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쏟아내지 않으면, 쌓였던 말들은 뒤틀리고 부패하여 비뚤어진 분노나 찌그러진 짜증으로,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배출되곤 한다. 사실 이때 배출되는 건 쌓였던 '말'이라기보다는 '감정'일 텐데, 그렇게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말'인 것이다. 물론 '운동'이 될 수도, '노래'가 될 수도, 때론 '명상'이나 '침묵'의 고차원적 형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주 간편하게 지금 즉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말을 들어주는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고, 내 말의 상대가 대개는 무한신뢰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세상에 그런 무한신뢰가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있기는 할까.) 왜 그런 떠도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 밖으로 나온 말에 비밀이란 없다는. 그리고 말을 쏟아낼 때의 우린 이상하게도 혼자 간직하면 좋을 그런 내용들, 애초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비밀들을 뱉어내게 되는 것이다.(그중 가장 흔한 실수의 말은 역시 누군가의 뒷담화나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신세한탄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말을 할 때,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할지 이야기 전체의 구성을 먼저 가늠해 보고 순차적으로 풀어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개는 말을 뱉어 놓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말에 빠져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흔히 '무아지경'이라고 말하는,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말이 말을 하고 있는 경지랄까. 우수수 말을 쏟아내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드는. 그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가 관찰하고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건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고르고 선택해서 한 말이 아닌, 말이 말을 낳으며 스스로 이어지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흔히 '무아지경'이라 하면 긍정적인 의미에서, 특히 예술행위의 순간몰입에 쓰이는 말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수다의 무아지경은 그다지 긍정적인 측면이란 별로 없고 뒷감당이 필요한 부정적인 측면만 잔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말들부터, 은연중에 상대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우월감의 표현이나 혹시라도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비방 같은 것들, 나아가 비즈니스나 인간관계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실수까지... 말을 정신없이 늘어놓고 나니 누군가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누군가의 미담으로 훈훈해졌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쌓인 말을 쏟아내고 난 뒤에는 결국 후회에 이르고 마는데, 그럴 경우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쪽으로 대화를 해야지'와 같은 허무맹랑한 다짐을 하며 넘겨보지만, 역시나 그런 막연한 다짐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는가? 내가 이 글에서 꼭 무슨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하는 의무는 없기에 그저 그렇게 신세한탄으로 글을 마무리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끝까지 읽어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나름의 해결책을 세 가지 제시해보려 한다.
첫째, 침묵과 청취를 연습해 보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선택하려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궁극적으로는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편이라 선뜻 권유하기가 어렵다. 우선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습관을 바꾸는 일만큼 세상에 힘든 일은 없다), 단지 말을 참는 게 아니라 인격을 수양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을 참는 쪽으로 선택하는 침묵과 청취는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때 홍수처럼 쏟아지는 말들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그야말로 온전히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들으려면 내 인격의 그릇이 커져야 할 수밖에 없고, 그건 정말 평생이 걸리는 일이자 끝이 없는 인생의 숙제 아니던가.
둘째,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자면 말하는 나와 말하는 나를 지켜보는 나를 최대한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만 조금 발휘해 주면 된다. 그렇게 나를 내가 통제하고 있다 보면 뭔가 부정적이고 이상한 말을 하려는 나를 내가 감지할 수 있게 되고, 그 순간 말의 화제를 돌리거나 일단 멈추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감정의 고조를 막는 일이다. 감정의 고조는 부정적인 경우 특히 누군가를 욕하거나 험담을 하는 경우에 많이 발생하는데, 화가 치밀어 오를 땐 그 화에 내가 잡아먹히면서 내가 나를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럴 땐 즉시 멈추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는 게 좋다. 흠, 말을 하고나서 보니 이 역시 쉬운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역시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셋째, 정말로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면 대화하는 상대를 잘 고르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를테면 가족이나 연인)에게만 말을 쏟아내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말을 최대한 아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말이 쌓이지 않을 수 있고 그럴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유를 가지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비슷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말 상대가 속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 사람들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회사 욕을 하고 싶으면 친구한테 늘어놓는 식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회사사람들과는 회사 욕을 해야 재미있고, 친구들과는 같이 아는 누군가의 욕을 해야 재미있으며, 가족들과는 가족관계나 가족의 일에 대해 얘기하게 되므로 역시 실천하기 쉽지 않다. 서로 공통된 화제나 주제가 이야기하기 편하고, 또 그렇게 공감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수다도 더 재미있기 때문이리라.
이쯤 되면 해결책을 왜 제시했는지 허망한 느낌이 들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결국은, 말을 줄이고 인격을 수양하는 게 그나마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운동이나 예술활동 등의 다른 건강한 방법으로 쌓인 말을 해소해 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 한 가지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방법인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또한 어제 했던 말실수 때문에 신경이 쓰여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이렇게 길게 주저리주저리 쓰고 났더니 꽤나 후련하고 시원한 것이다. 게다가 글은 말과 달리 선별하고 수정할 수 있으므로 실수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 그렇구나! 글로 말을 쏟아내는 방법이 있었구나! 오호~ 이런 뜻밖의 유레카라니!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