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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Mar 05. 2016

완벽한 영화, 숨막히는 엔딩

두 여자의 러브 스토리, [Carol]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났다. 이런 큰 상이야 어떤 결과가 나와도 말 많고 탈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최고의 뉴스는 드디어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쾌거와 더 놀랍게도 엔니오 모리꼬네가 이제서야 영화음악상을 탔다는 것(공로상이 아니다), 그리고 감독상은 또 이냐리투가 받았다는 것.


남우주연상의 디카프리오(좌), 영화음악상의 엔니오 모리꼬네(중), 감독상의 이냐리투(우)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건, '웬만하면 돌려가면서 좀 주지.. 다들 고생했을 텐데' 같은 그야말로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사실 결과물의 퀄리티를 판단하고 주는 게 맞는 이겠지만, 이 또한 주관적인 평가이고 절대적인 기준 없는지라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 같아선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가 너무 많아서 웬만하면 수준 이상의 경탄을 자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좀 더 고생한 작품, 혹은 그 동안 대우를 미처 못해준 사람에게 상이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가 그랬고, [매드맥스]의 조지 밀러 감독이 그랬으며(매드 맥스는 음향상, 의상상 등 온갖 상을 휩쓸고도 정작 감독상은 받질 못했다. 안타까운 조지 밀러 ㅜㅠ), 놀랍게도 한번도 음악상을 수상하지 못한 엔니오 모리꼬네가 그랬다.


무려 일흔살에 무지막지한 액션영화를 만드신 조지 밀러 감독


개인적으로 여기에 안타까운 뉴스를 하나 더 보태자면, 영화 [캐롤]의 작품상 후보 누락이다. '아니 이 작품이 왜 작품상 후보에조차 못 오른 것인가'. 캐롤을 봤을 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오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대체 다른 작품들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하지만 이내 짐작되는 지점이 있기도 했다. 이 영화의 소재는 1950년대 레즈비언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로서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카데미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듯. 그렇다 해도 또 한편으론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대니시 걸]은 왜? 무려 최초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설마 남자라서? 동성애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수용된다는 말인가? 하긴 남자의 동성애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등장해서 이제는 그다지 생소하지도 않다.([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은 벌써 10년 전 78회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동성애 관련 영화들, 캐롤(좌), 대니시 걸(중), 브로크백 마운틴(우)


뭐, 이유가 어쨋든 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 영화의 특별한 점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뛰어난 완성도다.

1950년대의 여성 동성애라는 낯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몰입시켜 결국엔 인물에 동화되도록 만드는 그 솜씨가 실로 대단했다. 그래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둘의 위태로운 관계를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 졸이며 지켜봤던지. 이 영화가 이토록 몰입도가 높은 건 비단 감독의 재능만은 아닐 것이다.(물론 총지휘를 맡는 감독의 역할이 가장 크겠지만. 게다가 토드 헤인즈가 아닌가)195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한 장소, 패션, 각종 오브제들의 완벽한 재현, 심지어 분위기까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두 배우의 연기력 - 케이트 블란쳇의 우아한 카리스마, 루니 마라의 수줍은 듯 도발적인 캐릭터, 그리고 감정선을 안내하는 음악까지. 영화의 완성도라는 개념은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달려가는, 그래서 그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구현해 내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그 완성도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할  만하다.


1950년대를 완벽히 재현해 낸 영화의 디테일들


그리고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두번째는 바로 마지막 엔딩 컷의 폭발력다.

개인적으로 영화사에 남을 만한 엔딩 컷의 리스트가  마음속에 있는데, 그 리스트의 상위에 올려놓기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 마음속 엔딩 컷의 리스트는 이렇다.


1위. 조지 로이 힐,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이 장면은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2위. 이와이 슌지, [4월 이야기]

아, 이 보다 더 순수한 장면이 또 있겠는가. 이 영화야말로 영화 전체가 오직 이 한장면을 위해 달려온 듯 하다.


3위. 진가신, [첨밀밀]

등려군의 노래,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두 남녀의 재회를 만날 수 있다. 그 천진난만한 표정이란


아마도, 캐롤의 마지막 장면은 이들 영화의 여운에 뒤지지 않을 감동과 설레임을 선사한다. 특히 케이트 블란챗(캐롤 역)의 그 표정, 그 눈빛.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격한 감정을 애써 참으며 잔잔한 미소로 절제하던.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은, 단지 그 미소 하나만으로도 모든 회한과 기쁨이 설명될 수 있는. 그리고 눈 앞의 불꽃으로 돌진하는 루니 마라(테레즈 역)의 표정. 의혹과 두려움이 사라진, 사랑을 향해 자신을 던지겠다는 그 결연함.


영화를 봐야만 이 장면의 폭발력을 느낄 수 있다.




아! 영화란 이래서 아름다운 예술이란 걸 단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이 놀라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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