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단배를 타고 시간의 대양을 넘어...

드라큐라, 선녀를 만나다. 그래서?

by 피터팬신드롬

돛단배 같은 삶이었다.


파랑에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는 조그만 배에 몸을 맡긴 위태한 삶이었다. 암초가 나타나면 생채기가 뻔히 날 것을 알아도 눈을 꼭 감고 그저 맨몸으로 부딪혀 깨졌고, 짧은 시간 내에 회복하면 다시 반복이었다. 다시 말해 주중에는 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주말에는 말초적으로 보상받으면 그만이었다. 집에 틀어박혀 TV를 보거나 온종일 PC방에서 게임을 하지 않으면 쉰 것 같지 않았다. 빌어먹을 주말 루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기적인 인생 계획이란 것은 싱그러운 청춘들에게나 필요하지, 나에게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어렴풋이 문제의식을 가지다가도 이내 게임으로 터진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상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회사 내 바로 위 상사였고, 내가 주로 어울리는 친구들은 술을 좋아하는 PC방 동네 친구들. 회사 실세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회사가 어려워 고통 분담의 명분으로 월급이 깎여도 개의치 않고 충성을 다했으며, 같이 놀 친구도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겠거니 만족한다고 합리화하여 나 자신의 선한 부분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2월 22일, 거래처로서 이지만 내 앞에 나타난 플로리스트 그녀.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날 단둘이 만난 게 아니기에 우연히 내게도 나눠준 자비의 시선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찰나의 그녀의 눈빛이라도 내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넌 뭘 가지고 있어? 예를 들면 이런 거….

‘돈’, ‘비전’, ‘포부’, ‘계획’, ‘학벌’, ‘차’….


아! ‘사시미와 아이들’ 밖에는 건사한 게 없는 것 같았다.

다 어중간하고 쓸모가 없었다.


'통탄할 노릇.

그런 내 맘을 알 리가 없지,

현실감이 없이

아름다운 그녀의 눈웃음이

내겐 서글픔이 됐지

다시 동그래지는 눈망울은

용기가 없어 바라볼 수 없었지.'


그렇게 그날 이후, 그녀 생각에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양 심장이 뻐근했다. 조금만 과장해서 말한다면 심장이 왼쪽에 있는 것을 그때 이후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첫 1:1 만남을 위해 심사숙고해서 문자를 보냈고( 돛단배를 타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의 대양을 넘어간 거다. ), 답신이 없으면 거래처 일을 핑계 삼아 응답하게 만들어 만날 구실을 획책하였다. 그렇게 한 두 번의 만남 이후에도 점점 더 그녀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으니, 확실히….


“난 그녀를 원했다. 게임보다도.” ( 긱스(Gigs)- 짝사랑 )


그녀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 위해서는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어중간한 나의 ‘돈’, ‘비전’, ‘포부’, ‘계획’, ‘학벌’, ‘차'에 대해서….


아버님은 뭐 하시는 분이냐는 질문에는 은퇴하셨다는 얘기는 작은 소리로, 하지만 서울자가의 대기업 상무이사님이라고 했고, 연봉이 얼마냐고 물으면 판관비(영업비)가 포함된 금액으로 (절대 거짓이 아님) 고지(?)하였으며, 그래도 성에 안 차는 듯 보이면 정작 회사에서도 발표해 본 적 없는 사업계획 수준으로 내 직업에 대한 비전을 브리핑하였다. 그리고 차는... B.M.W라고 했다.

Bus, Metro, Walking.



이후로는 PC방은 가본 적이 없으며, 가령 남자에게 "XX메스"가방 같은 디아블로도 포기하였다.

( 옷장에 플레이스테이션과 콘솔, 그리고 모니터세트를 숨겨놓을 생각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


결론은... 결혼...


돈을 벌 진정한 이유가 생겼고,

월급이 삭감이 되면 화를 내며 저항할 이유가 생긴 거고,

게임으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어진 거고,


시간의 대양을 넘어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고서는 이제 아들도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돛단배로 시작해도 계속 항해가 가능한 게...


나의 인생.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