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카운트』
스포츠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당연히도 '스포츠'와 '드라마'일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에 더 치중하는가에 따라 작품마다 박진감의 다이내믹과 감동의 물결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둘 중 하나가 누락되어서는 곤란하다. 캐릭터의 역사와 장애의 극복이라는 드라마가 있어야 할 것이며,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술과 기량에 대한 설득과 함께 긴장을 유지하고 폭발시키는 흐름과 타이밍의 전개가 잘 연출되어야 한다. 때문에 스포츠 드라마의 클리셰는 유독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필수적인 표현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클리셰를 어떻게 적절히 잘 배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재미와 감동이 적절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스포츠 드라마의 전형적인 문법의 존개가 마냥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전형적인 공식에 기댈 수 있기 때문에 편할 수는 있지만 조금이라도 과하면 억지스러운 연출이 도드라져 보일 테고, 거꾸로 그런 공식들을 무시하거나 자연스럽게 삽입하지 못한다면 흥미와 긴장을 잃은 건조함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독 스포츠 드라마는 드라마의 전형성과 개성 사이의 줄타기가 중요하고 인물과 사건 사이의 납득되는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때문에 그야말로 '연출력'이 중요한 장르인데(장르가 그 장르성을 가지려면 당연히 연출이 중요하겠지만),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스포츠 드라마라는 장르의 문법에 충실한 연출력을 잘 갖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사실 스포츠 드라마는 영화보다는 현실 자체에 그런 드라마적인 절묘함이 내재된 경우가 많아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 유독 많은 장르이기도 하다.(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정보 자체가 호기심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리고 실화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적 요소의 잠재성은 영화에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데, 그렇지만 이런 잠재력에 너무 기대다 보면 가끔 스포츠 드라마의 작동 원리를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실화를 충실하게 잘 재현에 내야 한다는 점에 너무 큰 부담을 느끼거나 혹은 거꾸로 그로 인해 드라마 전개의 긴장을 놓치는 경우가 그러하다. 자칫하면 '드라마'가 아닌 '재현'이 위주가 된 다큐처럼 되어버릴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 어쨌든 다큐가 아닌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점 때문에 영화도 아닌 다큐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이런 우려는 최근 영화 [리바운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드라마일수록, 오히려 실화를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실화를 재료로 하여 드라마를 재구성하는데 더욱 초점을 맞추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실화를 소재의 아이디어로만 삼고 드라마는 적극적으로 재구성하여 연출하는 작품의 성공적인 예를 이 영화 [카운트]는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나 인물, 사건, 배경 등은 모두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는 문구로 시작하며, 실제 인물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재구성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스포츠 드라마의 클리셰를 적절하게 잘 배분하여 전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그로 인한 이 영화만의 개성과 주제의식, 독특한 재미와 감동 요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의도한 바를 성공적으로 성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감동을 위해 과하게 연출된 마지막 장면의 오글거림 또한, 이 장르 특유의 클리셰라는 점에서 봐준다면 흐뭇하게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각본: 김진아, 홍창표
감독: 권혁재
출연: 진선규, 성유빈, 오나라, 고창석, 장동주, 고규필 외