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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un 07. 2023

요리는 밸런스

봉골레 파스타를 많이도 해봤지만 며칠 전 최고의 맛을 찍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재료도 과정도 별달리 특별할 게 없었다는 점이다. 비결은 바로 밸런스. 그렇다. 결국 요리의 비결은 밸런스에 있다. 하나를 더 꼽으라면 배고픔(허기). 허기는 요리의 비결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만.


아무튼, 바지락도 조금 철이 지나 특별히 품질이 좋거나 신선한 것도 아니고 마늘은 그냥 마늘이고 오일도 올리브 오일이 아닌 일반 식용유에, 케이퍼 약간과 베트남 고추, 최저가 화이트 와인과 오래된 그뤼에 치즈 정도가 재료의 전부다. 아, 후추와 소금, 면수 조금.


그런데 요리를 하다 보면, 재료를 다듬고 물을 끓이고 프라이팬을 데워 재료들을 투입하고 볶고 양념을 하는 과정들이 딱 들어맞는 톱니바퀴의 물림처럼 그 타이밍이 착착 맞아 돌아갈 때가 있다. 나는 요리를 즉흥적으로 하는 편이라 세심한 계획이나 시간 따위는 잘 가늠하지 않고 무작정 시작하는데 그래서 대게는 허둥지둥하며 요리를 망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모든 단계와 과정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 게 요리하는 흥이 날 정도였다. 물론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과정은 동일 요리에 대한 반복된 숙련 과정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요리할 때의 컨디션도 꽤 중요하다. 왠지 기분 나쁜 일이 있었거나 요리하기 귀찮을 때 억지로 하게 되면 컨디션도 안 좋을뿐더러 요리할 때 흥도 나지 않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요리 과정의 흥은 음식의 맛에 그대로 반영되곤 한다.


오랜만에 해 먹는 조개 요리여서 그런지(와인을 곁들이는 것도 얼마만인지), 기대가 컸던 데다가 신경 쓰였던 여러 가지 일거리들을 끝낸 후여서 기분도 가벼운 상태였던 터라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나 욕심도 없어(대개 손님 초대 요리의 경우에는 그런 욕심과 부담이 앞선다), 그저 손 가는 대로 요리를 툭툭 해나갔더니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 재료가 특별할 것이 없어 그냥 평범한 맛을 예상했었기 때문에, 한 입 먹고 나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왜 이렇게 맛있지?' 요리가 맛나니 와인은 절로 들어간다. 게다가 날씨는 화창하고 쾌적해 몸은 가볍고 기분은 올라간다. 오랜만에 마시는 차가운 화이트 와인이 그런 기분을 더 북돋는다. 역시 뭐든 적절한 게 최고야. 적절한 재료의 궁합과 적절한 양, 적절한 간과 적절한 타이밍...


인생 최고의 봉골레 파스타


한 그릇을 금방 해치우고 난 뒤에(맛있는 요리는 왜 그렇게 빨리 없어지는가), 남아있는 기분 좋음을 더 이어가려고 치즈를 꺼내 들었다.(와인에는 치즈지) 하지만 역시 과욕은 금물. 욕심은 욕심을 부르는 법. 치즈에 꿀과 견과류, 육포와 쿠키, 그리고 과음까지... 적당한 기분 좋음을 더부룩함과 숙취로 덮고 말았다.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쾌락이란 절제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실감할 때가 많다. 하지만 매번 실감하면서도 매번 절제하지 못하는 이 아둔함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길 그치지 못하는 인간의 아둔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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