견디는 일은 점점 더 싫어져 가고 있다.

임원보고 때는 주마다 똑같은 보고내용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나 머리를 돌리고, 부서 회의 때에는 앵무새처럼 보고하는 팀원들 자극을 어떻게 줄까 고민한다. 포장과 앵무새는 창의적이지 않은 점으로 일맥이 상통하고 있으면서도 참 제각각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이 아이러니가 역겨울 때쯤 되면 어김없이 양가감정이 든다.


회사 때문에 우리 애가 독서학원에 다니고,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실컷 먹을 수 있고, 내사람에게 생일날 조그마한 귀고리라도 사줄 수 있고, 부쩍 고장 난 데가 많다고 투덜대시는 노모 의료보험도 필요하고, 가끔은 나도 내가 현재 어떤지는 무시한 채, 학창 시절 두꺼비들과 골프도 치면서 너스레도 떨어보고 싶은데, 그게 책을 읽는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게, 회사에게, 내 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먹고 사는 일은 꿈 팔이라고 폄하해서는 안되는 고귀한 일이니까.


1500권 중 나와 우연히 만난 책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아빠는 자기 자신도 그런 틀 안에 가둔다. 진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사람을 자기라고 단정해 버린다. 아빠는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아빠가 원하는 삶은 아빠의 머릿속에만 있다. 아빠는 삶이 알아서 그렇게 되어주길 바란다. 아빠는 자기가 바로 삶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1


나의 아버지가 하셨고, 그리고 아버지인 내가 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될 내 아들이 앞으로 하게 될 “선택”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유일한 선물이고 영혼의 자리이다.* 2


천성에 따라 늘 선택하기가 쉽지 않게 만든 것이 신의 뜻이니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시간을 버리지 않는 게 나의 최선일 것이다.

그래야 팔았던 꿈 다시 살 수 있는 밑천이 될 테니까.


어쩌면 이 지경이 꿈에 이르는 경지에 오르게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1. - 내가 되는 꿈 ( 최진영 장편 )

2. - 영화 프랑켄슈타인 중에서 - 엘리자베스의 대사 인용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