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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an 13. 2023

쉬운 요리, 김치

김치를 담궜다. 휴무를 하얗게 불태웠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배추김치와 깍두기로 냉장고를 그득 채웠다. 힘들었지만 이렇게나 보람찰 수가! 이제 반찬 걱정 없이 또 한 해를 보낼 수가 있겠구나.


시험삼아 김치를 담가본 지 이제 3년차. 첫 해 담근 김치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다음 해에 본격적으로 김장을 했었는데 정말 인생 최고로 맛난 김치를 얻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김치 담그는 일이란게 어머니들한테만 가능한 줄 알았고, 또 그래야만 제 맛이 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김치란 그저 제철에 좋은 재료를 준비해 인터넷 혹은 유튜브에 떠도는 아무 레시피나 골라 계량하여 따라해 보면 세상에, 정말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진다. 계량이 정확할 필요도 없어 대략만 맞추면 왠만하면 맛을 내는데 성공할 수 있는 음식이 김치다. (대개 김치를 실패하는 데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동반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뭔지 몰라 두려움이 가득한 초보 때 오히려 실수할 가능성이 낮다)


김치는 '손맛'이라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략 무쳐도 충분히 맛있다.


김치의 장점은 맛 없기가 어렵다는 데만 있지 않다. 맛을 더 내기도 다. 그냥 질 좋은 젖갈의 종류를 늘려 더 넣거나 해산물 몇 가지만 더 넣어도 훨씬, 그것도 아주 훨씬 더 맛있어진다.(물론 깔끔한 맛을 좋아하면 젖갈은 더 넣지 않는게 좋다) 우리는 오일장에서 파는 생젖(액젖 말고, 생선을 갈아서 발효한)을 기본으로 하고, 갈치 속젖이나 자리돔젖 같은 제주 젖갈을 더 넣는다. 그러면 해산물을 굳이 더 넣지 않아도 감칠맛이 미친듯이 폭발한다.(아, 익었을 때의 그 감동의 맛이란!)


이것저것 재료를 대략 넣고 섞으면 된다.

김치의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요리는 간 맞추는게 제일 어려운 법인데, 김치야 말로 간 맞추기가 누워서 떡먹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소금이나 젖갈을 대충 막 넣어도 익어가면서 간이 맞아간다. 심지어 좀 싱거우면 싱거운데로 짜면 짠대로 맛있다. (배추와 젖갈만 맛있다면) 그렇다보니 인터넷에 널린 레시피들도 들어가는 재료와 간의 계량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건 거꾸로 보자면 아무 거나 골라해도 왠만하면 다 간이 맞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면 배추를 절일 때다. 사실 절이는 건 조금 쉽지 않다. 특히 올해 너무 욕심을 내서 많이 담그다 보니 절이는데 실패한 느낌이다.(절이는 과정은 이제서야 감이 좀 온다) 그래도 양념들이 부족한 간을 다 메꿔주리라 믿어본다.


배추 절이기는 조금 어려운 과정이다. 절인 배추를 사는 것도 방법이다.

어쨋든 세상에 이렇게 쉬운 요리도 또 없다.


하지만 김치는 '쉬운' 요리일 지언정 '간편'한 요리라고 할 순 없다. 왜냐하면 장을 봐와서 준비하고 다듬고 썰고 갈고 무치고 담는, 순전히 물리적 힘이 요구되는 절차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장 처럼 많은 양을 할 경우에는 정말 허리가 휠 정도니 말이다. 큰 대야나 넓은 깔개, 믹서기나 채칼 같은 도구들도 많이 필요하다. 가장 진저리나는 건 역시 어마어마한 설겆이. 하지만 그 노동의 강도에 비해서 효율은 크다. 한 번의 고생으로 한 해를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김치보다 효율적인 음식이 또 있을까. 1년에 한번 요리를 해도 된다니!


배추와 무, 각종 야채를 씻고 다듬는 일이 가장 오래 걸린다.

휴일 이틀을 바쳐 김장을 하고 났더니 삭신이 쑤시지만, 마음만은 정말이지 부자가 된 기분이다. 설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바로 먹기 시작해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맛을 볼 수도 있어 기대가 된다.


이제 남은 일은 주문을 외는 것이다. '잘 익어라~ 잘 익어라~' 힘내 김치들아!


김장을 다 끝내고 났을 때의 뿌듯함이란!
갓 담근 김치와 돼지고기 수육은 극강의 궁합, 김장 후의 피로를 풀어주는 소울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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