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인류가 탄생하고 문명을 이루어오면서 여러 가지 매체들이 발달했지만, 단일 매체의 하루 사용 시간 점유율을 본다면 아마도 핸드폰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지 않을까. 이런 통계치는 있지도 않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시대마다 보통 사람의 생활 습관을 유추해 본다면 대략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라디오와 TV, PC는 본격적인 대중매체로서의 파급력은 엄청났었고 그 영향력 또한 어마어마했겠지만, 들고 다닐 수 없는 고정된 기기를 이용해야 했으므로 하루 사용 시간은 어쩔 수 없는 물리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과거에는 대개 저녁과 밤 시간을 이용해 대중 매체를 집중적으로 이용해야 했다. (예전에 밤 9시 뉴스나 이어서 방영하는 미니 시리즈의 엄청난 시청률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집중력은 있었겠지만 사용량에서는 모바일 매체를 따라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매체 이전의 시대, 문자를 담은 매체로 '책'이 있을 것이다. 책 또한 개인 지참과 이동이 자유로웠고 또한 다른 매체가 개발되기 전이었으므로 간섭효과도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손안에 계속 쥐고 다녔을까? 게다가 책은 이미지나 영상보다는 적극적인 해독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문자 중심의 매체다 보니, 아마도 쉽게 쉽게 열어 짧게 짧게 읽어보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 펼쳐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굳이 휴대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라디오나 TV처럼 일과가 끝난 이후 저녁이나 밤에 혼자 있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여 촛불을 켜 놓고 읽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을 보는 그림'이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촛불을 켜 놓고 혼자 조용히 읽는 모습 아니던가.(대낮에 거리에서 혹은 정자에 앉아, 혹은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와중에 책을 읽는 장면을 담은 그림은 본 적도 없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마도 굳이 통계치가 남아 있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이 가장 높은 단일 매체는 단연 핸드폰(스마트폰)일 거라는 확신은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쓰고 있을까? 이런 수치야 통계청에 접속하거나 인터넷 검색의 수고를 조금 들이면 금방 알 수 있는 수치겠지만, 사실 그 숫자를 알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일 거라는 정도는 누구나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하지만 사용 시간이 몇 시간인가 하는 그 길이의 양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바로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는 질의 문제다.
이쯤 되면 모두들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뉴스를 통해, 또는 어느 전문가의 말을 통해, 혹은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에 떠돌아다니는 짤들을 통해 핸드폰(스마트폰)의 해악성은 익히 듣고 보아왔다. 가령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가 되지 않아 사고 능력이 떨어진다는 둥, 문해력과 해석력이 떨어진다는 둥, 집중력과 집중이 유지되는 인내력의 힘이 약해진다는 둥... 그 또한 여기서 굳이 그 문제들을 조목조목 따져볼 건 아니다. 굳이 그런 뉴스와 전문가 조언, 소문들이 아니더라도 내 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사용시간만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앱에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에 스스로조차 의아해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모두가 아는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손 안의 작은 거울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또한 학술적으로 여러 가지 진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짐작해 보자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니까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굳이 머리를 쓰는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굳이 골똘히 생각해 보지 않아도, 굳이 무엇을 봐야겠다고 고민하고 선택하지 않아도, 그냥 보면 알아서 뭔가 새롭고 재미난 것을 바로바로 신속히 올려주기 때문이다. 그 유혹적이면서도 중독적인 수동성. 육체를 쓰는 일에도, 정신을 쓰는 일에도 어떠한 불편이나 어려움도 없이 완벽하게 수동적인 자세와 상태로 있어도 알아서 나에게 뭔가 재미있는 것, Something Fun한 것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류의 문명과 기술이 발달과 진보를 계속한 끝에 다다른 신기의 마법 거울이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궁극의 마법으로 인해 우리는 치명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자기 통제력'이다.
핸드폰 사용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이제 습관적으로 쳐다보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는 권유는 모두에게 무리 없이 당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점점 사용량과 의존적 감각이 늘어만 가는 이유와 원인 또한 바로 그 핸드폰에 있다. 핸드폰은 사용할수록 나의 자기 통제력을 앗아가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매체이며, 그 괴력의 힘과 함께 예전의 대중매체처럼 물리적으로 나와 매체를 분리시켜 주는 시공간의 한계마저도 초월한 전능함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손만 뻗으면 도박판에 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그래서 인터넷 도박이 그렇게나 성행하는 것이겠지.) 그런 상황인데 그렇게 쉽게 참아지겠는가?
이쯤 되면, 뉴스나 전문가 조언을 보고 '아 그래 맞아, 핸드폰 좀 그만 봐야되. 낼부터는 좀 줄여야지.' 하는 산뜻한 결심으로는 이미 잃어버린 나의 자기 통제력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은 엄연한 '중독'의 현상이며, 담배나 술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 증상 못지않은 금단의 고통을 통과해야만 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더 무서운 사실은 담배나 술, 도박 같은 중독보다도 더 끊기가 어렵다는 점인데, 그러니까 애초에 핸드폰은 '끊을 수가 없는' 사회 구조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단지 재미가 덜해지거나 더 심심해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지는 상황에 까지 이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줄여 나가는 방법이 있을 텐데 중독이란 건 애초에 끊는 것보다 줄이는 게 더 어려운 일인 것이다. 끽연가가 담배를 하루 1갑에서 하루 1~2개피로 줄인다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하루 1병에서 1잔으로 줄인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도 그게 더 어렵지 않을까. 알코올 중독자가 1잔을 원샷하고 참는다? 눈앞에 소주 1병이 버젓이 찰랑거리며 남아 있는데 말이다. 도박중독자가 딱 1판만 하고 무조건 도박장을 떠난다? 가능하겠는가?
뭔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쓰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어쩔 수 없이 심각해졌다. 그만큼 주제 자체가 심각하다는 얘기겠지. 어쨌든 결론은 이렇다. 그래도 줄여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정말로 인간은 '바보'가 되고 말 것이다. 사고력과 상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준 동물이 될 것이다. 먹고 마시는 본능만이 앙상하게 남을 것이다. 그런 인간의 모습이, 인류가 위대한 문명의 발전과 진보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고 생각하면 참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줄여나가야 하는가. 이 질문은 참으로 막연하고 비겁하다. 왜냐하면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성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도박 중독자에게 도박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그가 무슨 대단한 노하우를 대답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전문가의 조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건 마치 이런 질문과도 같다. '그러니까 왜 줄이지 못하는 건가?' 그것은 무력한 질문이다. 중독된 사람에게 '왜 중독된 거야?'라고 물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어떻게 줄여갈 거야?'라는 질문 또한 무력하다. 그냥 참고 줄여야 하는 것이다. 방법은 바로 그것, 그러니까 그냥 참는 것이다. 참고 다른 것을 하는 것이다. 나이키가 말했듯 'just do it' 하는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말했듯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통제력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여 잃은 자기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건 마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난제 중의 난제다. 핸드폰 중독의 극복이라는 것은.
중요한 건, 이것이 심각한 문제이며 난제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줄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다시 인간의 모습을 회복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미래는 열려 있다. 어느 미래가 더 쉽고 가까워 보이는지는 뻔히 눈에 보인다. 하지만 되돌릴 힘 또한 인간에게는 잠재되어 있다. 선택은 나의, 당신의,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