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 중에 떡볶이와 오뎅 다음을 차지하는 자리는 아마도 호떡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지만 떡볶이나 오뎅탕은 집에서 해 먹어도 호떡을 해 먹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매 끼니와 간식을 집에서 모두 해결하는 나로서는, 어느 날 그 사실이 문득 궁금해 실천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는, '아, 호떡은 사 먹어야겠구나'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아니 그냥 반죽해서 설탕 조금 담고 기름에 지지면 되는 거 아닌가? 간을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소를 만드는데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떡볶이보다도, 오뎅보다도, 만두보다도 더 간단해 보이는 이 요리가 홈메이드로 사랑받지 못하건 왜일까? 하지만 해 보면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1. 질고 늘어지는 반죽
간단한 음식일수록 식감이 중요하다. 핏자처럼 토핑이 많이 올라가는 요리도 아니니 반죽이 가진 바삭함과 쫄깃함은 호떡의 먹는 재미를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바삭쫄깃함을 가지려면 반죽이 질고 늘어져야만 한다는게 문제다. 반죽이 질다는 건 먹는 입장에서야 안 퍽퍽해서 좋겠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곤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일단 손에 반죽이 자꾸 달라붙어서 손을 기름범벅으로 만들어야 하고(기분이 썩 좋지 않다), 반죽이 질고 늘어져서 겨우 설탕일 뿐인데도 넣고 감싸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게다가 호떡이란 설탕이 줄줄 흘러야 제맛일 텐데 그러려면 꽤 많이 넣어야 하고 질고 늘어지는 반죽은 그 설탕을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그러니 반죽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설탕과 시나몬가루를 많이 넣는 일이란 보통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TV에서 길거리의 숙련된 호떡 아줌마의 빠른 손놀림만 보고 있으면 별거 아니다 싶겠지만 길거리 장사를 하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호떡을 반죽하고 부쳐보았겠는가. 그러니 그 절묘한 밸런스가 순식간에 맞춰지는 것이겠지만 초보자에겐 이 절묘한 밸런스는 가히 재앙과도 같은 난제다.
질고 늘어지는 반족으로는 제대로 모양내기조차 쉽지 않다.
2. 누르면서 부쳐야 하는 고난이 기술
안전함을 추구하여 설탕을 조금만 넣으면 터지지야 않겠지만 맛의 질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호떡이 아니고 그냥 떡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여러번 씹어야 찔끔 나오는 설탕의 미약한 단맛은 짜증까지 불러일으키다. 그래서 무리를 해가며 설탕을 욱여넣고 어찌어찌 잘 싸놓으면 부치기도 전에 무너지거나 부치는 과정에서(특히 누르는 과정에서) 터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터져버린 설탕과 시나몬가루는 기름에 스며들며 타버리고 다른 호떡까지 쓴맛으로 도배시키며 망쳐놓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 두세 번 맞닦드리고 나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일기 마련이다.
사 먹으면 될 일이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그렇다, 웬만하면 사 먹는 걸 추천한다.)
너무 누르면 설탕이 터져나오고 너무 안누르면 두껍게 구워진다.
3. 타기 직전의 바삭함이라는 타이밍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호떡을 부쳐 먹어본 사람으로서, 호떡의 맛의 질을 좌우하는 건 안에 든 소보다 오히려 반죽의 두께와 부쳐진 정도에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가, 흑설탕에 시나몬 가루를 섞은 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로 그 맛 이상의, 이하의 것도 아니다. (견과류를 넣으면 더 맛있지만, 견과류를 넣는다고 해서반죽의 문제를 넘어설 수는 없다.)
호떡의 식감은 얇을수록, 바삭할수록 맛있어진다. 그리고 호떡이 부쳐진 정도의 미세한 차이가 맛에서는 큰 차이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반죽이 빵과 과자 사이의 식감이 났을 때 씹는 순간 벌써 이빨이 즐겁고 그 얇은 밀가루 사이로 흑설탕의 단맛이 은은하게 흘러나왔을 때 또 한 번 즐겁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질고 늘어지면서 설탕을 가득 머금은 반죽을 얇고 바삭하게 부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얇기에 욕심을 내면 반죽이 터져 설탕물이 쏟아져 나오고 바삭함에 욕심을 내면 어느새 타버리기 일수다. 사실 어떤 튀김 요리도 타기 직전의 바삭함이 제일 맛있지 않은가. 호떡은 특히나 반죽이 얇아서 타기 직전의 그 타이밍을 정말 칼같이 찾아야 한다. 그래서 온도 조절도 적당해야 한다. 불이 너무 세면 금방 타고 너무 약하면 반죽이 바삭해지지 않고 기름에 눌어버린다.
터지고 두꺼운 호떡(좌)과 얇고 바삭한 호떡(우)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호떡'이라는 별 것 아닌 음식에 이렇게 장황하게 열을 올리는 건 그만큼 이 음식에 요구되는 테크닉이 만만치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사 먹지 않고 해 먹는 걸까. 그건 아마도 성공하고 났을 때의 그 성취감과 쾌감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단지 맛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렵고 '만족스럽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실패와 숙련의 과정을 거쳐 어렵게 만들어낸 호떡의 맛은 그 어떤 맛집의 호떡과도 비교할 수 없는 눈물겨운 맛인 것이다.
이건 단지 호떡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요리든 번거롭지만 굳이 해서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혀가 느끼는 감각만으로 따진다면 그 어떤 음식이든 사서 먹는 게 더 맛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혀가 느끼는 그 맛의 감각은 삼키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마치 신기루 같다고나 할까. 호떡으로 따지자면 그 맛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몇 개의 호떡을 계속 먹어야 하겠는가. 하지만 많이 먹는다고 또 능사는 아니다. 혀의 감각이란 간사해서 똑같은 자극이 지속되면 질리게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감각에 심리적 만족감과 성취감이 더해지면 그건 단지 '혀'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단지 재료에 담긴 성분과 혀가 느끼는 감각만으로는 설명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는 '기분'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착각까지 동반하는지 혀가 느끼는 감각마저 '실제로' 더 맛있게 느껴진다. 내가 이토록 어렵게 만든 호떡처럼 말이다. (그 어떤 시장에서 먹은 호떡보다 내가 만든 호떡이 제일 맛있다. 정말로.)
왜 그럴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만족이 단지 결과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를 감각하는 순간은 금방 지나가지만 그 결과에 담겨 있는 과정의 노력은 고스란히 내 몸과 정신에 마치 훈장처럼 새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더 성장한 '나'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남이 해준 요리는 아무리 먹어도 찰나에 휘발되는 혀의 감각으로 사라질 뿐이지만 내가 만든 요리는 재료를 준비하고, 레시피를 기획하고, 손을 정교하게 놀려 썰고 다듬고 반죽하고 부치고, 간을 더하고... 그 모든 과정이 포함되고 그것은 온전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남의 것을 소비하는 일과 나의 것을 창작하는 일은 결과물이 주는 효능과 상관없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요리를 하면서 나는 나의 삶, 다른 삶을 살게 되며 행복이란 그런 과정 속에서 찾아지고 쌓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