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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대화

#74

by 빨간우산

현대인이 대화하는 화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공감의 화법
2. 지적의 화법
3. 자랑의 화법


2번과 3번의 화법은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1번 화법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건 아마도 1번을 가장한 2번, 3번 화법인 경우를 포함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2번, 3번 화법은 대놓고 하면 눈살 찌푸려지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는 걸 요즘은 다들 아는 분위기여서 자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기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2번, 3번으로 직진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지만)

그렇다보니 요즘은 대개 1번을 지향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2번, 3번의 화법에서 받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1번인듯한 말들을 먼저 몇 마디 뱉어놓고 그 이후로는 2번과 3번으로 일관하기 때문인데, 말의 시작을 공감의 포인트에 두었던 터라 2번, 3번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보면 결국 말의 의도와 취지는 2번이거나 3번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면 그건 대놓고 2번과 3번인 경우보다도 더 기분이 별로다.

어찌되었든 2번과 3번이 요즘 대화의 대부분의 화법이 되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2번은 대화를 지속하기가 힘들다. 3번 대화의 가장 큰 문제는 지루함이지만, 2번 대화는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참아넘기기가 힘들다.

대화를 하다보면 타인의 의견에 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반발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말한 사람도 그 말에 반대한 사람도 아무 것도 얻는 것은 없다. 그저 상한 기분만 속에 담아두게 될 뿐. 그리고 그게 쌓이면 언젠가 곪거나 터지기 마련이다. 곪으면 아무 말도 안하게 되는 거고, 터지면 갑자기 분노로 쏟아진다.

때문에 상대의 말에 반하는 생각이나 마음이 들 경우에는 일단, 나오려는 말을 붙잡아 다시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고 보는게 현명하다. 뱉어봐야 기분만 나쁜 그 말은 누구에게도, 심지어 본인 스스로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보다는 상대의 말과는 다른 나의 의견이 있을 때, 이왕이면 머릿 속으로 정리되었을 때 비로소 말을 뱉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조차도 이왕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이나 "아, 그렇구나 그런데 내 생각은 말이야.."와 같은 말머리를 붙이고 시작하는게 좋다. 그러니까 네 말을 부정하는 건 아니야, 라는 말로 상대의 기분을 진정시켜 놓고 그 때 내 의견을 말하면 대화는 유려하게 흘러갈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2번의 화법을 고집한다면, 그 때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전쟁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승리를 안겨주지 못하는.

2번 화법의 문제에 대해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3번이 괜찮다는 건 아니다. 3번이 지속될 경우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 말하기가 되고 대화자 간에는 벽이 형성된다. 그러니 그건 독백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그런 대화 역시 각자 자신의 발언권을 위해 싸우는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결국, 2번과 3번은 '대화'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대화는 1번의 화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 전쟁이 아닌 대화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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