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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Aug 28. 2015

미디어는 세계다

소비자 행동론에서 디지털 행동론으로 #1

캐나다의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확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라디오는 귀의 확장, TV는 눈의 확장이며, 컴퓨터는 뇌의 확장쯤 되겠다. 맥루한의 이러한 비유는 실로 절묘하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는 단지 감각할 수 있는 물리적 범위의 확장이라는 측면을 넘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영역 확장, 즉 인간의 신체적 능력(Faculty)뿐 아닌 인지적 용량(Capacity)의 확장을 의미하며, 나아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서에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의 등장 이상의 의미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


이러한 논거대로라면, 즉 세계를 인식하는 범위와 방식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미디어는 인간의 인지, 사고, 감정, 행동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지가 바로 그가 주장하는 기술결정론의 근거이며, 그 유명한 명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의 핵심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의 이런 견해에 크게 동의하는 바이며 오히려 좀 더 그 영향력을 확대해서, 그 양과 질을 더 의미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미디어는 메시지임을 넘어
그 자체로 세계라 할 수 있다.


가령 이렇다. 우리가 미로의 세계에 들어서면 미로가 만들어진 규칙과 구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생물학적 본능에만 충실하면 그만이었던 유아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게 돼 사회적 관계라는 세계의 규칙에 얽매이게 되면서 사회화되는 이치와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인간이 들어선 하나의 세계는 결국 그 인간의 인지, 사고, 감정, 행동의 한계를 규정짓고, 더불어 어떻게 인지, 사고, 감정, 행동하게 만드는지 그 방식을 습득하게 한다. 


마치 풍경화를 그릴 때 도화지의 재질과 물감의 유형, 붓의 형태가 결정되면 어찌 되었든 수채화면 수채화, 유화면 유화, 판화면 판화라는 양식하에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따라서 어떤 미디어를 주로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인지, 사고, 감정, 행동하게 되는가가 그 양식이 결정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 인간이 본래 가진 신체적 능력을 넘어 미디어의 확장된 능력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 나머지 이제는 세계 인식의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디어가 구조화한 세계 안에서 인지, 사고, 감정,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의 도구가 그림의 양식을 결정한다 (출처:http://lupe.co.kr)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었지만, 요지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따라 인간의 인지, 사고, 감정, 행동의 양식은 달라진다는 것이며, 따라서 최근 같이 스마트폰이 미디어 활용의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다른 행동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간 소비자 행동론에 수없이 등장해 왔던 소비자 행동 모델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가령 현재 소비자 행동론을 설명하는 모델 중 대표적으로 논의되는 AIDMA(Attention, nterest, Desire, Memory, Action)를 들어 얘기해 보자. 이 모델은 사실 TV라는 매체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 만들어졌으며 TV가 만들어낸 세상 내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더 잘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PC(인터넷)가 등장하고 다시 PC(인터넷)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냄에 따라 인간은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포착하여 일본의 광고회사 덴츠에서 만든 모델이 AISAS(Attention, Interest, Search, Action, Share)다.


이 모델은 기존의 AIDMA에서 Search와 Share를 추가하였는데 이 두 가지가 모두 인터넷의 매체적 환경으로 인해 비로소 대중적으로 가능해진 인간 행동의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과 SNS가 지배하는 지금의 디지털 세계에서는 어떤 수정, 보완이 필요한가’, 혹은 ‘어떻게 다시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TV에 인터넷을 보완한 AISAS 식의 접근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인지, 사고, 감정, 행동의 패턴을 스마트폰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행동론 모델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 행동 모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사실 이것은 거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며, 이론적 논의와 실증적 검증이 필요한 하나의 연구 과제다. 하지만 질문이 답을 이끌어낸다고 했던가. 부담스럽기만 한 이 질문은, 어찌 보면 답을 내기 위함이 아닌 고민을 종용하는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기나긴 고민과 연구의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의 신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업계와 학계를 가리지 않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어쩌면 답을 내릴 때쯤이면 벌써 세상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한국광고총연합회가 발간하는 [광고계 동향], 2015년 8월호(Vol.293)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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