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이력서에는 적지 못한 내 진짜 첫 직장에 대하여
이력서 경력란에는 적지 못한 내 진짜 첫 직장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2001년 코스모스 졸업. 학사모를 2월이 아닌 8월에 쓰는 것도 서러운데, 졸업 이전에 취업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졸업식이 마냥 기쁜 날이 아니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일일이 신경 쓰지 않으려 하시는 것 같았으나 아버지는 대학 졸업식장에서 내내 안색이 좋아 보이진 않으셨다. 몇 년 전 대기업 임원으로 계시다가 IMF 여파로 명예퇴직을 하신 아버지 입장에서는 나는 물가에 내놓은 학사모를 쓴 철없는 미취학 아동처럼 보였을 거다.
난들 기쁘게 졸업하고싶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졸업 때처럼 낙방이란 쓴잔을 마시고 갈 곳 없이 졸업하는 기분을 또 한 번 느끼고 싶진 않았다. 커다란 철문이 눈앞에서 쾅하고 닫히고 뒤돌아보니 낭떠러지가 있는 형국이다.
재수 시절, 노량진 대성학원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이미 직장을 다 잡았단다. 이름을 대면 모두 알만한 대기업에 졸업 전에 취직을 해서, 벌써 직장 내 커플이 됐다는 둥, 벌써 일 얘기를 하는 통에 나 혼자 과거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니, 나는 여닫이 시골 흑백 TV처럼 암담했고, 취직한 친구들은 총천연색 컬러 TV 같은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제이, 넌 취직 어떻게 됐어?”
“코스모스 졸업자의 비애 아니겠냐? 이력서 넣고 있지.”
“잘 될 거야, 힘내라!
대학 4년에 종지부를 찍을 8월 전 후로, 이력서는 1~3개월 동안 40군데도 넘게 넣고 있었다. 문제는 면접 기회조차 잡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여의도의 마천루 같은 빌딩 속을 아침마다 누비며, 잘 다려진 각 잡힌 양복을 입고,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작은 바램은 멀찍이 나를 향해 손 흔드는 아득한 소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원회사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희망 포지션도 경영 전공을 살리자면, 경영 기획, 무역업무, 십분 양보해 영업 관리, 해외 영업 정도가 어울렸을텐데, 한 두 달이 넘어가자 점점 영업, 법인영업, 방문 영업, 직판 영업 등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은 조그마한 스낵을 중동으로 수출하는 회사에 지원서를 방문 제출했든데, 인사 담당자 책상에서 박사 학위 출신의 경쟁자 이력서를 발견하고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었다.
현실은 냉혹했고, 취직 장벽은 너무 높아서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11월 XX 일 오리엔테이션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메일을 참조하세요”
졸업하고 나서 자린고비 아버지께서 사주신 플립형 핸드폰을 쓴 이후, 그 해 들어 가장 반가운 문자였다.
경쟁률 20대 :1.
조금 이상한 점은 서류심사를 통과하자마자 면접 없이 합격통보를 받았다는 것과, 바로 오리엔테이션 일정이 잡힌 점이었다. 더욱이 오리엔테이션 장소도 강원도 어디쯤이었는데, 처음 들어본 지역이라는 점도 께름칙했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합격’이란 소리에 나는 바로 입사 의사를 밝혔고 대학 MT에 초대된 사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 달 채 다니지 않고 도망 나왔다. 비록 한달치는 아니었지만 수당이 있었는데도, 포기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아직도 그 수상한 오리엔테이션 첫날 교육내용이 생생하다.
“월급은 기본급 70만원이고요, 그 이상은 여러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과급으로 지급합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역량을 키우세요!”
둘째 날에는 20명이 아니라 10명만 남아있었고, 그 오지(奧地)로 오리엔테이션 장소를 섭외한 것도 사실은 신입 영업사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이 님은 계속 교육받으실 거예요?”
“음, 딱히 불러주는 데도 없는데 나가서 뭐 해요. 교육 기간 동안 삼시세끼 준다니 무슨 소리 하는지 들어나 보죠. 뭐.”
3박 4일의 O.T 일정이 끝나고는 나를 포함하여 단 2명만 남아 있었다. 우린 200대의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우수신입사원(?)인 셈이었다.
나를 뽑은 이 수상한 회사는 2000년대 전자상거래법도 없던 시기의 초창기 전자지불 회사였었다. 신용카드와 함께 홈페이지에서 쇼핑몰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붐업되고 있던 때로 기억한다. 그 회사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사장님께 제안하고 다녔는데, 고객이 운영하는 홈페이지가 있다면 전자지불 창을 달아줘서 신용카드로도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게 해주고 거기에 촉진책으로 홈페이지도 제작해 주는 서비스였다. 기존 카드 수익은 매출 횟수만큼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제공하는 구조였었다면, 이 서비스는 홈페이지 제작 초기 비용은 싸지만, 매출 비중(%)만큼 수수료가 책정되는 구조여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전자지불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이점으로 작용했다. 고로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때, 나는 이 사업이 그렇게까지 커질 것이라는 혜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단지 가가호호, 일일이 방문하여 영업하는 것이 쑥스럽고 창피해서 도망가고만 싶었고, 실제로도 도망을 간 우둔한 사회초년생이었다.
내가 도망가고 난 후 그 피라미드 같은 회사에 홀로 남아있던 나머지 한 명의 영업사원은 4~5년 후에 강남 거리에서 마주쳤다. 여전했다. 양쪽 귓불의 귀걸이가 눈에 띄는 자유분방함이 짙은 향수 냄새와 함께 그대로였었다. 그때도 역시 노가리에 맥주 한잔 하면서 그가 털어놓은 자기 연봉은 내가 받고 있던 연봉의 정확히 3배라 하였다.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형님, 영업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죠. 꿋꿋하게 몇 년 버티고 다녔더니 ‘카드깡’ 하는 사람들 색출하는 게 역량이 되어서 전자지불 회사만 여러 군데, 투잡, 쓰리 잡 뛰고 있습니다. 덕분에 돈도 많이 벌고요. ”
2007년 귀걸이 동생과의 강남 노가리는 참으로 기분이 복잡 미묘하게 했다. 만약 내가 그 회사를 조금만 더 다녔더라면, 저 귀걸이를 나도 하고 다니면서 위풍당당하게 살 수 있었을까?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뒤통수가 대머리라 지나가고 나면 끝이다. 머리끄덩이를 잡을 수가 없으니까. 나는 다른 카이로스를 잡아야 했고, 지나간 저 대머리는 잊어야 했다.
단 삶은 속단하지 말자 생각했다.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또 다른 카이로스를 놓치지 않는 지혜일지 누가 알겠는가?
*카드깡 : 신용카드를 이용해 카드 가맹점에서 허위로 매출을 발생시키고 수수료를 뗀 나머지 액수를 지급받는 행위.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카드 명세 사기 또는 불법 대출이다. ( 출처 나무위키 )
*표지 인용 :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프레스코화 ‘정의의 천사’의 한 구석에 그려져 있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