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나를 자른다고?"
수뇌부의 밀실 회의에서 내 이름이 나왔단다. 물론 다른 이름들도 곁에 껴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어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홀로 감당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기분이 ‘뭐’같았다.
지랄 같아서, 이번에는 진짜로 결심했다.
바탕 화면 내 직박구리에는 야동이 아니라 사직서 파일이 있다.
야동만큼 부끄럽고, 대책 없고, 누울 자리도 없이 불로 뛰어드는 나, 불나방의 최종 선언문이다.
서류상 사유는 개인 사유.
마음속 사유는 니들이 나가래서.
이런 사람도 있었을까?
사직서 내용을 빨간 Pretend-bold로 바꿔 인쇄하고, 싸인 뒤에 육두문자 이니셜을 박아 넣는 거다.
"ㅃ. ㅋ"
인생이 무엇이냐. 물리적으로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인생은 아니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인생이었더라.
여유가 없는 건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여유가 생기려면 놓아야 생기는 것이더라.
영업이란 도구를 사용하며 연명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이기적인 것이 기본이란 게 의무라서 싫고,
멍청하고 착하게 사는 게 내 본연의 모습인데
잔인하게 살아야 하는 게 내 모습이어야 하는 게 싫은 거다.
얼굴은 세월의 흠집에 거울 보니 어지럽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문제 풀이가 수학처럼 명확할 리 없는데 답이 궁금하다.
실컷 풀다가 풀다가
답은 그저 ‘내 잘못’ 이라고 나온다.
오답 노트에 적고는 모든 문제의 답이 나라면
이렇게 답을 내려면 뭐 하러 문제를 푸나?
복습을 포기한다.
그래서 사직서를 쓸 때는 꼭 봉투에 넣나 보다.
A4 지를 봉투에 넣으려면 몇 번 접어야 하는데,
그 몇 번을 접는 동안 현실감을 찾게 되는 신기한 기적이 일어난다.
떠버린 마음이 아빠의 무게로, 남편의 무게로, 아들의 무게로
다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몇 주 동안 월요일 전야제를 보내고 있다.
마음만큼은 폭죽이 어지러이 터진다.
그 폭죽을 고이 접어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