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립서비스
20230718
우리는 만나면 서로를 칭찬하는 일로 인사를 나누곤 한다.
가장 흔하게 많이 하는 칭찬은 여성이라면 '살 빠졌네' 남성이라면 '몸 좋아졌네'라던가, 혹은 '옷이 근사하다거나', '젊어졌다'거나 '그대로네'라거나, 이도 저도 살피기 힘들면 그냥 '예쁘다'거나 '멋지다'거나 하는 칭찬을 냅다 던지기도 한다. 대개의 칭찬이 외모에 집중되는 건 외모가 중요시되는 세상의 시류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편이 눈에 훨씬 잘 띄고 칭찬할 거리를 찾기에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립서비스'라고 하는 이런 칭찬들은 들어서 기분이 나쁠 건 없는, 혹은 꽤 기분이 좋아지기도 할 그런 말들이라 인사말로도 많이 활용되곤 한다. 혹은 상대에 대한 호감을 내비치거 거나 상대에게 맞춰주려는 노력과 배려를 보여주고자 할 때 많이 사용하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칭찬하고, 나에게 호감을 비추고, 나를 배려해 주는 일이란 그것 자체로도 기분 좋은 일이므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에게 자주 말해주면 나쁠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칭찬을 굳이 '립서비스'라는 말로 부르는 데는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식당에서 손님을 맞는 종업원이 친절을 베풀 때 우린 이런 태도를 두고 '서비스가 좋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때의 서비스가 칭찬이 아닌 이유는 그 말에 진심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가가 전제되어 있는 조건부 행동이기 때문이다. 서비스란 속성은 그런 것이기에 지불 가격이 큰 거래일 수록 서비스의 태도, 나를 높여주는 립서비스 또한 과장되고 부풀려지곤 한다. 이런 거래 관계에서의 서비스는 진심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되거나 불쾌함을 유발하지는 않는데 그것이 지불한 가격에 대한 대가라는 걸 너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상대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높여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해도, 그것이 진심을 가지지 않을 경우에는 칭찬이 아닌 서비스에 가깝고 그렇다는 건, 그 말들이 나에게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인사말이나 칭찬을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분석하는 것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사실 가벼운 인사말이나 칭찬 정도라면 그것을 굳이 '립서비스'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라던가, 내가 호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마음의 전달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반가움이나 호감이 아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된다. 그러니까 뭔가 상대로부터 얻어낼 것이 있거나 부탁할 것이 있을 때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분위기 형성의 수단으로 상대를 높이는 말들이 건네지고, 그런 상황에서의 그 말들은 가벼운 인사말이나 칭찬이 아닌 그야말로 '립서비스'가 된다.
이때 립서비스는 인사말이나 칭찬과는 다른 속성도 가지는데, 그것이 과장되어 있거나 맥락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립서비스는 상대를 칭찬하고 싶은 '진심'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욕심'으로 발화된 말이라는 것이며, 그래서 그 두 가지 말은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즉 진심의 말은 상대를 목적으로, 욕심의 말은 상대를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라 할 수 있는데, 말해진 내용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진심의 말은 친분관계에 기반하는데 반해 욕심의 말은 거래관계에 기반하는, 지금 대화하는 둘 사이의 관계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욕심을 달성하기 위한 립서비스는 상대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그러니까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므로 인해 칭찬할 꺼리를 굳이 찾아야 하고 그 칭찬은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맥락으로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화의 흐름과 상관없이 립서비스를 끼워 넣게 되고 그렇게 뱉어진 립서비스는 역시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장의 정도는 상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자신의 욕심과 집착의 정도를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립서비스는 슬픈 말이다. 관계를 파괴하는 말이고 진심을 무너뜨리는 말이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관계의 목적으로 생각하는지, 거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증거의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평소 친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에 맞닦드렸을 때는 상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반가움이나 호감마저도 깎여나가고 만다. 그리고 이런 말은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슬픈 마음을 먼저 들기도 한다. 정말로 슬픈 순간인 것이다. 나의 진심이 바래는 것 같아, 그리고 그와는 다른 상대의 진심을 봐버린 것 같아서.
그러니까 이 글은 립서비스를 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상대를 높여주고 상대를 반기고 호감을 표시하는 마음의 발로라면,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게 칭찬인들 립서비스인들 어떠한가. 심지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칭찬이라고 해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라면 거짓말인들 또 어떻겠는가. 중요한 건 그 말의 내용이나 진실 여부 따위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건 상대가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그 말들을 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를 목적으로 생각하는가, 수단으로 생각하는가, 바로 그 차이인 것이다. 그 둘의 차이는 겉으로는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흑과 백처럼 완전히 다른 질의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의 칭찬과 욕심의 립서비스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뱉어진 말의 내용이 비슷해서이기도 하겠지만(주로 외모나 능력에 대한 칭찬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적으로는 그런 말을 듣고 취해 있는 나의 상태 때문일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본래 이 말은 칭찬을 통해 상대의 동기와 자율성을 유발하는 교육 방식과 관련되지만,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칭찬을 가장한 상대의 립서비스에 취해 춤추느라 그 속의 숨은 의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립서비스를 던진 그 사람은 당신이 춤을 추는 동안 속으로 지긋이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당신을 자신의 원하는 대로 '조종'하려 들것이다.
이런 립서비스에 빠져 신세를 망친 사례는 역사에서도,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가진다면 그 또한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본래 진심과 사심이란, 칭찬과 립서비스란 그렇게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을 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칭찬들을 내뱉는지 모를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상대의 말이 어떤 진심을 얼마큼 담고 있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건 상대를 무턱대고 경계하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은 열되 모두 열지는 말고, 상대의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치되 그 말에 취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겨우 말 몇 마디에 우월감을 가지고 우쭐해하지 말고 겸허하고 작은 마음으로 그 말을 응시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나면 서로에 대한 칭찬과 배려, 혹은 하얀 거짓말이라도 상대를 높이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려는 노력을 아끼진 말아야 한다.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듯이, 립서비스를 구별해 내자고 상대와의 관계를 망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런 진심 없는 립서비스, 맥락 없고 뜬금없는 칭찬의 말이 너무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굳이 상대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칭찬하여 나의 매너 있는 태도를 과시하려는 이상한 이중의 욕심 같은 게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혹은 칭찬을 받기 위해 칭찬을 하는, 그러니까 서로 칭찬을 교환하는 방식의 칭찬하기 같은(일종의 맞팔 같은 거랄까), 그런 빗나간 칭찬 또한 성행한다. 이런 칭찬들도 결국은 상대를 지렛대 삼아 나를 높이려는 의도라는 측면에서 진심이라기보다는 사심에, 칭찬이라기보다는 립서비스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요즘에는 상대가 칭찬을 해오면 꽤 부담스러운 마음이 되곤 한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반사 작용의 태도는 참으로 슬프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지 못하는 그런 태도 말이다.
그래서 우린 차라리 립서비스를 거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진심마저도 비뚤어진 의심을 낳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런 립서비스는 차라리 하지 말았으면 좋았지 않았나 싶다. 그냥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고 오롯하게 차오르는 진심이 있다면 속삭이듯 조용히 건네주고 말면 좋지 않을까. 너무 과하지 않게 말이다. 혹은 눈웃음이나 포옹, 그도 아니면 마음속에 간직해 보는 응원의 마음 정도면 어떨까.
아, 그리고 하고 싶은 말 한 가지 더.
친분관계에서도 서로 필요한 일이 있을 것이고 도움을 청하거나 거래를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땐 그냥 자신의 필요와 요구를 툭 터놓고 먼저 던져 놓은 후에 그 조건을 서로 맞춰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 편이 더 깔끔하고 부담도 없으며 거래를 하기에도 용이한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서로 마음과 감정을 탐색해 보느라 또는 소비하느라 피곤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은 립서비스는 친분 관계에서 거래나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친분을 앞세워 필요를 성사시키려 할 때이다. 그래서 친분으로 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비즈니스를 위한 립서비스가 훅- 하고 들어올 때 그 불쾌함과 짜증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교묘하게 조종하려 든다는 차가운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면서 완전히 기분을 망가뜨려 놓는다. 이런 접근은 기존의 친분까지도 의심하게 만든다는 데서, 최악의 화법이 아닐 수 없다.
친분과 거래, 진심과 비즈니스는 서로 섞이지 않는 게 좋다. 그것 사이의 경계는 이미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명확히 나눠져 있고, 내가 혹은 상대가 그 경계를 아무리 인정하지 않고 섞으려 해도 결국엔 나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즈니스를 하려면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 놓고 거래 조건을 저울질하는 게 좋다. 그래야 협의도 잘 되고 뒤끝도 없다. 무엇보다 친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혹, 거래로 틀어질 친분이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런 정도의 친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런 립서비스는 하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