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쓰기를 시작해 보겠다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이후, 그 결정을 잘 이행해 가고는 있지만(이제 2주도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주말에는 쉬고 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낀다. 예상은 했었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소재 고갈, 체력 고갈, 의지 고갈에 시달리게 될 줄이야. 역시 습관이란 무너뜨리는 건 한 순간이어도, 만들어내는 일은 고욕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그냥 오늘만 넘어가 볼까?' 하는 유혹이다. 혹은 '누가 평가하거나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정한 규칙인데 내가 한두 번쯤 예외를 둘 수도 있지'라는 교활한 합리화라던가, '내일 2개 쓰면 되지'라는 무책임한 미루기, '글이란 건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써야 진짜인 거야'하는 정당화까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나를 설득해 보지만, 또한 나는 안다. 그 모든 논리가 그저 '하기 싫다'의 다른 말일뿐이란 걸. 그리고 그 '하기 싫다'에 지고 나면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든 쉽게 지게 되는 빌미가 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습관을 만드는 걸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습관은 참 쉽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넘어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날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사실 거의 넘어갔었지만.. 되돌리느라 힘들었지만) 그래서 일단은 아무 글이나 써보는 것으로.
습관 얘기를 했으니 습관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나는 습관을 꽤 자주 만드는 편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습관이 쌓여 만들어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서 어떤 지식을 쌓는 것도 알고 보면 그 분야의 생각하는 방식을 습관화하는 일이고, 악기를 다루는 것도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움직임과 감을 몸에 습관화시키는 일이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도 운동과 식사의 습관으로 가능하다. 그러니까 어떤 분야든, 그 분야의 특수한 패턴을 몸과 정신에 습관화시키는 일이 우리가 인생을 살며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성장해가고 그리고 그 결과가 곧 나의 삶이자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은 곧 삶이고 나'라는 것이 인생에 대한 나의 생각이고, 그래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내 몸과 정신에 습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매일 반복하는 루틴이 꽤 많다. 제주에 내려와 회사를 출근하지 않는 삶을 살다 보니, 조금의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발생하고 그 여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가 바라는 삶과 나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 낸 매일의 습관이 하나둘씩 늘어나, 이제는 그 루틴들을 모두 처내고 나면 하루가 끝나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냐,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냐, 등등의 질문을 해 오면 막상 뭘 한다고 얘기할 만한 건 없는데 하루는 무지 바쁘게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다.(참고로 시골에 살다 보면 사람들도 거의 안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루틴인가. 우선 일어나면 명상을 한다. 나는 루틴들이 여러 개 있다 보니 가끔은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거나 오전에 급한 일이 생길 때는 그 루틴들을 다 채우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미리 정해둔 우선순위를 따라 선택한다. 그리고 바로 이 우선순위 최상단에 있는 1순위의 루틴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제주 내려오기 전부터 시작한 루틴이고, 명상이 얼마나 좋은지는 내가 직접 체험으로 체득한 일이라 웬만해서는 거르는 일이 없다. (명상의 좋음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 시작한 지는 벌써 7년이 넘어가는데 그동안 거른 날이 며칠 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명상 같은 장기간의 반복이 특히나 중요한 습관일수록 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빠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중요한 명상이기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하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근력 운동을 덧붙여 봤더니 역시나 너무 좋아서 명상을 하는 타임 사이에 팔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병행하고 있다. 게다가 근력운동은 아직 남아 있는 잠을 깨우기에도 딱 좋다는 이점도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일어나자마자 팔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해서 잠을 깨우고 명상을 한 타임 한 후(한 타임에 15분을 한다), 그리고 다시 근력운동 - 명상 - 근력운동으로 하나의 루틴을 끝낸다. (대개 시간은 4~50분 걸린다)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되면(가게를 열지 않는 휴무이거나, 일찍 일어난 경우), 근처 체육공원으로 가서 체조를 하고 조깅을 한다. 내가 사는 '송당'이라는 마을은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인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제일은 역시 근처 당오름 주변의 산책길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곳을 뛰고 있으면, 정말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 것이다.(송당 마을에 대해서도 글을 따로 써봐야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공부를 한다. 이 오전 공부 시간은 명상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루틴인데, 나의 제주에서의 삶을 권태에서 구하고 의미 있게 해주는 1등 공신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침에는 머리가 맑아(명상과 운동까지 했으니 더욱더) 집중이 너무 잘 되기 때문에 어려운 책을 읽기에도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조금 전문적인 도서들을 읽는데 주로 철학 전문도서들이다. 난이도가 꽤 높은 책들이다 보니, 그래서 책을 읽는 일일 뿐이지만 독서라고 하지 않고 굳이 '공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정말로 공부를 하겠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초집중하지 않으면 읽어내기가 어려운 책들이다. 가끔은 '내가 이 시골에서 이런 걸 왜 읽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자주 든다), 그래도 책 한 권을 뗄 때마다의 성취감과 충족감은 꽤 오래가기 때문에 끊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만들어 주고 허무로부터 날 구해내는 일이라 더더군다나 놓치지 않고 꾸준히 매달리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이 얘기도 나중에... 오늘 소재가 많이 쏟아지네..)
루틴 얘기로 벌써 이렇게나 말이 길어지고 있다. 실제 시간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요한다. 그러니까 명상-근력운동 1시간, 조깅 1시간, 공부 1시간이니 벌써 3시간이 흘렀다. 아무도 재촉하지도 않고 일찍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도 가게 오픈은 11시이니 이런 루틴들을 거쳐도 시간이 빠듯하지는 않다. 그렇다 보니 출근 시간이 늦은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게, 그래서 이런 건강하고 의미 있는 루틴들을 매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인지에 대해 가끔씩 실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루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출근 전 가장 중요한 루틴이자, 모든 사람들이 해내야 하는 루틴, 바로 식사다. 그리고 주로 집밥을 해 먹으므로 요리와 식사, 설거지 시간까지 필요하다. 이 역시 1시간 정도 소요 되고, 루틴의 중요도 면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아침을 맛나게 먹는 일은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니 말이다.
그렇게 루틴들을 해치우고 나서 가게를 열면, 손님을 맞고 해야 할 서비스를 하면서 틈틈이 독서를 한다. 이때의 독서는 그야말로 내가 읽고 싶은 책들, 주로 인문학 도서나 소설, 예술 비평 도서들을 읽는다. 그러다 가게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 되면 역시 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나름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녁 시간이 남아있지 않은가. 이 시간 또한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그래서 얼마 전부터 만든 저녁 시간 루틴이 있다. 그건 영화 또는 드라마 보기와 바로 이 글쓰기. 글쓰기는 1일1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며칠 되지 않았지만 아직까진 순항 중이다. 원래 영화 보기도 1일 1영화를 시행해서 루틴을 만들어 보려 했는데, 이건 실패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1일 1영화를 해 보고 알았다. 영화 보기가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라는 것을. 게다가 가끔 어디 무슨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탄 영화를 보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것이다.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들은 왜 그렇게 보는 일도 힘이 드는지) 그래서 드라마를 섞어서 보다가 그 마저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는 건 꽤나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하루의 노동을 마친 저녁 시간이 아니던가. 몸과 정신이 피로한 상태이니 그저 멍 때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유튜브나 TV예능을 보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일 등의 멍 때리는 시간을 꼭 갖도록 한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온전히 멍 때리면서 보내다가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마도 2~3일에 한 편씩은 꼭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을 청할 수 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뭐, 그런 심정이랄까. 그렇게 매일이 아닌 퐁당퐁당의 루틴이 만들어지고 있다.
습관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보려 했는데, 길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슨 루틴 중독 같기도 하다. 벌써 하루에 몇 개가 루틴인 것인가... 글을 쓰고 난 후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바로 자기 객관화. 그리고 나의 일상과 상태를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는 건조한 시선.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내가 나를 너무 몰아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한...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지금 하는 1일 1글쓰기도 너무 과한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2일 1글쓰기로 줄여볼까? 나는 또 나를 유혹한다.
인생이란, 습관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유혹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나를 내가 만들어가는 일이란, 이렇게도 어렵다. 하지만 그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끝의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시켜 주는 바로 그 힘이 습관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하나의 루틴을 또 마쳤다. 내일도, 유혹과의 싸움을 이기고 루틴을 해내야지. 나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