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후로 스스로 선택해 본 적이 없는 정해진 길을 열심히, 성실히 걸어온 끝에 만난 풍경은 참담했다. 더 이상 길은 없었고, 사람들은 바글대지만 누구라도 의지할 수는 없는 황량하고 외로운 곳, 가끔씩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쫓아 사력을 다해보지만 손에 쥐어보면 모래처럼 모두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뭐랄까 전쟁터 같은 사막이라고나 할까. 바짝 정신 차리고 주변을 살피며 경계하면서 나를 지켜야 하지만 보이는 거라곤 그저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의 풍경 같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래서 어느 날 모든 걸 접고 사람들이 없는 산과 바다를 찾아다녔다. 대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지만(용기를 냈다기보다는 지쳐서 떠밀렸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삶은 새로운 형태로 다시 시작되었다.
제주에 내려오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처음에는 나 역시 부푼 꿈을 안고 판타지 같은 삶을 꿈꿨고 처음 몇 년 간은 그런 꿈같은 자유와 여유를 누리며 살았지만, 제주에 내려오는 모든 사람이 겪듯 나 역시 반복되는 일상과 장사라는 어려운 숙제를 해내는 버거움에 지쳐가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장사인 데다가 처음 치고는 나름 잘해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절감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통과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재미 삼아 보던 장사 예능 프로그램도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게 되고,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예능이 아닌 다큐 혹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다가온다.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이란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고 유행의 속도는 빛보다 빠른 듯 느껴지며 그런 유행을 쫓아가기도 힘들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일은 더욱 쉽지 않았다. 유행에 흔들리면 정체성이 무너질까 걱정이고 정체성을 고수하면 유행에 뒤처질까 무서웠다. 서비스와 마케팅은 여전히 어렵고 언제 투자를 해야 하고 언제 기다려야 할지 타이밍을 재는 일은 마치 주사위를 던지는 무모한 도박처럼 느껴졌다. 기본의 양과 질은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손님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고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간다. 원인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끊임없이 보완해 가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을 쉼 없이 진행해야만 그나마 겉에서 보기엔 '뭐가 좀 달라졌나?' 싶은 정도에 그칠 뿐이다.(그것 조차 반가운 반응이다.) 그런 유행과 취향의 변화, 소비자의 변덕과 호기심, 이런 것들을 간파하고 쫓아가는 일은 힘겨웠지만 그래도 그건 나은 사정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내가 어찌해볼 도리도 없는 거시 경제의 흐름이다. 이를테면 저성장에 따른 경기침체라든가, 코로나 같은 국가적 재난이라든가, 여행객의 감소라든가. 그런 건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환경 변수라는 것은 무력감과 함께 묘한 위로도 주는데,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뭔가 해서 바꿔야 한다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므로 상황은 심각해도 마음은 가볍다고 해야 할까. 글쎄, 장사가 되지 않으니 '마음이 가볍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당장의 생계가 문제이므로 도대체 가벼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내 잘못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묘한 안도감이랄까. 적어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여유랄까.(이 마저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후에야만 얻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위안의 감정일 뿐이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것이 서울이든 제주든 몰디브든 뉴욕이든, 회사를 다니든 장사를 하든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장사를 하면서 얻은 지혜는 '겸손'과 '감사'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앎과 겸손의 태도가 무력감이나 패배감과는 다르다. 오히려 반대일 지도. 무력감이나 패배감이란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해내거나 얻지 못했을 때 드는 감정일 텐데,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내 마음대로만 될 수는 없으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는 오히려 무력감과 패배감에서 나를 구원해 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것을 꼭 가지려는 그 욕심의 마음을 내려놓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가 만들어가는 그 과정에 몰입하는, 그리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그런 겸허함의 태도. 그런 태도를 가지고 내 것을 해나갈 때, 어떤 좋은 결과를 만나거나 작은 무언가라도 얻게 되는 경험을 하면 성취감과 함께 찾아오는 감정이 '감사함'이다. 그러니까 내가 다 잘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데서 오는 감사함이랄까.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상황이, 사람들이, 하늘이 나서서 도와준다는 사실이다. 흠, 사실 이런 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그래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뿐. 그렇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잘 될 때라도 크게 기뻐하거나 자만하지도 않게 된다. 그냥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 이런 마음이랄까.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음을 진정한 '자신감'이라고 부른다. 겸손과 감사의 마음 끝에 다다른, 막연하고 근거 없지만 그래서 더 충만한 '자신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보면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장사를 하기 전엔 이 말이 허황되고 무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역시 확실히 보증할 수는 없지만, 살아보니 그렇다는 걸 알게 된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