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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의 맛

20230716

by 빨간우산

제주 시골에 내려와 살다 보니 외식을 잘하지 않게 된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텐데 관광지 물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골에 살다 보면 굳이 차를 타고 나가서 외식을 하는 일이란 게 꽤나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차 타고 30분 넘어가는 거리만 해도 큰맘 먹고 나서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차 타고 15분이면 가는 마트도 웬만해서는 가지 않는 마당에 얼마나 맛있는 걸 먹겠다고 굳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혹시 줄이라도 서 있거나 쉬는 날이라면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제주의 식당들은 자주 임의로 쉬는 데다가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 곳도 많다.)


그러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로 집밥을 먹게 되는데, 사람은 왜 또 그렇게 자주 먹게 되어 있는지 하루에 두 번 하는 식사(아점과 저녁 두 끼만 식사를 한다)를 차리는 일이란 또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부터 재료 다듬 조리하는 과정, 심지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접시를 펼치는 일까지도 참 번거롭고 번거롭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번거로움인 설거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마도 외식을 하는 이유는 비단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건 정말 축복과도 같은 편함이 아닌가.


하지만 집밥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집밥을 해 먹다 보면 알게 되는 장점 중 단연 최고는 역시 건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그 이상의 장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맛'이다. 확실히 집밥이 식당밥보다는 맛이 덜한 사실이다. 그건 오랫동안 훈련된 전문 셰프가 맛을 낸 음식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식당에서는 여러 가지 조미료나 설탕, 각종 향신료들을 많이 쓰게 되므로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들 말하는 단짠단짠의 자극성에서도 식당의 맛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다. 집에서도 식당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면 그런 맛을 내는 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고난이의 고급 요리가 아니고서는) 게다가 요즘 유튜브가 얼마나 잘 되 있는가. 레시피부터 요리의 전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하지만 요리를 하다 보면 그런 각종 조미료와 설탕, 소스류들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손으로 직접 넣어보게므로다 보면 아무래도 조금씩 덜 넣게 다.(그래도 역시 조금은 넣는 게 좋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은 덜 자극적으로 먹다 보면 입맛의 감각이 어느 정도 덜 자극적으로 맞춰지게 되고 그렇게 길들여지면 어느 날 식당밥이나 배달음식을 먹는 순간 '헉' 하는 신음이 절로 나는 것이다. 때로는 먹기가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맛이 없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극적으로 맛있어서 그렇다고나 할까. 그리고 속도 편쳐 않은 경우가 많다. 뭔가 배 속에 이물감이 있는 듯한 불편한 감각이 꽤 길게 이어진다.


아마도 집밥의 맛이란 건, 그런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하는 레시피가 특별한 비법이 있을 리도 없을 테고(음식 장인의 집안이 아니고서야), 특별한 재료를 쓰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집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재료란 한 번 먹고 버리는 음식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렇게 집밥에 길들여지다 보면 귀찮아서 뿐 아니라, 입맛 때문에라도 집밥을 고집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집밥의 최대 단점인 요리를 직접 해야 하는 고단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매번 나를 괴롭힌다. 그런 괴로움은 요리와 설거지할 때뿐만이 아니다. 제일 골치 아픈 일은 바로 그 괴로운 질문, '내일 뭐 먹지?' 그것이다.


식당이 아니니 냉장고의 재료는 한정돼 있고, 그 한정된 재료란 뻔하디 뻔한 그런 것들이다. 양파, 마늘, 대파, 계란, 김치, 냉동 돼지고기와 소고기 , 고추장, 된장 등등... 김치찌개, 된장찌개 해 먹고 김치볶음밥, 계란볶음밥, 카레, 제육볶음... 정도를 매번 돌려 막다가, '아, 정말 내일은 좀 색다른 걸 먹고 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함에 이르면 그때서야 비로소 몸을 움직여 마트에 가서 뭔가 다른 재료를 사서 이것저것 해보지만, 그렇게 해서 먹은 봉골레 파스타니, 칼국수니, 마파두부밥이니, 부추전이니, 부대찌개니... 등등도 하다 보면 결국 그놈이 그놈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집에서 해 먹는 색다른 요리란 게 얼마나 있겠는가. 가령 짜장면과 탕수육, 햄버거와 감자튀김, 돈까스와 치킨, 얼큰한 돼지 국밥과 시원한 콩국수... 이런 음식들을 집에서 하기는 번거롭고 또 골치 아프다.


하지만 인간의 다채로운 식사에 대한 욕망은 집요하다. 집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음식들마저도 집밥의 범위에 포함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예로 든 대부분의 음식들을 집에서 하기에 이르렀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희소식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번거롭다는 실망감 사이에 괴로워하면서도 더 이상 김치찌개와 볶음밥에 만족할 수 없을 때는 큰맘 먹고 부엌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특히 튀김 요리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런 식당 메뉴들도 집에서 하면 집밥의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짜장면과 치킨, 국밥과 콩국수까지... 뭔가 입에 착착 감기지는 않지만 맛은 있는. 아마도 단순한 양념과 재료 탓이겠지만, 단조로운 맛에도 불구하고 꽤 맛있다. 아마도 이런 음식을 집에서 해 먹다니, 라는 성취감이 맛에 섞여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번을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제 슬슬 짜장면과 치킨도 집밥의 맛에 맞춰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짜장면과 집치킨, 집만두.. 뭐 그런 것이다.(예전에 치킨을 한 번 배달시켰다가 맛과 가격에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너무 자극적이고 비싸서.)


집밥에 길들여진지 벌써 몇 년이 흐르고, 이제는 웬만한 요리 집에서 해 먹는다. 얼마 전에는 돼지 족발 요리를 해 먹은 적이 있다. 역시나 신기하게도 족발마저도 집요리의 맛이 난다.(집족발인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이제는 식당 요리를 적극적으로 먹지 않게 되기에 이르렀다. 단지 귀찮아서가 아니라 건강때문이 아니라, '맛' 때문에 말이다. 좋은 선택이고 건강한 습관이겠지만 역시나 오늘도 잠들기 전에 드는 고민 이만저만이 아다.


내일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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