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행동론에서 디지털 행동론으로 #2
앞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인간 행동양식의 변화에 대한 화두를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기존의 소비자 행동 모델이 아닌 변화된 소비자 행동 모델, 즉 디지털 행동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자 그렇다면, 디지털 행동 모델의 변화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 우선 스마트폰이 가진 미디어적 특성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하나의 현상,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다른 현상, 개념과 비교해 보는 것이 그 특성을 이해하는데 가장 정확하고 쉬운 방법일 것이다. 따라서 스마트폰 이전의 미디어와 스마트폰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미디어가 소비되는 물리적 환경의 차이다. TV가 한 시대를 지배했던 데에는, 물론 라디오가 주지 못했던 시각적 경험을 제시했다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만 단지 그뿐이 아니다.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매체로 TV 외에 사진, 영화, 비디오 등이 동시대에 존재했지만 TV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사실 TV가 미디어 소비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환경은 공간에 있다. 집 안의 중심인 거실에 소파와 함께 놓여 있다는 공간적 특성이 그것이다. 흔히 TV를 ‘Lean Back Media’라고 하지 않은가. TV가 성공하는 데 역할을 한 숨은 공신은 사실 소파다. 그리고 몇 가지를 더하자면, 감자칩과 맥주라고 할까. 한국에서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후에 먹었던 과일과 오렌지 주스라 해도 괜찮겠다. 마찬가지로 인터넷(PC)의 성공 요인에는 책상, 의자와 컵라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어떤가. 스마트폰은 그것들보다 훨씬 강력한 물리적 환경을 가지는데, 그것은 바로 내 손이다. 게다가 스낵이나 라면 따위는 굳이 필요 없다. 두 손, 아니 한 손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때가 언제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발신자와 수신자 역할의 차이다. 스마트폰, SNS에서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다. 발신자일 수도 있고 수신자일 수도 있으며, 혹은 발신자도 수신자도 아니다. 개인은 그저 한 사람의 개인일 뿐이며 굳이 발신자, 수신자의 역할로 한정 지을 수 없다.
TV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명확히 구분되었다면, 인터넷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고 스마트폰, SNS에 이르러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발신자, 수신자는 없고 다만 다수의 유저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저 수평선이 보일 정도의 넓은 광장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지나가는 행인 중 한 명일 뿐이다. 광장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소리치거나, 때로는 소곤소곤 이야기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신자는 딱히 없을 수도 있고, 혹은 광장의 모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유저들은 말하기도 하고 동시에 듣기도 하지만 누굴 향해 말하는지 누구의 말을 듣고자 하는지, 발신과 수신은 특정한 주체를 향해 있지 않다. 뱉어진 말은 그저 공중에서 떠돌 뿐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광장 한쪽에서 서커스 쇼라도 벌어지면 모든 사람이 하던 말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 즉, 갑자기 광장의 모든 사람은 수신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을 수신자로 만드는 것은 발신자가 아닌, 바로 콘텐츠다.
결국 SNS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발신자-수신자의 대화도 아니고 개인-개인의 대화도 아닌, 콘텐츠를 중심으로 구경하는 구경꾼만이 있을 뿐이다.
즉, 주체는 사라지고 구경꾼만 남는다.
셋째, ‘리얼 타임’이다. 그동안 미디어는 리얼 타임의 시간적 문제보다는 노출 범위의 공간적 문제를 확장하는 데 노력해 왔다. 다만, 제한된 상황하에서였지만 언제나 리얼 타임을 유지할 수 있는 미디어는 전화 정도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기존 미디어의 공간을 모두 가져가면서 동시에 실시간 통신의 기능마저도 흡수했다.
이제 스마트폰은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미디어, 즉 말과 글, 라디오와 TV, 인터넷과 PC의 공간적 범위를 모두 커버하면서, 거기에 리얼 타임이라는 시간적 환경을 장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완성된 미디어, 하나의 세계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결국 스마트폰이야말로 진정 “미디어는 세계다”라는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곳에 접속하면 사람과 대화, 온갖 콘텐츠가 있고, 다양한 감정도 존재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그곳에 더 실감 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그 세계에 로그인하고 로그아웃 하는 행위가 단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것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말이다.
이 매력적인 미디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궁극의 미디어는 아마 앞으로 더욱더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며, 나아가 인간 그 자체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즉 인간의 인지, 사고, 감정, 행동의 양식에 근본적인 변혁을 불러올 것이며, 그것은 단지 선형적, 단계적, 이성적인 접근이 아닌 직관적, 혼재적, 감정적인 접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스마트폰의 세상에 이르러 인간은 가장 본능에 가깝게 인지, 사고, 감정, 행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은 그것의 가치평가 이전에, 이미 아주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인간을 상대로 하는 다른 마케팅, 다른 소비자 행동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 행동론 - 디지털 행동론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이유다.
* 본 글은 한국광고총연합회가 발간하는 [광고계 동향], 2015년 9월호(Vol.294)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