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

#68

by 빨간우산


영화 「부당거래」에 등장하는 명대사가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아요.


이 명대사는 이제는 일상의 여기저기서 속어처럼 흔히 사용되는데, 인간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호의를 사라지게 한 지금의 세태를 반영한다. 그러니까 호의를 베풀면 호의로 되돌아오는 아름다운 관계가 아닌 그저 호구가 될 뿐이라는, 슬픈 현실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태를 꼬집는 통찰의 말이, 영화 속에서는 정작 썩을대로 썩은 검사가 내뱉은 대사라는 것이 반전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슬픈 현실을 풍자하는 말이 바로 그 현실을 만들어내는 당사자의 것이라는 현실이.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악인의 심리는 악인이 가장 잘 아는 법. 사이코패스를 잡는 한니발처럼..)

어찌되었든 그래서, 이제는 진심어린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는 댓가를 바라는 마음은 전혀 가지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 내 호의가 공중분해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무시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키워내거나(그러니까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건 성인 수준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호의를 거두는 것만이 현명한 대처일 수 밖에 없다. 애써 호의를 베풀고 상처를 얻는 일을 반복한다는 건, 여간해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실천해본다면 호의를 거두는 일 또한 애써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쉬울 것 같은 그 일도 스스로를 내버려두다 보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러니까 누군가의 곤란한 상황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도와주려는 마음이 불쑥 솟아나거나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참아내고 애써서 거두어내야만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고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이란 인간에 대한 애정과 호의를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공자님의 말씀이 과연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다.(거꾸로, 공자님이 지금의 이 세태를 본다면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하는 짐작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호의를 애써 거두지 않으면 내가 타인의 권리로 이용되어지는 기분나쁜 경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건 마치 내가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듯한 느낌인데, '기분나쁘다'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참 '더러운' 느낌인 것이다. 그러고보면 자연스러운 호의마저 내보이지 못하는 지금의 이 세태가, 현대사회의 비정함이 얼마나 슬프고 참담한가.

그래서, 호의와 호의가 교환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린 지혜롭고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상황과 경우도 가릴 줄도 알아야 한다.

분명한 건 우리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질수록, 그런 인간과 인간의 자연스런 호의와 공감의 순간을 맞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거라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이 디지털 공간내에서만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공감의 장(場)을 사라지게 만드는데, 그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질 수록 우리의 마음 또한 공감의 감각을 잃어가므로 현실에서마저도 공감은 장애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디지털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는 현실에서도 디지털에서처럼 상대의 호의에 공감하는 마음보다는 그것을 '이득'으로 여기는 것이 더 자연스운 태도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태도를 '스마트'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이러한 자기방어와 이기적 경향은 단지 일상의 '호의'가 사라지는 작은 사건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결국 삶 자체의 의미를 앗아가는 거대한 소외와 공허를 낳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소외와 공허를 어디서 어떻게 메꿔야할 지 몰라 끊임없이 방황하다가(아마도 끊임없이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더 비싼 걸'쇼핑'하지 못해 억울해 하겠지)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어느 구석진 곳에서 메마른 눈물을 훔치는 자신을 발견하는 끔찍한 순간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현명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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