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니 꽤 자주 해 먹는 요리다. 금방 할 수 있는데 매우 맛있다. 하지만 이 요리의 장점은 단지 '간편한데 맛있다'에만 있지는 않다. 물론 간편한데 맛있다는 건 요리의 매우 큰 특장점임에는 분명하지만, 대개 그런 장점은 인스턴트에서 찾기 마련이고 인스턴트식품은 그런 기대를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다만, 인스턴트의 간편함이란 너무 치명적인 것이라 여기에 길들여지면 인스턴트'만' 찾게 되는 습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그로 인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역시나 치명적인 단점을 동시에 갖는다. (배달음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홈메이드) 길거리 토스트는 인스턴트와 마찬가지로 '간편한데 맛있다'는 장점은 같지만 인스턴트 이상의, 아니 인스턴트는 줄 수 없는 식사 경험의 만족감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격이 다르다. 우선 계란 프라이를 반숙으로 부쳐야 하는 관심과 정성이 요구되고, 식빵도 토스트하여 기다리는 설레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양배추와 양파는 가느다랗게 채 썰듯 썰어 씻어두어야 하며 무엇보다 재료 사이사이 소스를 적당히 바르고 얹는 과정은 플레이팅의 섬세함을 요구한다(대충 하다간 무너져 내린다.) 설명을 길게 하고 나니 뭔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라면 끓이는 시간 정도면 다 끝낼 수 있다. 모든 재료와 소스를 잘 쌓아 올리고 식빵을 덮어 먹기 좋은 크기로 반을 잘라내면, 맛에 대한 심리적 기대와 입안의 침샘이 솟는 물리적 욕구가 만나 먹기 전부터 식사가 이미 시작된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과 밖으로 노른자가 흘러내리면 맛을 미각뿐만이 아닌 촉각과 시각으로도 음식을 즐기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그 풍성한 느낌이란, 인스턴트는 줄 수 없는 식사 경험이라고나 할까.
이 요리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두가 알듯 토스트라는 음식이 어떤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내가 써놓은 재료들도 그저 냉장고에 주로 있는 것들일 뿐, 무엇이든 추가하거나 빼도 크게 상관은 없다. 복합된 맛이 변화될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해도 웬만하면 다 맛있다. (하지만 계란 프라이와 양배추, 잼은 필수라고 말해두고 싶다. 적어도 이 셋이 있어야 '길거리' 토스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셋만 넣고 먹어도 맛있다.) 그런 토스트의 장점을 십분 살려 좀 더 좋은 재료, 독특한 재료들을 더 추가한다면 이 음식은 '길거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풍성하고 다채로운 맛의 경험을 선사하는 '요리'가 된다. 내가 제시한 레시피로만 따져보더라도 그렇다. 케첩과 잼, 마요네즈와 치즈가 있어 달고 느끼한 맛이 메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디종 머스터드를 추가하면 신 맛이 더해지면서 맛의 풍미가 갑자기 달라진다.(그냥 머스터드도 좋지만 이왕이면 '디종 머스터드'를 추천한다.) 대개 '신맛'은 맛 중에서 선호하지 않는, 때로는 불편하게 취급받을 때가 많지만(나 또한 신맛을 불편해하는 편이다), 적당히 신맛이 섞이게 되면 맛의 레이어가 하나 더 겹쳐지면서 갑자기 입체적이고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먹다 보면 '아니, 길거리 토스트가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네 이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사과나 딸기 같은 과일류가 추가되게 되면... 이건 뭐 길거리가 아닌 레스토랑의 음식이 되고 만다.(아보카도나 할라피뇨, 에멘탈이나 고다치즈 등을 곁들인다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뭔가 특별한 재료와 소스를 준비해놔야 할 듯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요리의 장점은 그냥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간단하게 해도 충분히 맛있다는 점이다. 재료와 소스를 몇 가지 생략한다 해도 여전히 맛있으며 먹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되뇌이게 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이 요리의 가장 큰 장점은 아직 꺼내지도 못했다. 그건 이 음식의 가장 치명적인 장점인데, 바로 '마땅히 먹을 게 없어'라는 그 막연하면서도 절박한 요구를 제대로 충족해 준다는 것이다. 거의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는 나로서는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가장 큰 숙제인데 이것저것 메뉴를 돌려막다가도 결국 생각나는 것이 없을 때면 이 음식을 꺼내 들곤 한다. 매 끼니를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먹는 일이 꽤나 중요한 나에게(그것도 직접 요리를 해서) 이 음식만큼 그 절박함을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음식은 별로 없다. 마땅히 먹을 게 생각나지 않을 땐 대개 인스턴트를 떠올리게 되는데, 인스턴트 음식이란 게 맛있긴 하지만 먹고 난 후의 만족감과 포만감이 그리 기분 좋지만은 않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말이다. (떠오르는 음식이 있지 않은가? 딱 두 가지가 떠오르는데 라면과 떡볶이다.) 하지만 이 요리는 간편하면서도 요리의 과정은 즐겁고, 맛은 평범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풍성하고 다채로우며 먹고 난 후까지도 기분 좋은 포만감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아, 오늘도 한 끼 잘 먹었다!'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걸 먹길 잘했어'라는 셀프칭찬도. 마치 일본 드라마 [미스터 고로]에서 고로 아저씨가 식사 후,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외침과도 같은 만족감이다.
토스트는 간편하지만 정성은 필요한 요리다.
그러니 이 요리를 기특해 할 수밖에. 만약 당신도 '뭔가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어'라는 고민에 빠진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싶진 않아'라는 딜레마에 빠진다면, 오늘 당장 이 음식을 해보길 권한다. 아마도 만족스러운 기분에 배를 두들기며 미소 짓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집엔 항상 식빵과 양배추가 상비되어 있다.)
살아가는 일에도 이런 음식과 같은 만족감을 주는 취미나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곰곰이 떠올려 보자. 내게 그런 취미와 사람이 있나? 뭔가 심심하거나 허전할 때, 너무 낯설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매번 나를 즐거운 경험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그런 활동이나 사람. 만약 그런 활동과 그런 사람이 하나, 한 사람이라도 내 곁에 없다면 그건 생각보다 꽤나 심각한 일이라는 걸 자각할 필요가 있다.그러니까 토스트와 같은 음식이 없었다면 인스턴트나 배달음식에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거나 혹은 식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지나치거나 부족하면 삶은 균형을 잃게 마련이다. 지나치면 중독이 되어 쾌락의 강도를 외부 자극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부족함이 지속되면 무력과 공허에 시달리며 삶의 즐거움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내 삶에 토스트 같은 활동과 사람이 있는가? 떠오르는 무엇이, 누군가가 없다면 당장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무언가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나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토스트도 굽고 부치고 쌓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생각보다 간단한 과정이다. 단지 시작하기가 귀찮을 뿐.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고? 그럼 마트에 가자. 식빵과 양배추와 잼뿐만 아니라 야채와 과일, 온갖 소스가 마련되어 있다. 일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구하는 자에게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