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연출하다: Self-Identification
지금의 20대는 단지 젊은 층으로서만이 아닌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세대로서 의미를 가진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동질적 소비자 집단으로서 조명받았던 세대가 'X세대'였다면, 지금의 20대는 바로 그 X세대가 등장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태어났다. 인구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이들은 낮은 출생률로 한국사회의 인구가 줄어드는데 기여하기 시작한 세대로서, 특히 외동 아들, 외동 딸의 비율이 높다.
또한 한국 경제 성장의 혜택으로 물질적 여유를 누림과 동시에 부모의 관심하에 집중적인 관심과 투자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탓에 어른들과 형제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자랐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심리적으로 강한 자기애를 가지고, 자기표현 욕구를 자연스러운 심리적 동기로 형성하며 성장해 왔다. 사회적 환경으로 보았을 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문화적으로는 다양한 컨텐츠를 접할 수 있어
자유분방한 성격에 자기 주장, 자기 취향을 저마다 가지며 개성 표출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세대라 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문화에 노출되기 시작한 시대에 성장하여 세상을 보는 시야 또한 넓게 형성되어 이상과 꿈을 크게 키워왔다.
덧붙여서 이들 세대를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징이자 이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즉 PC, 게임기, 핸드폰 등 모바일 개인 기기와 인터넷이라는 다수 대 다수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채널을 태어날 때부터 소유하고 이용하며 성장한, 역사상 최초의 Digital Native 세대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자기애와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심리적 특성과 스스로 정보를 생산, 유통할 수 있는 개인 미디어에 익숙하다는 환경적인 특성이 결합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세분화된 개성과 개인화가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스마트폰과 SNS로 인하여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다는 점으로 인해
가상 현실에 익숙하고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데 적극적이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뿐 아니라 이들 세대를 규정짓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다른 환경 요소가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IMF 이후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취업난이다. 이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받아온 물질적 혜택에 익숙하지만, 성장하면서 겪은 IMF는 부모, 가정의 경제를 어렵게 하고 나아가 사회 경제가 강력한 경쟁체제로 접어듬에 따라
이전에 겪지 못했던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압박을 겪어야 하는 불운의 세대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와 같은 용어는 그런 그들의 불운한 환경을 설명해 주는 키워드 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장 배경으로 인해 이들은 몇 가지의 딜레마를 가지는데,
첫째 사회적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빈곤하여 취향의 눈은 높지만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없는 데서 오는 불만족에 항상 처해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없어도 폼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는데, 제한된 자산으로 자신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브랜드 보다는 아이템 위주의 구매행태를 보이고 아이템 하나도 꼼꼼히 따져 보고 구매하는 스마트 소비 성향이 나타난다.
둘째, 어릴 적부터 익힌 글로벌 감각으로 글로벌 인재로서의 꿈을 꾸지만 현실은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 역시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좌절감을 짊어져야 하는 세대다.
셋째, 스마트폰, SNS를 통한 끊임없는 자기 노출이 가능한 미디어 환경에 둘러싸여 있음으로 해서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며 자신을 타인에게 보여주려 하는 욕구에 특히 민감하다. 이처럼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집단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
이러한 이들의 특성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표출하고자 했던 X세대와 '개성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성향을 공유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극명하게 다른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이전 세대와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가령, X세대의 경우에는 사회질서에 무조건적으로 반항하고자 했던데 반해, 이들은 반대로 사회질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고 싶어 한다. 또한 X세대는 자유, 사랑과 같은 낭만의 감성을 가진 세대임에 반해, 이들은 프로필, 스펙, 패션 등 자신을 표출하는 과시의 감성을 가지며, X세대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기성세대의 어떠한 규정도 거부했던 데 반해(X세대는 캐나다 더글러스 커플랜드의 소설 'Generation X'에서 비롯된 말로 'X'는 규정지을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들은 오히려 개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때그때 상황과 장소에 맞게 스스로 연출하며 컨셉화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 또는 연예인에 비유하자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X세대의 경우 반항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비트'의 민(정우성 역)이나 장르의 특성을 규정하기 힘들고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한 음악을 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표적인데 반해, 지금의 20대는 반항 대신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기존 질서와 집단에 편입시키고 자신의 경쟁력을 연출하고자 했던 드라마 '미생'의 안영이(강소라 역) 또는 스스로를 상품화하고 이에 따른 유명세를 과시하는 최근의 아이돌의 모습과 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러한 특성 - 사회질에 적극적으로 편입, 타인의 시선에 자기 스스로를 연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 - 을 한 마디로 하자면, 자기정체화(Self-Identification)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자아를 타자의 시선에 두고, 타자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부흥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그야말로 라캉이 말한 타자의 욕망에 충실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자기정체화의 욕망을 실현하는 場이 디지털이라는 가상세계라는 점에서, 그리고 시뮬라시옹(디지털)에서 스스로를 소비되는 기호(컨텐츠)로서 적극적으로 연출한다는 측면에서 보들리야르가 말한 기호로서의 소비에 충실한 집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디지털이라는 공간에서 자기정체화(Self-Identification)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자기정체화라고 어려운 말처럼 써 놓았지만 사실 실제로 일어나는 행위는 아주 단순하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데로 갖가지 인증샷을 올리는 행위가 그것이다. 대체 그 '인증'이라는 것은 왜 이루어지는가? '누구'에 의해 '무엇'을 인증받고 싶은 것인가? 업로드한 인증샷이 어떤 내용이건 간에 그 인증이 향하고 있는 욕망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실현시켜 주고 완성시켜 주는 도우미가 곧 내 주변의 친구들, 나아가 불특정 다수의 SNS 이용자다.
모든 인증샷은 '내가 이것을 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 '내가'다.
이것이건 저것이건 어쨌든 그 행위의 주체가 '나'임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며, 대개 SNS상에서 공유되는 인증샷이라는 건 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셀카 또한 마찬가지다. 디지털의 불특정 다수에게(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고자 함이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인정받고 높이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며, 나의 인생이 그들에 의해 멋지고 아름답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즉 나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정체화(Identification)하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는 절대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악플이 아닌 무플이고 '좋아요'는 단순한 취향의 공유가 아닌 시선의 교환이다.
그러나 여기서 치명적인 함정을 발견할 수 있는데, 누군가 스스로를 정체화하기 위하여 전제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진지하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가장 관심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는 그만큼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디지털 상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상에서 누군가 전제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관여도 높은 시선인가는 의문이다. 아니 오히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건 정체화하려는 본인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타인이 얼마나 어떤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시선을 둘진 내가 그 사람이 돼보지 않고서야 알 길이 없는, 확인할 수 없는 관심이다. 그저 추측할 수만 있을 뿐. 그렇게 상상하고 믿을 수 있을 뿐.
결국, 디지털 상에서 스스로를 자기 정체화하는 행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교환되는 행위로 생각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스스로가 상상한 타인의 시선 위에 스스로를 올려놓는 자기만족적 행위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스스로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본질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나르시시스트라는 인물이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데로, 호수 속에 비친 자신의 미모에 스스로 반해서 하염없이 쳐다보다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조금은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신화가 담고자 했던 인간 욕망의 심리적 특성만 보자면 지금 20대의 Digital Activity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자신의 얼굴을 비춰주던 호수라는 거울은 곧 모바일을 통해 본 디지털 세계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을 스스로 상상하며 자신의 모습을 그 상상 속에 드러내고자 하는, 그러면서 나르시시스트처럼 점점 더 그 거울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 어찌 보면 닮아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논의를 결론지어 보면, 지금의 20대를 이렇게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향한 욕망
Mobile Mirror Me
그 욕망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거울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들,
모바일에 나를 비춰보는
거울 세대
스마트폰이란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손거울과 같은 물건이다. 지하철에서 여행지에서 맛집에서 끊임없이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꾸미는, 결국은 나를 향한 욕망이다. 그리고 어쩌면 M세대란 단지 지금의 20대 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디지털 세계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족하고 있는 그래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타자의 시선에서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의 인간이 아닐까.
※ 본 글은 한국광고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광고계 동향] 2015년 3월호 (Vol.288)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