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읽는데 한 대 맞은 것 같이 뒤통수가 아려온다. 뭐랄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랄까. 요즘 말로 하면 '현타' 정도가 되려나. 그러니까 아주 쎄게 맞은 현타에 뒤통수가 아려오는 것이다.
실제로 방 청소도 며칠만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먼지가 뽀얗게 쌓이지만 굳이 그 쌓인 먼지를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써 방 청소를 계속 연기해보는 건 누구에게나 흔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들을 보게되고 저 먼지들이 내 입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구나 싶은 자각이 들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고싶지 않던 그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굳이 보게 됬을 때의 심정이랄까. 저 문장을 맞닦드린 건. 하지만 방 안에 쌓인 먼지뿐이랴. 맛난 걸 먹고 나면 치우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자고 나면 이불도 개야 하며, 입은 옷은 빨아야 다시 입을 수 있다. 그뿐인가. 살려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선 노동을 해야 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습득해야 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또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성실하게 먼지를 털어내고 겉모습을 윤택하게 유지해도 결국 내 육체는 먼지가 쌓이듯 노화되어 가다가 더 이상 먼지를 닦아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약하면 죽어서 스스로 먼지가 된다. 한평생을 먼지를 닦아내기 위해 그렇게도 끊임없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은 도착한 종착역이 먼지라니.
허무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게 진실이기도 하다. 삶이란 정말로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와 싸우는 일이다. 그 싸움을 멈추면 쌓이는 먼지를 막을 수 없어 부패와 파멸을 면할 수 없고, 죽기도 전에 스스로 먼지 같은 인간이 되는 걸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먼지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먼지를 닦아내어도 먼지가 되는 걸 끝내 막을 수는 없다.
너무 가혹한 진실인가. 그렇다면 그 진실을 다르게도 볼 수도 있다. 진실이란 본래 한 면만을 보여주지 않기 마련이니까. 같은 사실도 다르게 보면 다른 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먼지가 되는 결론이 아닌, 먼지를 닦아내는 그 행위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먼지를 닦는 행위, 그 행위 자체의 의미, 그런 행위의 가치, 먼지가 닦아지는 과정의 아름다움. 그런 것들에 주목해 보는 것이다.
어느 물리학 책에선가 생명을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활동'으로 정의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애석하게도 정확한 정의는 기억나지 않는다) 물질의 에너지 분산을 의미하는 엔트로피는 에너지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흘러가는 현상인데, 생명 활동은 에너지를 육체라는 물질 안에 고도로 집중해서 가둬 놓고 있는 상태이므로 엔트로피의 증가를 막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이 생명을 잃어 부패하여 흩어지는 건 그런 에너지 집중이 중단되어 분산되는 자연스러운 엔트로피 증가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살아서 활동하는 일이란 게 에너지를 끊임없이 집중하여 유지하는 일이고 그렇게 생명이 계속되는 일이란 것 자체가 부패와 혼돈을 막는, 어떤 아름다운 균형의 상태를 유지해 내는 일이라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먼지로 흩어질 수 있는 우리의 생명과 삶을 어떤 하나의 균형의 상태, 그 균형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넘치는 바닷물을 막아내고 있는 방파제처럼, 중력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건물들처럼, 성장과 결실을 맺기 위해 피는 꽃처럼 말이다.
우리는 복잡하고 뒤숭숭하게 얽혀있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런 현실은 꼬여있는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어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한다. 골치가 너무 아픈 나머지 그냥 내버려 두면 그렇게 꼬여가는 실타래는 여지없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곤 한다. 때문에 마냥 놓아둘 수 없다. 방청소를 포기하고 먼지를 마셔대며 살 수는 없듯, 힘겹고 머리 아프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풀린 실 한 올 한 올로 뜨개나 자수를 하듯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빚어가다 보면 근사한 작품 하나를 완성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얽힌 실타래를 풀어 어떤 작품의 상태로 만들어가는 일이란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인가. 쌓여가는 먼지를 닦아 윤택하고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이란 얼마나 빛나는 일인가. 부패와 혼돈의 엔트로피에 맞서 자신만의 에너지가 농축된 상태로 만들고 세워가는 일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무너지고 흩어져간다 해도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그 과정의 시간들만은 얼마나 위대하고 숭고한가.
그러니 매일매일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먼지를 닦아내는 일을 너무 하찮게, 허무하게 여기지는 말자. 살아있는 일이 그 자체로 놀라운 신비로움이듯, 우리의 매일매일의 고된 노동은 그렇게 쌓이고 흩어지는 혼돈에 맞서 우리를 균형 있고 아름답게 유지해 내는 가치 있는 일이므로. 살아간다는 건, 매일의 일상이라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그 자체로 위대한 일이란 걸 잊지 말자.
라고 스스로를 위무해도 매일매일 지나가는 일상의 덧없음의 기분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는, 청소를 하자. 먼지를 닦아내자. 무언가를 만들어내 보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글쓰기 행위도 그런 것이니. 흩어지는 언어의 엔트로피를 붙잡아 생각의 에너지를 고여내는 일인 것이다. 정신의 먼지를 닦아 생각의 아름다운 균형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