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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Feb 14. 2023

마음까지 뜨거워지는, 비지찌개

비지찌개는 집에서 흔히 먹지 않는 음식이지만 그렇다고 식당에서 자주 먹는 음식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날에 먹는 별미도 아닐뿐더러 고가의 재료 때문에 귀하게 여겨지는 음식도 아니다. 고급 음식도 아니면서 대중적인 음식도 아닌, 이런 특이하고 애매한 위치는 모두 '비지'라는 재료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두부를 만들고 남는 찌꺼기인 비지는 귀하고 값비싼 재료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아니다. 어찌 보면 버려지고 말면 그만인 잔여물을 활용해 만든 음식이라는 점이 아마도 '값싸지만 귀하다'는 특이한 위치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음식의 장점이 단지 그 가성비와 희소성에만 있지는 않다. 사실 이 음식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그 특유의 식지 않는 '뜨거움'에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당연하게도 '맛' 또한 결코 빠질 수 없는 장점 중 하나에 속해 있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남은 찌꺼기인 '비지' (이미지 출처: 역사문화라이브러리)


일단 '비지'는 마트에서 팔지 않는다. 콩도 팔고 두부도 팔고 청국장도 팔고 나또도 팔지만, 비지는 정작 사고 싶어도 팔지 않아 살 수 없다. 왜냐면 '찌꺼기'이기 때문이다. 찌꺼기를 누가 판매하겠는가. 또 막상 돈 내고 사야 한다면 누가 사겠는가. 가끔씩 사려는 사람들의 수요가 있다고 치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사겠는가, 예측해 본다면 그리고 두부보다는 훨씬 싸게 팔아야 한다는 단가를 생각해 본다면, 게다가 유통기한도 길지 않을 재료의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여러모로 수지가 안 맞는 장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것일 테고 우리는 사려해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지찌개는 사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인가? 물론 사 먹는 게 가장 간편한 방법일 테지만, 막상 비지찌개를 먹기 위해 찾아다녀 보면 일반 식당의 메뉴에서도 비지찌개를 발견하기란 흔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과연 비지란 흔해 보이지만 결코 흔한 음식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특이하게도 값싸지만 귀한 음식이라는 비지찌개를, 그래서 집에서 해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리법이 어려워서도 너무 비싼 재료라서도 아니다. 그러니까 재료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 하지만 가끔 생각나지 않는가, 뜨겁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콩비지의 묵직한 맛이.


가끔씩 생각나는 목을 타고 넘어가는 비지찌개의 뜨거운 맛 (이미지 출처: tvN)


그래서, 비지찌개를 집에서 해 먹기 위해 손두부 전문 식당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곤 한다. 물론 손두부의 맛을 즐기기 위함도 있지만, 손두부 전문점에 가면 대부분 카운터 앞쪽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비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을 말이다. 사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 불과하니 무료로 나눠주는 일이 어렵지도 않을 것이고 게다가 손두부 전문점이라면 두부를 좀 많이 만들겠는가. 두부를 만들고 남는 비지의 양도 상당할 것이니 버리는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나눠주는 것이 득일 것이다. 후한 인심의 인상도 남길 수 있다. 그러니 나눠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손두부 전문점에 가면 비지를 손쉽게 무료로 구할 수 있다. 음식점에서 맛나게 식사를 하고 나눠주는 비지를 1~2 봉지 들고 나오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음식을 먹은 포만감 이상으로, '아! 이제 집에 가면 비지찌개를 해 먹을 수 있다'라는 기대감으로 더 마음이 불러오는 것이다. 나눠주는 비지 1~2 봉지면 두 식구가 3~4끼는 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대개 1 봉지의 비지를 넣으면 찌개 3~4인분 이상은 된다)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에 비지를 넣어 놓고는 뭔가 해 먹을 게 없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 꺼내들 비장의 카드로 머릿속에 담아둔다.


손두부 전문점에서 얻어온 비지 덩어리들


비지찌개의 조리법은 그야말로 초간단이다. 김치찌개 위에 비지를 한 웅큼 올려 오래 끓여내면 그만이다. 김치찌개야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으면 그만이니(멸치육수를 넣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 보다 쉬울 수 있으랴. 하지만 그 맛이란 어떤 찌개에서도 맛볼 수 없는 고소 하면서도 꽉 찬 식감, 그리고 무엇보다 비지가 머금고 있는 뜨거운 화력의 온기를 함께 씹으며 들이킬 수 있다. 좀처럼 식지 않는 비지는 목줄기를 뜨겁게 쓸고 내려가 위까지 그 온기를 전해준다. 그러니까 따뜻함이 아니다. 뜨거운 맛인 것이다. 그리고 몸 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그 뜨거움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왠지 마음까지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침 먹는 시기가 겨울철이라면 더욱더 그 뜨거움은 소중하다. 같이 찌개에 숟가락을 담그는 사람이 항상 당신 옆에서 당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라면 그 뜨거움은 마음을 넘어 세상까지 덮여줄 온기가 된다. 아무 말 없이 그 뜨거운 맛을 음미하며 밥그릇을 비우고 나면 그 어떤 음식도 주지 못한, 마음까지 가득한 뜨거운 포만감에 당신은 배시시 만족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아~ 잘 먹었다!'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것이다. 고작 찌꺼기에 불과한 재료로 만든 찌개 한 그릇에 말이다. 비지찌개란 그런 음식이다. 지금도 나의 냉장고 냉동실엔 비지 2 봉지가 남아 있다. 나는 몇 끼를 또 뜨겁게 맞이할 수 있다. 마음과 세상을 뜨겁게 덥혀볼 수도 있다. 이런 게 든든하다는 느낌일 것이다. 별 것 아닌 찌꺼기만으로도 우린 이렇게나 든든해질 수 있다.


얼려놓았던 비지를 김찌치개 위에 얹으면 비지찌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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