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정치에 관한 보고서, [House of Cards]
아직 시즌 2도 다 보지 못했지만, 그토록 유명세가 자자한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기 시작한지 이틀도 되지 않아 손이 근질거려서 뭐라도 끄적거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다던 모두의 감상과는 달리 나로서는 첫회에 잠이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없었으며, 그래도 명불허전이라는 사자성어를 실감해보고자 이어 달린 2회, 3회에서도 좀처럼 몰입하기는 어려웠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탄성에는 미치지 못했을 뿐. 어쩌면 그런 주변의 기대치가 드라마에 대한 실망감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혹은 한 주간 시달린 격무로 뇌에 달라붙어버린 피곤함 때문에 이 드라마의 진가를 놓친 것일지도.
조금 더 총명해진 다음날, 그리고 이제는 아무런 기대치도 없이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 보겠다는 마음으로 이어 보기 시작한 드라마에서 스토리 이상의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시즌 1 중반 이후 이 드라마가 비추기 시작한 캐릭터에 대한 조명이 나를 자극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반에 내가 이 드라마에 좀처럼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유사한 다른 드라마, 영화의 존재를 들 수 있겠다. 가령 조지 클루니의 영화 [킹 메이커]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미국 드라마 [매드 맨] 등... 유사한 접근, 유사한 테마의, 그것도 높은 작품성의 드라마가 꽤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눈은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는 것. 특히나 [블랙 미러] 같은 작품을 봤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을 까발리는 [킹메이커]나, 인간의 속물적 욕망을 들춰내는 [매드 맨], 스마트폰과 SNS에 휘둘리는 인간을 고발하는 [블랙 미러]가 다루는 주제 이상의 '성찰'을 담고 있다는데 이 작품의 진가가 있다. 물론 그 세 가지 영역을 한 작품에 잘 버무리는 솜씨도 솜씨지만, 단지 문제의식을 스토리에 잘 녹여내는 작가적 솜씨 이외에 현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이 취하는 나래이션 방식 즉, 독자들을 불러내 '인간이란 다 그저 그런 존재다'라고 비아냥하며 종국에는 '구경하는 당신도 별반 다르지 않잖은가'라고 우회적으로 질문하는 케빈 스페이시의 대사는 이런 성찰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스펙터클한 스토리 전개를 지나 캐릭터와 내면에 집중하는 중반 이후의 전개를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는 정치 이야기를 외투로 한 '현대인'의 자기성찰적 고백이 핵심 주제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외로움에 갇혀 있으며, 그 공허감을 권력과 명예라는 사회적 욕망을 통해 채우려 안간힘 쓰지만, 채움은 고사하고 단지 서 있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하지만 언제 다시 쓰러질지 몰라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나약하고 불안한 존재다. 그리고 그들이 조금 과장된 상황 속에 있을 뿐, 모든 현대인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해있다.
재미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하우스 오브 카드 위에 자기 자신을 올려 놓은 건 그들 자신이라는 것.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기 위한 권력, 명예에 대한 욕망. 그것이 그들을 그토록 위태롭게 만드는 핵심 동인이다. 그리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각자는 스스로 고립되어 가고 관계는 망가지고 인정과 존경은 거짓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인정과 존경은 '거래'와 '교환'이라는 방식으로 얻어지는 전리품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전리품을 보고 진정한 인정과 존경을 보낼 사람은 없다. 그건 그냥 마스터베이션과 같은 것이다. 돈 주고 산 포르노 잡지를 통해 작위적으로 얻어낸 사정의 쾌감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쾌감 후에는 언제나 거대한 공허가 밀려오기 마련이다.
현대인의 자화상을 다룬 모든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꼽는 문제의식은 대개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인간관계마저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 전락한다는 것. 즉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감정, 이를테면 인정, 위로, 안정, 심지어 사랑까지 모두 내가 획득할 수 있는 교환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관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감정까지도 해소해야 할 욕망이고, 욕망의 해소는 교환을 통해 이루려 하고,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는 협상이 된다. 즉 관계는 인간과 인간이 함께 나누는 따뜻함이 아닌,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서 감정을 교환하려는 게임이 된다.
정말이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이건 단지 그저 '슬픈' 일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개인의 정체성이란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완성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관계의 교환가치화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정체성의 괴멸을 초래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점점 더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관계를 통해 해소해야 하는 감정의 순환이 상실됨으로써, 타인이 주어야 할 감정을 스스로 만들려다가 실패하는 그래서 끊임없이 공허감에 시달리고 그것을 감추어야 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만다. 안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공허감을 감내하면서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거짓 웃음을 지으며 시시각각 지속적으로 교환을 위한 셈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흡사 이것은 언제 방전될 지 모르고 본인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북을 처야 하는 토끼 인형과 같지 않은가.
내가 보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치 이야기가 아닌 인간, 현대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로는 그 내면으로 들어가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저 바깥에서 구경하기도 하면서 자기 욕망에 스스로 고립되어 갇혀 있는 모습을 아주 건조하지만 잔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보여주는 방식 자체를 통해 현대인의 자기성찰을 종용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21세기에 어울리는 리얼리즘을 완성한 놀라운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동시에 인간이, 인류가, 사회가 어디로 갈 지 매우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희망을 말하기에, 인간은 개인의 욕망에 너무도 충실하고, 자각할 동기는 너무도 부족하고, 시스템은 인간이 스스로 욕망의 노예가 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희망이 있는가라고 울부짖는 이런 드라마가 있기에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를 들여다볼 계기를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